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판 분서갱유

in #kr7 years ago

1933년 5월 10일 독일의 분서갱유

1933년 5월 10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비독일적’ 서적을 일제히 소각하는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 그는 소시쩍에는 “자본주의 아래서 노예로 일생을 마치기보다는 차라리 볼셰비즘 밑에서 평생을 바치는 편이 낫겠다"고 일기장에 끄적이던, 불온(?)해 보이는 불평분자였다. 어려서 앓은 병 때문에 다리가 활처럼 휘어서 군대 신체 검사도 통과되지 못했던 그는 신체적 핸디캡을 공부로 커버하려는 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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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 넷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박사가 됐고 기자를 꿈꿨지만 그의 지망하는 곳마다 낙방을 했다. 1920년대 그는 성냥만 갖다 내면 폭발할 듯한 수백만 독일 실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치즘 그리고 히틀러와 처음 조우했을 때, '반자본주의 정서'를 지녔던 괴벨스는 '국가사회주의'를 주창하는 히틀러와 각을 세우며 다퉜다. 하지만 곧 서로의 가치를 꿰뚫어 본 두 악마적 천재들은 20세기 최악의 의기투합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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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위대함과 동시에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재의 특성이다. 그래, 나는 이 사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제3제국의 건국자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괴벨스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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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위한 괴벨스의 헌신의 수단은 선전선동이었다. 괴벨스는 그 좋은 머리와 달변, 명석한 논리로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그는 분노를 통해 국민들을 자극시키려 들었다.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대중들의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1933년 봄, 히틀러가 집권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5월 10일 거대한 불길로 타오른다.

"보리수 아래에서"라는 시적인 이름을 지닌 베벨 광장에는 수천 명의 흥분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3월부터 독일의 각 지역에서 벌어진 '반독일적 서적'들에 대한 분서(焚書)가 절정에 오르려는 참이었다. 독일 선전상 괴벨스가 열변을 토했다. "더러운 정신들을 불 속에 내던지라!"

영화 <인디애나 존스 3>를 보신 분들은 나치들이 하일 히틀러를 부르짖으며 열광하고 무수한 서적이 불태워지는 가운데 등장한 해리슨 포드가 엉겁결에 히틀러의 사인을 받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해리슨 포드가 군중 속에 휩쓸렸던 그 광장이 베벨 광장이었고, 그날이 1933년 5월 1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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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같은 유대인들의 저작은 제1순위 불쏘시개가 됐고, 하인리히 만, 스테판 쯔바이크, 베르톨트 브레히트, 에리히 케스트너 등 약 1만 8천 종의 책이 뭉뚱그려져 땔감 위에 올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즐거이 읽었던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역시, ‘독일인답지 않은 유약함’을 드러냈다고 해서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여러 저작에서 반전 평화적 입장을 고수한 케스트너는 오갈데없는 “독일의 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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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접한 케스트너의 독백은 80여년이 지난 요즘도 듣는 이의 가슴을 때린다. "금지된 작가가 된 이 이상한 기분. 책방은 물론 조국의 어느 도시에서도, 심지어 고향 땅에서도 자기 책을 볼 수 없다는 것." 심지어 불태워진 책의 저자 가운데에는 독일의 대표적 민요 '로렐라이'의 가사를 지은 하인리히 하이네까지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었던 하이네는 생전에 이런 말을 한 바 있었다.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마지막에 인간까지도 태울 것이다." 아 시인의 불길한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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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의 군중이 불길을 바라보며 환호했고 아직도 불구경이 고프다는 듯 더미로 책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 댔다 . 그리고 그 앞을 행진했다. 광기였다. 자신들의 이상과 상식에 반하는 책은 불을 질러 없애야 하며,또 그럼으로써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명백한 광기였다. 미국으로 피신했던 브레히트는 이 광기에 대하여 시니컬하게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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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된 어떤 시인이 분서목록을 들여다 보다가/자기의 책들이 누락된 것을 알고/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 나서 나는 듯이/책상으로 달려가, 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그는 신속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그렇게 해 다오! 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와서/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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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책을 불태우며 환호했던 독일의 젊은 남자들 중 절반은 스탈린그라드의 와륵 더미나 북아프리카의 사막, 아니면 대서양 깊숙한 곳에서 그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을 것이고, 요행히 전쟁을 피했더라도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이는 열에 하나도 안될 것이다. 괴벨스는 히틀러의 최후를 지켜 본 후 아이들과 함께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그들이 보여 준 광기는 그 주인들과 함께 당연히 무덤에 들어가야 함이 옳을 것이나, 기절초풍하게도 이놈의 광기가 좀비가 되고 강시가 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방부에 서식하고 있음이 밝혀져 우리를 놀라게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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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막대한 조롱과 욕설을 들어먹으며 작성했고 군 법무관들조차 이는 위헌이라며 떨쳐 일어섰던 ‘금서’ 목록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그 좀비의 치흔이고 강시의 손톱 자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우리 시대의 석학 노엄 촘스키부터 한나라당이 모셔가서 주의깊게 그 강의를 경청하기도 했던 장하준의 저작을 망라한 ‘금서 목록'을 끝내 고수하는 이유는 “사회가 아무리 변화해도 군인의 국가관은 일반 사회와 달라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가장 단순하게 가공하고, 이것을 끝없이 반복할 수 있는 자만이 여론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괴벨스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괴벨스가 살아 있다면 그는 통탄을 하며 대한민국 국방부에게 충고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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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들. 나는 이런 말도 했다네.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분에 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소화해낼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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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마지막에 인간까지도 태울 것이다." 대단히 불길한 직관이었군요.
"더러운 정신들을 불태우"라니 미치긴 했지만 역시 번득이는 재치가 있네요..
국뻥부가 본받을만 하네요.

시인은 역시 직관이 풍부한 사람들인가 봅니다... 말씀하신 말에 참 많은 게 담겨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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