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악의 식당
얼마 전 PD수첩에서 존경받는 고승들의 실생활에 대한 취재로 많은 이들을 멘붕에 빠뜨렸는데요..... 방송 만들다 보면 가끔 뒤통수도 이런 뒤통수가 있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어질어질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는 황태 해장국이었는데.... 문득 아래의 최악의 식당이 스멀스멀 되살아나서....
방송을 위해 "크지 않고 허름한, 소박하고 사연이 있는" 식당을 찾아 발품을 팔던 시절, 저는 강북구엔가 있던 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황태찜을 주 메뉴로 하는 자그마한 식당. 생긴지는 5년 밖에 안되었는데 그 사연이 가상하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었지요 . 사연인즉슨
원래 IMF 이전에는 잘나가던 건설사 사장이었던 식당 주인은 IMF 때 모든 사업을 들어먹고 알거지가 됐습니다. 그 역시 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 위기의 구원자는 역시 그의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고, "당신이 해 온 만큼만 하면 무얼 해도 자신 있어요."라고 수시로 최면을 걸어줌으로써 공사판 함밥만 먹던 남편을 주방장으로 탈바꿈시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사연만 듣고 보면 열녀문 하나 세워 줄만 합디다 (열녀문이 그런 데도 쓰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장사도 꽤 잘된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라니까 웬만큼 자리 잡혔다고 봐야죠. 원래 식당이란 본 궤도에 올라서는 것이 우주선 발사만큼 어렵지, 일단 궤도에만 들어서면 접시물에서 헤엄치기니까.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 두 부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닭살부부였습니다. 말끝마다 남편에 대한 사랑타령이요 말머리마다 마누라 자랑이니, 내 눈꼴은 물론이요 카메라 렌즈 눈꼴까지 시어서 못봐줄 지경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정한 남녀를 보면 웬지 심술나는 이상성격의 나는 냅다 한 마디 질러 버렸죠.
"거 두 분 금슬 좋은 거 알겠으니 그만 좀 합시다."
헌데 무안해 해야 마땅한 남편은 일점도 당황한 빛 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사귄지 100일 된 애인의 손동작으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허허 워낙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 보니... 지금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하며 아내가 얼마나 자신한테 큰 힘을 줬는지에 대해 또다시 녹음기를 틀어댈 기세를 보이자 나는 저만치 도망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이 40대 후반에 그토록 아내를 사랑하고 또 그것을 몸으로,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할까 싶은 마음으로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했지요.
그러던 차에 교복을 입은 그들의 딸이 “엄마!”를 외치며 주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야무지게 머리를 땋아내린 것이 그 엄마를 쏙 뺐네요. 나는 문득 심술이 돋아서 그 딸을 돌려세웠습니다.
"어이 딸... 엄마 아빠 닭살이지?"
"헤헤 그럼요. 가끔은 제가 질투날 정돈데요 뭐. 그래도 좋아요. 나도 시집가면 저렇게 살 거예요. 천생연분이잖아요."
"........"
와 숫제 입을 막아 버리는 저 간악하도록 이쁜 딸내미를 보라. 주방에 들어와서도 연방 아빠에게 아양떨고, 엄마에게 돈 달라고 투정 부리고, 손길 바쁜 부모들은 그 와중에도 흐뭇한 웃음과 부드러운 대꾸를 놓치지 않고... 이 가정이 5년 전 자칫하면 아빠가 세상을 버릴 위기에까지 몰렸던 위험한 가정이었던가.'
나는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래서 닭살 아내에게 무한한 존경심이 우러났고, 이 가정의 행복을 카메라에 담게 된 기쁨이 불현듯 뿌듯하게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하는 ‘상록수’의 한 소절이 귓가에 들려오면서, 크게 웃고 있는 세 가족의 얼굴을 그 위에 오버랩시킬 상상까지 하니 콧날이 시큰해집니다. “국민 여러분 IMF는 극복되었습니다.”
방송은 잘 나갔습니다. 제목은 "요리사가 된 건축가". 내부 평도 좋았고, 심의 역시 ‘알콩달콩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가 잘 반영…’ 어쩌고 저쩌고로 나왔지요. 그런데 문제는 방송 다음날 오후 발생했습니다. 다른 아이템을 촬영하느라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고 있던 내 핸드폰이 발악을 하듯 온몸을 떱니다. 촬영 중 습관대로 계속 무시하고 있는데, ‘너 안받으면 후회한다’는 듯이 5분동안 진동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핸드폰을 여니, 한 작가의 아우성이 귀를 뚫어요.
"선배! 어제 그 식당 주인 있죠? 그 사람 본처한테서 전화왔어요."
"뭐가 어쩌고 어째?"
