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홀리지 말자

in #kr4 years ago

귀신에 홀리지 말자

image.png

.

문경 새재를 걸어 넘다 보면 산들바람처럼 일어 귀에 꽂히는 옛 사연들과 끊임없이 조우하게 된다. 그 가운데 문경새재까지 내려왔다가 이곳을 포기하고 충주로 돌아가 배수진을 쳤던 신립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럿이다. 그 중의 하나가 한을 품은 여자 귀신 이야기.

.

신립이 젊을 때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어느 외딴 집에 이르렀는데 그 집은 괴물이 나오는 집이었고 온 가족을 잃은 처녀 혼자 남아 있었다. 사연을 들은 신립은 용맹을 뽐내 괴물을 죽이고 소녀를 구했는데 다음 날 소녀는 무작정 신립을 따라나섰다. 신립은 처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장가를 간 몸이라 그랬는지 여자의 마음을 냉정하게 뿌리쳤고 상처 입은 그녀는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

그런데 신립이 무과에 급제하고 두만강변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뜻밖에도 그 귀신이 나타났다. “이승에서는 장군님을 모시지 못했지만 귀신이 돼서라도 장군님을 돕고 싶었습니다.” 귀신은 싸움 때마다 이리저리 하라고 일러 주었고 이는 귀신같이(?) 들어맞았다. 신립은 승승장구했고 임금과 사돈까지 맺게 된다. 그 절정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신립은 온 나라의 기대를 안고 병력을 이끌고 문경까지 내려와 새재에 진을 쳤는데 예의 귀신이 나타난다.


image.png

“장군의 장기는 막강한 기병대로 평야에서 적을 밟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물며 일본군은 여진족같은 기병도 아닌 아장거리는 보병들인데 이 첩첩산중에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신립은 이 말을 곧이듣고 부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을 거두어 충주로 내려갔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고 싸우다가 참패하고 말았다. 신립이 칼을 빼들고 마지막 돌격을 감행하려는 찰나 갑자기 허공에서 귀신이 나타나 그 위를 빙빙 돌면서 손뼉치며 외쳤다. “이제야 내 한을 갚는구나.”

.

흔히 귀신은 ‘작게 맞고 크게 틀린다’고 한다. 전설상 신립은 귀신의 ‘작게 맞음’에 홀려 그 말을 맹신했고 결국은 그럴 듯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결정적인 오류가 섞인 함정 같은 충고에 스스로와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정규군을 쓸어넣고 말았다.

.

갑자기 웬 귀신 얘기를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작게 맞고 크게 틀리는’ 귀신의 행태가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는 모습을 반복해서 목도하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꼬드김으로 상식의 발동을 막고, 누군가를 잠시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고한 믿음으로 이끌어 돌이킬 수 없는 몰락으로 이끄는 귀신. 요즘 백주에도 활개치고 다니는 귀신의 이름은 ‘음모론’이다.

.

이 음모론이라는 귀신의 꼬드김은 사실 아주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승에서 연을 맺지 못했으나 귀신이 돼서라도 돕고 싶다.”는 단순하고 달콤한 속삭임처럼, 음모론의 시작은 매우 단순하다. 바로 만악의 근원을 상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놈들 때문이고, 그놈들의 사악함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곰보딱지를 만들고 있고, 그놈들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이라는 믿음을 심는 것이다. 물론 전제가 더 있다. 실제로 그놈들이 나쁜 놈들은 맞다는 것.

.

“저 여자가 나를 좋아해서 귀신이 돼서라도 돕고 있구나.”는 뭉클함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강고한 믿음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귀신이 일러주는 계책은 당연히 신묘할 만큼 들어맞았고 승리의 경험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회의’(懷疑)라는 방패를 던져 버리게 했다.

.

