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감사한 이유

in #kr6 years ago

광주가 고마운 이유

.
광주로부터 7개월 전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시위하던 부산과 마산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공수부대의 진압에 기가 질렸다. 먼저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해병대가 폭력 진압보다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시위대와 기싸움을 하는 쪽이었다면 공수부대는 차원이 달랐다.
.
그들은 광주에서 쓰게 되는 그 몽둥이로 시위대의 머리를 집중 공격했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시위는 사그라들었다. “서울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내가 직접 발포명령하겠다.”고 박정희가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공수부대가 어떻게 시민들을 잡는지 보았고 잡아서 누를 수 있다는 확신을 지녔기 때문이다.
.
그 확신을 이어받은 것이 전두환이었다. 서울역을 뒤덮은 수십만 학생들은 ‘서울역 회군’ 이후 계엄령 하에서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전국 대학을 장악한 것은 또 공수부대원들이었다. 모두가 잠잠했으나 광주 사람들은 이 대한민국 최정예부대에 맞섰고 총을 들어 그들을 몰아냈다.
.
그해 그날 공수부대가 짐승같이 설칠 때 광주 사람들이 총을 잡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툭하면 공수부대의 얼룩 무늬 앞에서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뻔질나면 공수부대 출동한다는 소문에 어깨가 얼어붙고 오줌을 바지에 지리며 타조처럼 머리를 무릎에 박고 오들오들 떨었을 것이다. 전두환 같은 놈들이 계속 자리를 물려 줘 가며 나라를 말아먹는 가운데 이건 너무하다며 항의할 낌새만 있으면 공수부대의 박달나무 몽둥이가 어김없이 떨어졌을 것이다. 내 머리에, 내 아내 머리에, 심지어 내 아들 머리에 내 딸 머리에.
.
87년 6월 시위대 모두는 그 지역이 어디든 모두 광주의 아들 딸들이었다. 광주의 아픔을 지켜보며 치를 떨었고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거리에 나섰다. 그때는 광주 하나였지만 지금은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전에서 대구에서 너희들은 광주를 다시 볼 것이라는 각오로 경찰 방패에 매달렸다. 그 각오 앞에서 전두환의 졸개들조차 “우리 손에 다시 피를 묻힐 수는 없지 않으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
광주는 전두환같은 무리들에게도 벼랑을 보여 주었다. 또 그랬다가는 뼈를 못추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광주 이후 또 한 번 밟아버릴 생각은 굴뚝 같아도 실행할 수는 없었고, 폼은 잡아도 발은 못 떼었다. 기어코 쿠데타라는 이름을 우리 역사의 일상용어 사전에서 지워 버린 것이 바로 광주였다.
.
3.1 4.19와 더불어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숫자, 어떻게 가려도 시들지 않는 빛줄기. 40주년 5.18을 맞아 다시금 80년 5월의 광주와 광주 시민들에 감사한다.
.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image.png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3
BTC 60737.85
ETH 1558.46
USDT 1.00
SBD 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