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이 아니라 선물이잖아요

in #kr6 years ago

소품이 아니라 선물이잖아요.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연예인들이 어려운 처지의 가족이나 아이들을 찾아가 일일 친구가 되어 주고 스스로 호스트가 된 포장마차를 열어서 그 수익금을 전달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었지요. 리포터나 MC 정도로만 연예인들을 대했던 저로서는 뜨아.. 를 외칠만큼 많은 연예인들을 실제로 구경할 수 있는 전무후무의 기회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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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아리 꼭대기의 단칸방을 찾은 적이 있어요.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가사도우미 하는 엄마가 두 형제를 기르는 집이었지요. 그런데 그 중 둘째가 희귀병에 걸려 있었어요. 사주를 보는 점쟁이들도 얘기할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을 만큼 꽉 막힌 사주가 있다는데, 그 날 엄마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그 느낌이 들었답니다. 컴컴한 냉기가 온 집안에 범벅이 되어 감돌았고, 뜻밖에도 밝았던 아이들의 웃음까지도 서글프게 보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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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헌팅차 집을 다녀온 뒤 내일 어느 연예인이 와서 아이들을 도와 줄 건지 물으니 한 이름이 귓전에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연예 쪽으로는 식견이 좁고 얕은 처지인지라 그리 친숙하게 와 닿진 않더라구요. 답답한 작가가 이 노래 몰라요? 하면서 흥얼거려 주는 멜로디를 듣고서야 아 그 노래 부른 사람이냐? 머리를 긁어야 했어요. 작가는 이 무식한 PD와 작업을 하고 있다니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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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 아침, 좁은 주택가 골목을 요리조리 빠져나간 끝에 이런 데까지 차가 올라오는구나 싶은 고지대 꼭대기로 차를 몰던 때였어요.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매니저였어요. 벌써 도착해 있다는군요. 화들짝 놀라서 약속 시간을 어긴 게 아닌가 확인해 보니 그런 건 아니고 그쪽이 일찍 도착했던 거더군요. 연예인이 우리보다 일찍 현장에 나타난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 당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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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지둥 집에 닿아 보니 이 부지런한 가수는 벌써 분장 끝내고 차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죠. 보통 연예인들의 선탠 가득한 차 문이 열리는 타이밍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큐 사인이 나기 직전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지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웬지 민망한 마음에 “어이쿠 이거 저희가 늦었네요.” 하고 인사를 하니 명료하고 톡톡 튀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뇨 저희가 빨리 왔어요. 지각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서둘렀거든요. 애들하고 약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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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에 일 나가는 엄마 없는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 주고 오후엔 롯데월드까지 다녀오는 스케줄이었어요, 길면 반나절이고 짧으면 두어 시간, 심하게 짧은 경우는 “자 60분 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식의 스케쥴 속에 아금바금 찍어대야 했던 입장에서는 마냥 고마울 수 밖에 없죠. “그럼 오늘 다음 일정은 없으신 겁니까?”라고 물은 건 체면치레만은 아니었어요. 그러자 또 한 번 명료한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저 오늘 다 비웠어요. 프리예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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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세상 일이란 게 그렇더라고요. 지금부터 60분!의 스케쥴이 떨어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그 시간 내에 맞춰서 모든 것을 해내게 돼요. 하지만 “니 맘대로 찍으세요.”의 환상이 현실이 되자 다른 쪽에서 태클이 들어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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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희귀병에 고생하던 둘째 아이가 그랬어요. 아버지 정이 그리워서 그런지 아이는 이쁜 가수 누나는 무시하고는 저나 남자 스탭들한테 더 매달렸습니다. 촬영하는 카메라 감독 품에 안기고 내 무릎에 매달리고 조명감독한테 달라붙고, 조연출은 연신 아이를 떼내고, 도무지 촬영이 진행이 안 될 지경이었죠. 그러면서 가수에게 “저 아줌마 집에 가라 그래.”라고 부르짖는데 아주 대책이 없더군요. “누.... 누나야 임마 아줌마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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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가수 데뷔 이후 그 누구로부터도 이런 대접을 받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는 퍽 태연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조립 로봇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는 똘망똘망 눈동자를 빛내며 아이에게 다가섰지요. 또 한 번 “아줌마 가!” 소리가 날아오자 아줌마(?)는 거침없이 받아쳤습니다. 그리고 유쾌한 긴장 속의 핑퐁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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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아저씨가 왜 이래.” “내가 열 살인데 왜 아저씨야.” “나는 결혼도 안했는데 왜 아줌마냐.” “결혼 안 해도 늙으면 아줌마야.” (으악) “열 살이라도 못생기면 아저씨야.” “내가 왜 못생겼어. 자기가 더 못생겼으면서.” “누나 싫어하니 못생겼지. 좋아하면 잘생겨질 거 같아. 나는 기형이 이뻐하니까 얼굴도 이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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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이가 키득거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톡톡 받아치면서 자기 눈 앞을 떠나지 않는 ‘아줌마’와 말문을 트기도 했구요. 촬영한 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나서였을 겁니다. 