난리가 났으니 일단 통화를 해 보라는 작가의 채근에 득달같이 카메라 놓고 알려준 번호를 누르니 흥분이 채 식지 않은 어떤 중년 부인이 전화를 받습니다. 신분을 밝히자마자 퍼부어지던 흥분된 육성을 간신히 모면하고 자초지종을 청하니 대충 이런 것이었지요.
"나, 그 사람하고 13년 살다가 IMF 때 그 사람 부도나고 빚잔치하면서 위장이혼했어요. 아들 둘이 눈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요. 이 때만 넘기면 다시 합치자고 두 번 세 번 다짐하더니 언제부턴가 소식도 없더군요.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송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방송에 내보낼 수 있어요? 지금 아들 둘이 난리예요 칼 들고 방송국에 간다고..."
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나 역시 기절할 것 같은 몸을 가까스로 가누면서 문제의 식당에 전화를 걸었어요. 받은 사람은 문제의 닭살 부부 중 아내.
"이게 대체 어찌 된 사연입니까!"
"아… 그거 별 문제 아니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뭘 신경쓰지 말아요? 난리가 났는데..."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거-든-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 음절 하나 하나를 똑순이처럼 끊어 말하는 그녀에게 나 역시 분노로 가득찬 스타카토를 날렸습니다.
"남-편-인-지 누-군-지 빨-리 바-꿔-요."
사태는 너무도 쉽게 파악되었습니다. IMF 때 위장이혼한 뒤 홀로 지내다가 그녀와 눈이 맞았고, 그녀와 함께 식당을 차렸고, 그 딸은 새 여자의 딸이며, 아직 둘은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동거인 상태였습니다.
"18년 동안 한 번도 싸움하지 않은 잉꼬부부"와 "IMF를 맞아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탈출"했다는 것은 모조리 가공의 이야기였습니다. 심지어 "나도 시집가서 저렇게 살 거예요."라는 딸의 멘트까지도 꾸며댄 것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지만 그들은 분명 사기를 친 것이고, 나는 그 사기에 꼼짝없이 걸려든 물고기가 됐습니다. 어디 나 뿐입니까. 방송을 보며 ‘그 부부 참 예쁘게 산다’면서 흐뭇하게 웃었을 수십 만 내지 수백 만의 시청자들까지 멍청한 PD 탓에 그 사기의 피해자가 됐으며, 방송을 통해 "금슬 좋은 부부"가 공증된 마당에 저 한 구석에 처박힌 본처와 아들들은 졸지에 "정부(情婦)와 사생아"가 되어 버린 겁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나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나간 방송을 도로 송출실로 불러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본부인의 분노를 남편에게 돌리고 우리도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수 밖에. 그러던 차에 문제의 ‘두 여자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할 말이 남으셨어요?"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럼 끊으세요."
"저기… 인터넷에 다시보기인가 하는 것이 있다면서요."
"그런데요?"
"아들놈들이 그걸 보면서 치를 떤다는군요. 이왕 나간 방송이야 그렇다 치는데 사람들이 그걸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보면서... 그거 지워 달라고... 안그러면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면서..."
"방송이 장난인 줄 아십니까? 이만 끊겠습니다."
전화는 끊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걸려 왔고 동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계속 애걸복걸하더군요. "애비로서 못할 짓 했으니 한 번 봐 주시라..."는 거였습니다. 애비로서 못할 짓이란 걸 생각 못했냐고 쏘아부치고 전화 끊었지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방송의 ‘다시보기’를 삭제한다는 것은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닐뿐더러, 층층시상의 선배들과 간부들, 그리고 동영상 관리팀에게 자문과 도장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거든요. 더군다나 우리의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이 경우에 있어 방송 '공신력'의 손상을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보상을 받든 지지고볶든 자기들끼리 해결할 문제를 왜 우리에게 가져오느냐"는 볼멘소리에서부터, "너, 그거 삭제 요청하는 건 PD임을 포기하는 거다"라는 못박기까지.
기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리고 우리 편한대로 생각하자면, 그 본처와, 아들 둘과, 두 여자의 남편과, 또 한 여자,와 그 여자의 딸이 어떻게 죽이고 살리든 우리에겐 아플 것도 없고 간지러울 것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애써 외면하기로 한다면 그저 잠시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죠. 우리가 잘못한 부분은 오로지 혼인신고 안된 동거인을 부부로 일컬은 것 밖에는 없었으니까요. 또 일점일획의 명예훼손이나 타인에 대한 비방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본부인과 아들 둘의 실체를 알지도 못했거니와 그들을 무시하지도 않았으므로. 엄밀히 말해, 그것은 ‘그들의 문제’였고 내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는 누구 말마따나 추호도 없었습니다. 하물며 나의 길지 않은 방송생활 중 최악의 쓴맛을 보게 한 그 가증스런 주인에게 뭘 어떻게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의 터럭만큼도 생기지 않았구요.
