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6년 9월 2일 런던 대화재가 바꾼 것

in #kr2 months ago

1666년 9월 2일 런던 대화재가 바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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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잊혀진 떡밥이지만 20세기 말엽에는 21세기가 오기 전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고 지구가 멸망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툭하면 화제가 됐었다. ‘고도우 벤’으로 기억하는 일본 작가의 넌센스에 가까운 넌픽션 ‘지구 최후의 날’은 일약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나 또한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다. 지구 멸망을 산정한 고도우 벤의 국제 정세 예측은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책에 소개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분명히 신기했다. (물론 그조차 후세의 조작이라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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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등장이라든가 에드워드 8세의 이혼 등 20세기 사건부터 자신이 섬기던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마상경기 중 사고로 눈을 찔려 죽을 것이라는 당대의 예언까지 그의 예언시들은 그럴싸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럴싸하게 갖다붙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예언시 가운데 발생년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경우는 거의 없는데 예외라면 이 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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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의 3배에 6을 더한 해에
런던은 불타 정의로운 자의 피를 요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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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3+6= 66이다. 그리고 1666년 9월 2일 런던 대화재가 일어났다. 당시 런던은 인구 50만의 대도시였다. 16세기 이후 수도 런던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었고 사람들은 난잡하고 조악한 판잣집에 처박혀 살았다. 난립하는 집들 속에 골목들은 좁아졌고 미로같이 복잡해졌다. 선술집의 손님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코가 비뚤어진 취객들도 골목 어귀에서 퍼질러 잠든 새벽 2시께 왕실과 해군에 빵을 공급하던 제빵업자 토머스 페리너는 화들짝 잠에서 깼다. “이게 무슨 타는 냄새야.” 불이 난 것이다. 페리너는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왔으나 그 사이에 불은 옆 가게로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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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런던은 그 특유의 비 자주 오는 음산한 이미지와 달리 오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고 바짝 마른 목조 주택들은 훌륭한 불쏘시개가 됐다. 골목 전체가 타오르는 데 몇 분도 걸리지 않았고 불길은 둑 터진 물길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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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사람들이 악을 쓰고 벌거벗은 채 튀어나왔다. 불이야 불이야. 그러나 정작 보여야 할 민간인 소방 조합, 즉 소방대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공식적인 국가 기관으로서의 소방서가 존재하지 않았고 화재가 발생하면 민간인들이 결성한 소방 조합 사람들이 출동해서 진화했는데 이들이 미적거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빵 공장 주인이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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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크기는 언제나 사태 초반에 결정된다, 이 원칙은 21세기 한국의 세월호 참사나 17세기 런던의 대화재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됐다, 소방대원들이 조합원 가입 여부를 따지는 사이 불길은 불바람이 되고 볼폭풍이 되어 런던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불폭풍은 조합 가입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이제는 소방조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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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물로도 끄지만 맞불을 놓기도 한다. 즉 불쏘시개를 없애 버리자는 전략. 런던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판잣집들을 해체해 불길 확산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런던 시장은 토머스 블러드워스는 태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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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을 부숴 화재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일갈했다, “다 임대건물들이고 주인들 확인도 안받았잖아!” 불길은 점점 더 치명적으로 타올랐지만 그는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이 정도 불은 여자 오줌으로도 끄겠다!” 