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하지 말자

in #kr6 years ago

후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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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후루꾸’가 아니라 꽤 악보의 근사치로 피아노를 두드릴 수 있는 곡이 딱 하나 있다. 1991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주제곡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 OST를 민망할이만큼 베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고, 그 곡을 듣거나 엉성하게 건반을 두들기노라면 개인적으로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로 꼽는 <여명의 눈동자>의 여러 장면들이 360도 화면으로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렇듯 영화 음악이나 드라마 OST는 청각 뿐 아니라 시각(?)을 즐겁게 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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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이 드라마는 위안부로 끌려갔던 윤여옥이라는 여성과 일본군으로 입대해 위안소를 드나들면서 그 연인이 됐던 최대치, 그리고 그들과 얼키고설키는 조선인 엘리트 장하림, 이렇게 세 주인공의 인생 역정을 축으로 한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면서 위안부로 끌려간 윤여옥과 동남아 전선으로 차출되는 조선인 최대치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애절한 키스신을 펼쳤다. 이게 한국 드라마 최초의 ‘프렌치 키스신’이었고 ‘선정성’ 때문에 방송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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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키스신’은 전혀 야하지 않았다.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의미로 자극적이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서로의 존재로 숨을 쉬고 눈을 뜰 수 있었던 두 남녀가 기약없는 어둠 속으로 갈라져 헤어져야 하는 순간의 절박함을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그 키스가 어떻게 에로틱할 수 있었을까. 그건 그저 몸부림이었다. 역사와 전쟁의 두 수레바퀴 아래에서 바스라지고 부러져 땅에 묻히기 쉬웠더 두 티끌의 사무치는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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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끌려온 위안부들과 일본군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위안소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 울며 서러움을 달랬다는 기록도 본 적이 있다. 대치와 여옥의 사랑은 얼마든지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야마모토나 다나까인 사람이 여옥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불가능했을까? <여명의 눈동자>에서 대치를 짐승처럼 괴롭히던 일본군 오장처럼 일본군들은 오로지 성욕에만 미친 들개들이었고, 위안부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살인귀들이었을까?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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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일으킨 전쟁, 알루샨 열도에서 뉴기니까지 펼쳐진 전장에서 반자이 돌격을 감행하고 가미가제로 가루가 되고 ‘옥쇄’를 밥 먹듯이 했으며 난징대학살 등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군은 분명히 침략군이고 가해자가 맞지만 일본군 개개인은 전쟁에 동원된 소모품이라는 피해자성을 동시에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 대부분은 그저 살고 싶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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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과 위안부들이 사랑에 빠질 수도 있었으리라. 그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화로 “위안부들이 비참한 처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억지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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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이용수 할머니의 ‘영혼 결혼식’을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윤미향 의원 (오늘부터는 의원이리라)을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가 윤미향 의원을 저격한 이용수 할머니를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옛 기사를 발굴해서 까 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까마득한 우물로부터 길어 올려진 기사를 다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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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의 위안부 할머니가 전쟁터에서 만난 일본군 장교와 뒤늦게 '영혼결혼식' 을 올렸다. 1944년 16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 (臺灣) 으로 끌려갔던 이용수 (李容洙.대구시달서구상인동) 할머니는 지난 20일 54년 만에 지옥 같았던 대만 종군위안소를 다시 찾았다. 종군위안부 신분으로 당시 사경을 헤매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름도 모르는 가미가제 (神風) 특공대' 출신 일본군 장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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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연을 전해 들은 일본 역사연구가들과 대만 국회의원 세치다 (謝啓大) 등이 두 사람의 '재회' 를 추진, 李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위안소 자리를 찾아내 지난 22일 위령제를 올리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두 사람을 상징하는 인형을 놓고 영혼결혼식 의식도 치렀다. 李할머니는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은 저주해 마땅하지만 그이의 인간애는 어떤 이념으로도 지울 수 없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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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가 무엇이 문제기에 이용수 할머니가 ‘관종’에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 (페북에서 들은 얘기)이라고 낙인찍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 열 여섯 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삭막한 처지의 사람에게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어 준 사람이 일본인이면 안되는가. 가미가제로 죽은 일본인들은 다 천황에 미쳐 돌아간 일제의 광신도들이기에 상대도 해서는 안되는 게 맞는가. 할머니는 “일본의 전쟁 범죄 규명”이라는 대의명분 속에 나이 스물도 안됐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잊을 수 없는 힘이 돼 준 일본인의 인간애를 지웠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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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신문 기사는 1998년 것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공식화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고 이 일로 할머니를 비난하는 여론도 없었다. 그런데 2020년에 난데없이 이 기사 앞에서 “그러면 그렇지 이상한 할머니였구만”이라고 입초시가 튀어 나온다면 이건 우리 사회의 명백한 후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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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은 민족운동이 아니라 인권운동이고 개개인이 지니는 인간의 존엄성을 전쟁의 군홧발이 짓밟았던 사건을 규명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가미가제에서 죽었다고, 일본군이었다고 사랑에 빠져서도 안되고 그걸 드러내서도 안되며, “영혼 결혼식이라니 이는 동료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독하는 일”(어느 담벼락에서 본 일갈)을 자행한 것으로 치부된다면 이 어찌 뒷걸음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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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후퇴(?)는 종종 목격된다. 얼마 전 경주 시장이 자매 도시인 일본의 교또에 마스크를 보냈다가 융단 폭격을 받았다. 몇 달 전처럼 우리가 마스크가 귀하던 때 일본으로 빼돌린 것도 아니고, 불법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일본인에게 뇌물을 받고 준 것도 아닌데 경주 시장은 ‘매국노’에 ‘이완용보다 못한 놈’이라는 욕설에 푹 ‘담궈져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는 마스크의 위력은 우리 모두 아는 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좀 나눠 보낸 것이 왜 그런 욕을 먹어야 할까.

수십 년 이어져 온 수요시위가 침묵 시위로 대체된 적이 두어 번 있었다. 1995년 한신대지진 직후, 그리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였다. “길원옥, 이옥선, 이용수(84), 김순옥(90), 박옥선(88) 할머니는 가만히 두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숨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노란색 나비의 색깔도 바뀌었다. 할머니와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검은 나비를 손에 들었다.” (한겨레 2011년 3월 16일) 이런 모습이야말로 위안부 운동의 희망이며, 그 가치를 드높이고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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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이 “일제의 만행에 짓밟힌 민족의 딸”들의 원한을 풀자는 취지여서는 안될 것이다. ‘민족의 딸’이 짓밟혀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어린 ‘소녀’가 끌려가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여러 명의 다양한 처지의 여성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자리에서, 자력으로 극복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인간 이하의 처우를 받고, 소모품으로 때로는 제거 대상으로 치부돼 죽어갔기에 그 해결을 위해 이토록 오래 싸워 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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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이 펼쳐온 위안부 운동이 ‘총선은 한일전’ 따위의 저열한 구호로 대변되는 현실이 내게는 도무지 살갑게 여겨지지 않았거니와 국회의원 당선자를 옹호하겠다고 실제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 가미가제 병사와 영혼 결혼식’을 했다며 꿍얼거리는 일은 위안부 운동을 위해서도, 밝혀야 할 역사를 위해서도, 나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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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지 말자. 모든 운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운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을 잃은 정의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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