‘설마’는 사람을 잡기 일쑤지만 ‘혹시’는 사람을 살릴 때가 많다. 설마는 믿음의 의지고 혹시는 회의의 단초이기 때문이다. 나쁜 놈들에 대한 증오와 몇 번의 경험 법칙과 그럴듯한 ‘근거’들은 음모론이라는 이름의 귀신들이 즐겨 내놓는 올가미고 사람들은 너무나도 기쁘게 그 올가미에 목을 건다. 문경새재에 오른 전설 속의 신립처럼.

image.png

프랑스에서 도대체 뭘 보고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신 무용론을 펼치며 ‘비타민과 아연 섭취하면 코로나 극복’을 부르짖는 사람이나 그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백신전문가’ 오로지 선생 같은 사람, 그리고 그 글에 좋아요 누르고 다니는 이들 보면 흡사 귀신에 홀린 사람들 같다. 그들 역시 절대악을 상정하고 있다. ‘다국적 국제 제약 자본’ 그들이 행해온 죄악을 나열하고 온갖 그럴싸한 ‘전문가’들의 발언을 갖다 바르면서 나름의 논리를 형성하는데 흘낏 보면 그럴싸해 보인다. 신립에게 “당신은 기병전의 명수인데 산에서 왜 이러고 있소?” 라는 전설 속 귀신처럼.

.

위에서 말한 바 음모론의 특징은 자신들이 설정한 절대악에게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월호를 침몰시키기 위해 전속 항진하다가 앵커를 해저에 때려박고 그걸 축으로 배를 회전시켜 자빠뜨렸다는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을 기획하고 실행해 내는 조직이 ‘국정원’이고 ‘이 땅의 적폐’들이었던 것처럼.

.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그냥 투항하고 말 것이다. 그토록 엄청난 사람들과 어떻게 척을 지겠냐 말이다. 동시에 전 세계 정부들을 게나 구럭이나 몽땅 끌어모아 자신들의 사기극에 가담시키고 정부의 수반들이 코로나에 걸려 가면서까지 그 이익을 수호하게 만드는 대단한 ‘국제 제약 자본’ 앞에서도 역시 두 손을 들고 말 것이다. 이런 세계 통일을 지하에서 이룬 가공할 집단에게 저항은 무슨.

.

“글쎄 충주로 내려간다! (귀신이 그랬단 말이야!)” 라고 으르렁거리는 신립의 신앙 앞에 부하 장수들이 두 팔을 벌린 것처럼. 그런 게 있다고 믿는 다음에야 무슨 말을 하겠는가.

.

헛되고 안된 것은 귀신을 믿고 문경새재를 버리고 충주로 내려간 전설 속 신립의 명령에 따라 속절없이 내려가서 제대로 기병전을 펼칠 지형도 못되는 탄금대에서 돌격을 거듭하다가 죽어간 조선군들일 뿐이다. 그래도 니탕개의 난을 수이 무찌른 신립 장군님인데 뭔가 뜻이 있으시겠지 고개 주억거리며 바지런히 탄금대 가는 험한 길 (문경새재에서 탄금대 가는 하산길도 무척 험하다)을 뛰어갔을 새까만 병정들일 뿐이다. 물론 ‘전설의 고향’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실제 사실과의 싱크로율도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

사람이 귀신에 홀린다는 게 별 게 아니다. 그저 그런가보다, 맞네 맞어, 그거 참 신통하네로 이어지다가 결과적으로 커다란 뒤통수를 맞고 “안 그런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울먹이는 인간들의 역사가 결국 ‘홀리는 귀신’을 창조한 것일 뿐이다.

.

귀신에 홀리지 말자. ‘그럴 듯함’에 속지 말아야겠다. 아울러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어 보자. 아울러 “이 모든 것은 00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작자들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의심을 포기하지 말자.

.

그런 의미에서 말도 안되는 백신음모론을 펼치는 귀신에 홀린 사람들에게 호응하는 분들과의 교류 끊는다. 귀신에 홀린 사람들은 추임새 넣어 주면 더 날뛴다. 좋아요도 눌러주지 마시라. 이러면 또 누가 반문하겠지. "백신이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

당근이다. 하다못해 페니실린을 맞고도 죽는 사람이 있다. 타미플루 후유증도 보고돼 있다. 그렇다고 페니실린과 타미플루를 포기할 수는 없다. 유례없이 다급하게 백신을 만들어낸 것은 지금 상황이 유례가 없이 다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게 다다. 불안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에 '음모'가 끼어있다는 것은 귀신의 속삭임일 뿐이다. 귀신에 홀리지 마시라니까.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5
JST 0.031
BTC 59522.29
ETH 2588.06
USDT 1.00
SBD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