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든 닳든

in #kr7 years ago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든 닳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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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 이력에 이어 친 나찌 이력까지 폭로되면서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놔두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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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우리 애국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멜로디와 가사 다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부르면서 애국심이 끓어오르지도 않고 길지 않은데 지루하다.

오히려 북한의 <애국가>가 훨씬 더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그놈의 백두 혈통 관련 가사는 한 단어도 들어 있지 않고 쉬운 단어로 조선과 인민을 노래하고 있어 가사도 걸림이 없고 멜로디는 장중하고 울림이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국가보안법상 고무 찬양죄를 적용하지는 말아 주기 바란다. 다만 우리 애국가가 상대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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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하시라...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

그런데 애국가를 폐기하고 국가(國歌)를 새로 제정하자면 나는 반대다. 안익태가 친일에 친나찌에 친스탈린까지 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사가 개화의 선구자였으되 친일파로 순응하고 한 세상 살았던 윤치호의 작품이라 해도 (안창호설과 윤치호설이 엇비슷한 걸로 안다) 역시 결론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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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노래든 작사자와 작곡가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그들의 노래만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김민기는 수련회 가서 물에 빠져 죽은 친구를 슬퍼하며 <친구>를 지었지만 7,80년대 대학생들에게 그렇게 수용되지 않았고, <아침이슬>역시 비장한 결단과 선언의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우리 숨가쁜 현대사는 노래를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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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작곡자와 작사자의 소유물이 아니고, 그들에게 좌우되지도 않으며, 그들에 대한 평가를 대신 받을 이유도 없다. 나는 십만에 하나 백만에 하나 김민기가 전두환한테 큰절을 한다 해도 <아침이슬>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지하가 오늘 저렇다고 <타는 목마름으로>를 버리지 않을 것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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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애국가는 역사 속에서 생명력을 지닌 노래다. 윤치호가 친일을 하든 뭘 했든 독립군들은 올드랭사인 가락에 맞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목메어 불렀고, 매우 불순한 의도가 읽혀지는 소설이긴 하나 김동인의 <붉은산>에서 동네 망나니였던 ‘삵’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어가면서 불러 달라고 한 노래가 ‘동해물과 백두산이’였다. 해방된 뒤 안익태의 곡이 따라붙었고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가 된 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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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국가(國歌)로 삼은 국가(國家)를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불렀고, 독재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불렀고 1960년에서 1987년 6월, 그리고 그 뒤로도 불렀고, 유신 독재에 항거하여 할복한 학생 김상진이 의식을 잃어가면서 불렀고, 광주항쟁 때 전경 방석모 쓰고 카빈총 든 시민군들이 감격에 겨워 불렀다.

“안익태가 친일파인 줄 몰랐기 때문에”라고 얘기야 할 수 있겠으나 역사에 가정은 없지 않은가. 안익태가 친일파인 줄 알았다면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은 그래서 의미가 없다. 만주국 찬가에 쓰이고 나찌 찬양 음악회에 사용됐다고 한들, 이 노래의 역사성을 왜 애써 탈각시켜야 하는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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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애국가에 대한 시비는 그리 유익해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특정한 정치적 지향, 역사적 인식을 지닌 사람들의 입초시에서만 분주할 뿐, 수십 년 국가(國歌) 자리를 비공식적으로나마 차고 앉았던 노래를 내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이 노래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노래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격심하게 반발할 것이고 결국은 아무 소득 없는 ‘논쟁을 위한 논쟁’에 그칠 가능성이 유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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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로 하는 것은 그야말로 더 불가능하다. 그저 자기 위안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국가적 행사에서 그 노래를 대놓고 배타한 정당이 제1야당이고 지금도 선거하면 반타작에 좀 밑도는 의석을 얻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국가를 바꾸거나 대체하는 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갖다 줄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지금 그런 거 논쟁할 때인가? 우리가 할 일과 나눌 말이 그렇게 없나? 어차피 통일이라도 되면 싹 개비할 수 밖에 없는 노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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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 내 생각이다. 첫 단추를 잘못 뀄으면 그걸 바로잡아야지 니라니라.....와 민족 정기를 바로잡지 않고 어찌..... 기타등등과 친일파의 노래를 애국가로 삼는 것은 부끄러운 일 이차저차의 얘기는 일단 지나치고 싶다. 절대선과는 논쟁할 수도 없고 해 봐야 안되고 하면 손해인데 왜 그런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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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가 어떤 사람인지는 더 알고 싶다. 그리고 윤치호가 어떤 심경으로 일제 강점기를 살았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다. 헌데 그들이 세월을 사이에 두고 합작(?)한 노래를 굳이 우리가 ‘지금’ 제거해야 하는 대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르든 말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든 닳든 말든. 별로 정이 가지 않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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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애국가를 작곡했다해도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건 아닌듯 싶습니다
뛰어난 예술품이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 처럼 애국가 역시 그 존재 자체로써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네요~^^ 개개인마다 취향이 다르지만서도ㅎㅎ

공감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새삼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측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작 화살은 다른 곳을 겨냥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게 영 찜찜하네요.

뭐 의도까지 말씀하실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건 맞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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