그러나 결국 나는 선배에게 “개새끼” 소리를 들어가며, 동영상관리팀에게 싸늘한 질문과 “똑바로 하라”는 지청구를 받아가며, 문제의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전파를 널리널리 타 버릴 대로 타 버린 동영상이지만 그를 삭제해 주는 것이 아버지의 그 가증스런 배신, 그리고 그를 방송이라는 매체에 자랑스레 공개까지 해 보인 아버지에게 치를 떠는 아들들에 대한, 그리고 버려진 아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6분 30초짜리 동영상이 그들의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내 인생 최악의 식당과는 인연이 끝났습니다. 그 뒤로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고 나 역시 그쪽으로는 눈길도 귓길도 준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배신자이자 두 여자의 남편 노릇을 했던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나 애써 외면합니다. "18년 동안 잉꼬부부"를 강조하던 그와, 법적으로 무슨 문제 있냐며 스타카토로 대꾸하던 그 샛마누라(?)가 세트로 떠오를 때마다 어지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이 제 머리를 만수산 드렁칡처럼 얼키고 설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만나는 건 뱀이랑 뽀뽀하는 것보다 싫지만, 한 번 우연히 만난다면 작심을 하고 캐물어 보고 싶은 질문들이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했을까? 대체 그 사람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는 그만 바라보고 살던 조강지처와 자식들, 하지만 처절하게 배신당한 자식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건설 현장의 지휘봉 잡던 투박한 손이 어떻게 불과 1년만에 저렇게 깔끔한 요리사의 손으로 둔갑할 수 있었을까. 과연 그를 저렇게 변하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Hi LOVE YOUR POST MAN!!! LIKE MY POST TOO!!!!! HERE IS THE LINK: https://steemit.com/bots/@abusereports/last-minute-upvote-list-2018-05-02
생각만해도 식은땀이 쫙 나는 일이네요.
그래도 그때 하신 선택이 바람직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이 영향력 있다는건 이래서 하는 말이겠죠...
그 식당 사장 정말 뻔뻔하네요 아이고
요즘도 가끔 꿈에 나옵니다 아주 가끔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게 다 조작된 모습이었다니. 그 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상부에서도 깨지셨을 산하님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모르겠네요 ㅠㅠ..
뭐 오래 전 일입니다만.... 위에도 얘기했지만 가끔 꿈에 나옵니다 ㅋㅋ
PD셨군요. 이렇게 글을 통해 서로를 또 하나씩 알아거네요^^
찜찜한게 있으면 해결을 해야지요. 동영상 잘 지우셨어요~
네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라도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해 애걸복걸하는데 들어 줘야 하는 게 맞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와...반전 ㄷㄷ 도입부분 부부이야기에 흐뭇해지며 산하님 모습도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완전 막장드라마 였군요 ㄷㄷ 저 같았으면 삭제 요청도 안했을거고, 어디 너같은 인간이 어떻게 사나 보자 하고 계속 확인했으거 같아요;;;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ㅠㅠ 그런데 나중에 남자가 너무 애걸복걸하니 또 측은하기도 하더군요..... 마음으로서야 당연히.......
앗. 정말 한편의 드라마네요.
정말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방송 타면 장사 잘될 것이다..... 뭐 한 5분 나가는 거 설마 우리 가족들이 보겠냐..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방송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어 생각이 막히네요. 여태껏 읽었던 글 중에 이렇게 통렬한 글은 없었습니다. 하... 라쇼몽 아시나요? 정의의 여신은 공정을 위해 눈을 가렸다지만 전 가끔 생각합니다. 모든 진실을 꿰뚫어 보는 것은 그녀조차 불가능에 가깝다는 불가지론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저 이런 일도 있구나 새기고 갑니다.
라쇼몽 알지요..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는 걸 처절하게 깨우쳐 준 영화죠..... 인간 사는 세상은 너무 구구절절 기묘한 일이 많습니다.
IMF가 여러 가정 망가뜨렸죠 ㅠㅠ 잘 읽었습니다 PD님 ㅋ
네 IMF는 정말..... 우리 생의 큰 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운 좋게 비껴갔습니다만.
세상 사기꾼 많다지만 멍청하고 바보같은 사기꾼도 있네요
방송타면 바로 들킬걸 멍청한게아니고 새여자가 뻔뻔한건가요?
18년쯤 전 얘기니.... 인터넷도 요즘같이 활성화돼 있을 때는 아닌지라.... 욕심이 앞섰던 모양입니다
꾸욱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