어디 소인국에 간 걸리버만한 여자라도 섭외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결국 그날 저녁이나 돼서야 건물 파괴령이 내려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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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5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긴급 출동한 군대가 화약을 터뜨려 건물들을 부수고 긴급 투입된 군대가 건물을 대거 부수고 화약을 터트려 방화로를 만들어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그러나 화마가 이미 런던 시내를 포식한 뒤였다. 1만 3천 2백채의 집과 87개의 교회가 사라졌다. 80%가 넘는 시민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화재 와중에 찰스 2세는 기민한 쇼맨쉽을 발휘했다. 몸소 물동이를 들고 화재 진압에 나서는 제스추어를 선보였고 구호품 지급에도 열을 올렸다. 올리버 크롬웰에게 아버지 찰스 1세의 목이 떨어져 나간 뒤 해외로 도망갔다가 크롬웰 사후 왕좌에 오른 그는 이런 행동으로 국민의 환심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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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앙 뒤에는 언제나 분노가 타오르고 또 다른 불쏘시개가 필요했다. 로마 대화재 후에는 기독교인들이 타겟이 됐고 관동 대지진 후 조선인들이 표적이 됐다면 런던 대화재의 마지막 불쏘시개는 가톨릭교도와 역대의 앙숙 프랑스인, 그리고 전쟁을 치른 네덜란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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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불행했던 이는 프랑스인 위그노, 즉 신교도 시계공 로베르 위베르였다. 그는 자신이 가톨릭 교황의 하수인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불지르려 했다가 실패하고 빵집의 창문으로 수류탄을 던져 불을 냈다는 대담한(?) 자백을 하고 목이 매달렸는데 그가 런던에 온 것은 화재 발생 이틀 뒤였다. 즉 그의 자백은 고문 기술자들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실현. “정의로운 자의 피를 요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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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은 그만큼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법이다 1665년 그러니까 대화재 전 해, 런던은 페스트에 시달리고 있었고 수만 명의 희생자가 났다. 그런데 이 대화재를 거치면서 페스트를 옮기는 쥐떼들도 싸그리 불탄 탓인지 페스트 유행이 뚝 그쳐 버렸다. 주기적으로 페스트에 시달리던 영국에서 더 이상 페스트 유행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걸 새옹지마라 할지 전화위복이라 할지 모르겠는데..... 노스트라다무스는 이 상황도 예언을 했다. “그 항구도시에 역병이 들끓어 죽음으로 보복하기 전까지는 그치지 않으리.” 런던대화재의 공식 희생자는 ‘겨우’ 6명이었다. 정말 6명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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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화재 이후 바뀐 것 둘. 화재보험이 생겨났다 영국 정부는 화재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추진할 사람을 찾았지만 특정인들의 짬짜미 조합이 아닌 일반인 상대로 한 보험 설계는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에서 니콜라스 바본이 등장한다. 니콜라스 바본이라는 인물은 원래 치과의사였는데 대화재 이후 건축가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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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면서 화재에 의한 피해와 그 보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11명의 직원들과 함께 1680년 세계 치초의 화재 보험 회사를 꾸리게 된다. 상인길드나 직공들의 조합에서 운영하는 화재보험 형태는 존재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 문호가 열렸던 것이다, 우리 주변의 00화재보험의 연원은 런던 대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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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앙이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우둔함과 사악함이다. 이 둘은 쌍끌이가 되어 재앙의 규모를 키우고 더 많은 그리고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피해를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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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삼킬 듯 타오르는 불 앞에서 “여자 오줌으로도 끄겠네”를 뇌까리던 런던 시장과 코로나가 불처럼 번지는 나라에서 “300명 밖에 안죽은 코로나 때문에 예배 포기 못하겠다,”고 주절대는 사탄교 목사가 그를 입증한다. “우리 조합원 아니네.” 하면서 빵집에 타오른 불을 강 건너 불구경했던 런던의 소방조합 사람들과 교회에서 숙식하고 같이 뒹굴면서 무려 천 명의 바이러스 매개체들을 키웠던 사랑제일교회 인간들이 그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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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재앙은 인간에게 새로운 지혜와 전기(轉機)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몇 세대에 걸쳐 영국을 괴롭히던 페스트를 끝장내 준 것이 대화재였고 화재보험 같은 현명한 도구와 그 후 몇 번의 대화재를 막을 방책들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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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재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최소한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류’였다고 자부하는 이들의 민낯은 보게 됐다. 이미 사이비종교화된 한국의 일부 개신교도들의 광기를 확인했고 재앙을 이용하여 남의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겠다는 일부 ‘어린’ 의사들의 독기를 보고 있다. 넓게는 코로나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기후를 고민하게 됐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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