보통 같으면 장사 끝내고 좌판 걷을 준비를 할 수도 있었을 시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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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내내 가수는 영 도와주질 않는 어린 아이 앞을 떠나지 않았었어요. 아줌마 집에 가 소리 들어가며, 못생긴 얼굴 타박당해 가면서, 동요도 부르고 어린 아이 춤도 추고 배꼽 인사도 하며 아이를 얼러 가면서 말입니다. 짜증내는 빛 하나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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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에 간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모든 놀이기구에 달라붙었습니다. 촬영은 이만하면 됐으니 애들에게 집에 가자고 하라고 사인을 보냈을 때, 가수는 난처한 듯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애들이 이거하고 저거는 꼭 타고 싶다는데, 그것만 타고 가죠?” ‘이거’와 ‘저거’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서 나중에는 카메라 감독은 카메라 끄고 커피 마시고 가수와 아이들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놀이기구를 탔지요. 더 이상은 안된다고 내가 기형이에게 정색을 하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롯데월드의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할 기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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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촬영 큐시트에는 색다른 설정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모처럼의 외출을 다녀온 형제가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한다는 거였지요. 아이들도 그러마고 했고 저는 가수에게 이러저러하니 꽃집에 함께 가 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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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에 간 아이들이 무슨 꽃을 고를지 몰라 우물쭈물하는데 역시 가수 누나가 적절한 리드를 해 줬습니다. “여자한테 남자가 주는 꽃은 장미가 일단 기본이야.”라고 했더니 기형이가 장미를 뭉텅이로 가지고 왔고 그 형은 장미 옆의 백합이 이쁘다고 챙겨 왔어요. 그때 가수 누나가 또 이런 훈수를 두었습니다. “얘들아 꽃에는 다 꽃말이 있거든. 꽃에는 뜻이 있어요. 고맙다, 감사하다는 꽃말을 가진 꽃을 고르는 게 어떨까.” 그 꽃의 이름은 잘 기억 못하겠어요. 다알리아였던가. 하지만 하여간 꽃집 내의 그 꽃은 이내 동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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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보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제 속은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어요. 없는 진행비에 형식적인 꽃다발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꽃다발이 아니라 숫제 화환을 만들 기세잖아요. 그렇다고 저 분위기를 깨고 “이건 너무 많으니 줄여!”라고 나설 만한 배짱은 죽어도 없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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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비를 탈탈 털어 봐야 근사치에 도달하지도 못할 근사한 꽃다발이 완성되었을 때 눈물을 감추고 제 개인 카드 (그때는 진행비를 현금으로 받았을 때라) 를 들이밀었는데, 매우 기이한 소리가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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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감독님이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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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들어 쳐다보니 가수가 배춧잎 몇 장을 손에 들고 서 있었어요. 왜 당신이 내느냐는 질문은 의아함의 표현이 아니라 항의의 뜻이었습니다. 당연히 촬영 중 소품을 사는 것인데 제가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더듬더듬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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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소품이 아니라 선물이잖아요. 아이들이 엄마에게 처음 드리는 꽃다발이잖아요. 이건 제가 사주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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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는 순간 좀 불려 말하면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온 것이 방송을 위해서, 누가 말한 대로 새 앨범이 나와서 몸 바쳐 홍보해야 하니까 아이들과 함께 있은 것이 아님을 그제야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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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이 아닌 ‘선물’이라는 말 속에 담긴, 홀로 아이들을 기르느라 손과 발, 그리고 마음에 굳은 살 배겨 버린 엄마에게도 뜻밖의 기쁨을 전하고픈 그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정말로 그녀는 그 가족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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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그리고 글로, 댓글로 누군가와 '함께' 하기만큼 쉬운 일도 없지만 한 발짝이라도 한 손짓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걸 그 누군가에게 느끼게 하는 건 참 어렵지요. 흉내내기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흉내를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는 것처럼, 흉내를 내고 또 내다 보면 15년 전 박혜경씨처럼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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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담벼락에 이 가수의 노래가 걸린 걸 보고 옛 글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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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인성이 된 사람이네요

네 그런 분이었습니다

👌very nice post

더더 시절부터 그분의 목소리를 좋아했습니다. 요새는 성대결절로 노래부르기 힘들다던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러게요 최근 재기하신다는 말 들은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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