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양쪽의 스승 손정도

in #kr5 years ago

1931년 2월 19일 분단된 양쪽의 스승 소천

대학 입학할 때 선배들은 악착같이 ‘분단조국’ 연호를 썼다. 좀 달리 쓰면 ‘통일염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고 투쟁성 넘치는(?) 사람들은 ‘미제강점’이라는 연호를 굳이 끌어대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따지면 올해는 분단조국 69년이 된다. 그 분단의 세월은 자성 강력한 자석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철가루처럼 N극과 S극으로 끌어당겼다. 누구든 그 한쪽을 강요받아야 했고 그 선택을 거부한 사람들은 대개 배겨내지 못했다. 그렇게 양쪽에서 미움받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지만 양쪽 모두에서 존경받고 추앙받는 사람은 열 손가락도 안되지 싶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1931년 2월 19일 세상을 떠난 목사 손정도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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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안도 강서 사람이고 고을에서 행세깨나 하는 유림의 자제였다. 그런데 어느날 평양에 가던 길에 유숙하게 된 조 목사라는 사람에게서 기독교라는 것을 접하고 그만 정신을 빼앗기고 만다. 마치 사울이 빛을 보고 돌변한 것처럼, 갓 쓰고 상투 튼 청년 손정도는 당일로 예수의 사도가 되고 만다. 젊은 혈기 새로운 종교의 열기에 넘친 그는 당장 상투를 잘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신주를 다 파묻고 사당마저 박살내 버린다. 당연히 친척들은 이 패륜아를 때려 죽이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손정도는 성경의 야곱처럼 도망하는 처지가 됐고 다행히 평양의 선교사의 비서 겸 한국어 교사 자리를 얻고 숭실학교에도 입학한다. 그의 동기 가운데에는 조만식이 있었고 그 선배 가운데에는 김형직이 있었다. 김형직.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그는 바로 김일성의 아버지였다.

그가 숭실학교에 재학 중이던 1907년 평양에서는 한국 기독교의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른바 평양 대부흥.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와 과오를 토로하면서 그 회개의 열기가 신도들로 번져 나가 일대 신자 수의 격증을 불러온 사건을 말한다. 많은 이들이 이 열기에 휩싸였고 손정도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는 좀 특이했다. 그는 복음만큼이나 나라와 민족을 고민하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8절 말씀이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손정도는 여기서 이스라엘을 ‘대한제국’으로 바꿔 읽었다. 그 기한과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성령’이 임하시고 또 핍박받는 이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의 구원자를 위하여 증거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마침내 독립이 올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앞에 2천만 명의 동포들이 그 앞에 늘어서는 환영 속에서 “그들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스스로에게 선포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이걸 봤으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 못했을 것이다.


안창호와 함께 한 손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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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목사가 됐다. 하얼삔에서 목회를 하며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엉뚱함 혐의를 뒤집어쓰고 잡혀가서는 무지무지한 고문을 받는다. ‘죽음이 더 그리운’ 고문을 받던 중 순교자들의 환영에 사로잡혔다가 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너를 아노니 너는 두려워 말라.” 손정도 목사 고문 받다가 춤을 춘다. 일본 경찰은 이놈이 미쳤구나 어안이 벙벙하여 고문을 멈췄다고 한다. 주님은 참으로 다양하게 역사하신다. 그리고 사람 따라 다르게 역사하신다.

그 고초를 치른 후 서울로 온 손정도 목사는 정동교회 등에서 목회를 한다. 그는 그때까지도 남녀를 가르고 있던 휘장을 걷어 버린다. 그는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을 동시에 설교하며 정동교회를 2천명 규모의 교회로 부흥시킨다. 그의 설교를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던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이화학당의 소녀 유관순도 있었다. 그녀가 만세 부르다가 스러져 간 3.1 운동 이후 손정도는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열심히 활동한다. 그러나 그를 진저리치게 만든 것은 임정 내부의 파벌 싸움이었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지방색을 가르는 파당싸움을 말아야 한다. 좁은 나라 한 핏줄의 겨레가 무슨 남도니 북도니, 호남이니, 영남이니 하며 네 갈래 열 갈래로 갈라져 싸우는가? 이는 나라를 잃고도 정신을 못 차리기 때문이다.”고 설교하던 그는 임시정부의 동지들을 매섭게 꾸짖었다. “우리가 독립운동 5년에 한 일이 무엇이오. 서로 죽이는 일만 하였소. 죽음에서 나오지 못하면 삶을 얻지 못하오.”

그는 만주 길림으로 갔다. 중국인들의 횡포 속에서 조선인들이 타향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땅을 개간하고 터전을 일구던 곳. 독립운동의 꿈을 안고 고국을 떠난 젊은이들이 모여 있던 곳. 그곳에서 손정도 목사는 자신의 가산을 다 팔아치워 학교와 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농민호조사’(互助社)를 조직하여 농민공동체를 형성하는 한편 이념과 노선에 관계없이 독립운동을 지원한다. 그는 왕년의 중학 선배 김형직의 아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있는 것을 알았고 그를 백방으로 손 써 빼내는 한편 친자식같이 거둬 준다. “손목사가 아니었다면 감옥 생활을 10년쯤 더 했을 것이며 그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라고 감복한 젊은이는 김성주. 후일의 김일성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손정도 목사를 “친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했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각지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또 조국을 전하고 희망을 전하던 목사, “한 생을 목사의 간판을 걸고 항일성업에 고스란히 바쳐온 지조가 굳고 양심적인 독립운동가” (김일성의 표현) 손정도 목사는 1931년 2월 19일 한 동포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가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말았다. 김일성 주석은 평생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고 <조선의 별>이라는 영화의 1,2부를 그에게 할애하는 정성을 베풀었다. 또 자신과 유달리 친하게 지냈던 손정도 목사의 둘째 아들 손원태(미국 거주)를 기어코 초청하여 8순 잔치를 평양에서 열어 주었고 손원태는 사후 평양에 묻혔다.


손원일 제독

이렇게 말하니 친북인사 가족 같지만 손정도 목사 자신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고 그의 장남은 손원일.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사람이다. 6.25때 부산항으로 직행 침투하려던 인민군 선박을 격침시켜 부산의 안전을 확보한 이이고 인천 상륙 작전 등 작전에서 해군 참모 총장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한국 해군은 2008년 실전배치된 잠수함에 ‘손원일함’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리고 있다. 그는 당연히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남과 북 모두로부터 존경받으며 그 아들들 또한 공평하게 남과 북에 그 유해를 두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별종. 손정도 목사가 1931년 2월 19일 그 치열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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