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사건, 때렸으면 끝, 그런데 때렸나?

in #kr6 years ago

이수역 사건 - 때렸으면 끝. 그런데 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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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이든 아동학대든 하여간 '약자에 대한 폭력'에 관한 아이템을 찾으러 천지사방을 누비던 때가 있었다. 프로그램 런칭 전 파일럿(견본) 프로그램을 만들던 즈음이라 맨땅에 헤딩이었다. 파출소에서 그냥 생으로 밤새다가 가정폭력 신고 들어오면 같이 출동해서 아이템 찾자는 그야말로 소 발에 쥐 잡자는 식의 무대포 정신을 발휘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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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 어찌 제보가 하나 들어왔다.아내가 가출 후 나쁜 길에 빠진 거 같다는 거였다. 일단 가보자. 작가와 PD 너덧명이 총출동했다. 만리동 고개 꼭대기께 골목길을 구불구불 들어가 만났는데 생긴 건 멀쑥한 이 남자, 아내가 툭하면 가출한다고 미치겠다고, 뭔가 나쁜 꾐에 빠진 거 같다고 그 용의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 놨다. 나쁜 놈들이 주변에 있는 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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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던 심경이라 혹시 사이비 종교 같은 거나 있어서 아내를 자꾸 끌어내는 게 아닐까 그러면 행여 아이템 되지 않을까 이리저리 캐물었는데 그런 거 같다가도 아니고, 말이 빙빙 돌다가 밖으로 샌다. 계속 빙글빙글 돌다가 갑갑해져서 조금 휴식차 집 밖에 나와서 담배 타임 갖는데 이웃집에 취재갔던 작가가 씩씩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예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말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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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개새끼예요 아주. 누가 꼬여내긴 누가 꼬여내. 두들겨 패서 나간 거라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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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의 증언은 일치했다. 남자는 가정폭력 상습범이었다. 어라? 개새끼네. 그런데 개새끼인 건 마지막으로 확인해야지. 다시 들어가서 나쁜 놈 꾐에 빠져 집 나간 마누라 찾아달라고 눈물 뚝뚝 흘리는 넘 앞에 앉았다. (진짜로 눈물 뚝뚝 흘리더라) 슬슬 말을 섞기 시작했다. 유도심문이라고 한다. 전문용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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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하시겠다. 부인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빌어야죠. 다시 좀 나가지 말라고 애들 생각도 해서."
"어우 한 두번 그런 것도 아니면. 말을 안들으면 강제로라도 주저앉혀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 휴우....."
"나이도 열 살 아래래매요. 그래도 한 번도 폭력 쓰신 적은 없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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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떠벌이고 있는데 남자가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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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때려도 봤지요. 휴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카메라를 접었다. "야 가자." 순진한 아내를 꼬여내는 바깥의 나쁜 놈들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남자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마누라 때리는 놈이 그러든가 말든가. 당황한 남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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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문제가 있나요?"
"부인 때리셨다면서요."
"아니 너무 속을 썩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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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호칭은 '선생님'이었는데 그즈음에서 바꿨다.
"속을 썩히든 속을 태우든 때리면 안되는 거예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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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항상 이유가 있었다. 폭력이 정당화될 이유가 존재한다는 게 아니다. 폭력을 휘두를 때는 무슨 이유든 주워섬겨지고, 무슨 명분이든 갖다 붙여진다는 거고, 사람들은 폭력의 파괴력 그 자체보다는 그 이유와 명분을 규명하는데 더욱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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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때린 건 잘못했지만"이라는 꼬리표가 달린다. 그 꼬리표가 얼핏 그럴 듯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변명들은 "그래서 때렸다"는 속셈의 다양한 표현에 불과하고, 폭력에 대한 형식적 반성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바로 "맞을 짓을 했네"와 "맞아 싼 짓"과 같은 관용어로 나아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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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용어구의 영향력 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죄책감을 상실해 가고 폭력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거부감으로부터 면역을 형성시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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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애니웨이,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 순간 차원이 달라지는 이유다. 모욕을 당하면 같이 모욕을 하면 된다. 명예가 훼손됐으면 상대방의 명예도 짓밟아 주면 된다. 하지만 폭력은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폭력의 '이유'가 폭력 범죄에 대한 정상 참작 사유는 될지언정,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이수역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신 나간 메갈녀들이라고 치고, 그녀들이 별 희한한 모욕을 퍼붓고 데이트하는 남녀에게 무슨 헛소리를 퍼부었다 해도 영업방해로 경찰에 끌려갈지언정 누구한테 맞아 머리가 깨져서는 안된다. 동의한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때린 사람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세상에 "맞아 싼"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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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팩트는 규명돼야 한다. 내가 이웃들의 증언을 대충 듣고도 그 징그러운 남자 앞에서 슬슬 말 돌려가며 자기 입으로 사실을 듣고자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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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주점에서 시비를 먼저 건 건 여자들이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데이트 중인 남녀가 있고 다시 다른 팀 남자들과 시비를 붙은 뒤에도 자리를 피하려 한 건 남자들이었고 먼저 물리적 타격을 시도한 건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이 폭행하는 모습은 시시티븨상으로는 없다. 주점 계단에서 시비가 있었고 거기서 "남자들이 때렸는지 여자가 실족해서 계단에서 넘어졌는지"(경찰 얘기)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즉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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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폭행은 기정사실화됐고 30만이 이 폭행을 처벌해 달라고 청원했다. 나 또한 이 폭행의 증거가 확보된다면 30만 대군의 일원이 당연히 될 것이다. 이유불문 때리면 안된다. 폭행은 안된다. 그런데 최소한 "상처가 났다"는 사실과 "짧은 머리 때문에 남자들이 시비를 걸었다." 는 등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한 여성들의 일방적인 증언만으로 폭력 범죄를 확정하는 것은, 그리고 무슨 남녀대결구도를 짜 버리는것은 매우 슬프고 암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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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을 짓을 했겠지."는 바보같은 소리다. "오죽하면 때렸겠냐"는 미친 소리다. 그런데 우선 이 질문하는 걸 사갈시하지는 말아 주기 바란다. "때린 건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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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더군요..

어느게 진실인지 모르겠어요
경찰이 얼릉 진실을 밝혀주면 좋겠네요~ 너무 궁금하네요

진실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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