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에 걸려넘어지다

in #kr5 years ago (edited)

2019년 5월23일 마약 중독자의 회복일기

얼마전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 때문에 저를 걱정하는 분들이 제법 전화를 주셨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비교적 잘 회복중이고,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저와 관련한 글에 악성 댓글을 다는 분들에게, 그 당사자는 이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아픈 사람이니까, 글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는 취지로 좀 완곡하게 쓴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플을 다는 당신들에게.

그냥 차라리 날 찾아와 칼로 찌르든 뭐든 해서 죽여주면 좋겠어요.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게요. 나도 죽는게 소원인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죽으려고 고민해봐도 부모님때문에 차마 자살할 용기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여태껏 못죽고 살아 있어요. 제가 당장 죽어도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몇년은 버티실수 있을 만큼 모아둔 돈도 있어요. 그러니 당신들이 날 찾아와서 죽여줘요. 맨 정신으로 버티기엔 저도 힘들어요. 하지만 찾아와서 저를 죽이지 않을거면, 악플은 그만 달아줘요. 제가 당신들한테 죄지은 거는 없잖아요. 저는 형사적 형벌과 사회적 형벌 모두 다 최선을 다해 치르었어요. 그런데도 악플을 그렇게 달고싶어요?
저는 우리 부모님과 가까운 지인들 외에 왜 숨어있는 당신들에게까지 평생 사과를 하며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의문이에요. 당신들이 악플을 달지 않아도 저는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죽기 직전까지 제 잘못을 성찰하면서 살거예요. 이 글 마저도 당신들을 불편하게 하면, 제게 메시지 보내요.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줄테니 찾아와서 내 숨통을 끊어요. 괜찮아요.

KakaoTalk_20190523_185715915.jpg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같아 일부러 외모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주말 태닝을 하러 갔는데 제 표정이 그리 밝지 않군요.

저는 사실 아직도 아픈 것 같습니다. 저와 관련한 악플을 보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해요. 일단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해야 하나. 근데 울렁거린다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가슴과 목 중간 사이 어떤 몸속의 공간에서 ‘통증 없는 아픔’같은 감각이 느껴져요. 이게 무슨 뉴런의 몸부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파요. 꽤 큰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의 후유증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파요.

어쩌면 저는 좀더 조용히 숨어 있어야 하는 시기에 있지 않나 판단합니다. 세상에 말을 걸기엔 제 스스로가 아직은 버겁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의 정신 건강과 치유를 위해서는 좀더 차가운 세상과 거리를 둔 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분들에게만 의존하고 있어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1년 전 마약 사건이 터졌을 때의 충격을 100 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한 60 정도의 고통이랄까. 여전히 느낍니다.

하지만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제 직업상, 마냥 숨어있을 수만은 없지요.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해야 하는게 제 직업이니까요. 그래서 그냥 이것도 내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인가보다 생각하며 버티려고 합니다. 대신 여러분들에게 ‘힘내요’ 세글자만이라도 좋으니까 댓글좀 달아달라 부탁해보자며 버티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할배의 탄생’을 집필하신 최현숙 작가님을 뵈었어요. 한 10여년만에 만났네요. 그냥 만났어요. 저 밥사주신다고 해서. 맛있는 것 얻어먹고 좋은 말씀도 들었습니다. 최현숙 작가님은, 강연 나가실 일이 많은데 뭔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시는 충고가 있다고 해요.

‘지금 걸려 넘어진 돌을 밟고 일어서면 그것은 걸림돌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디딤돌이다.’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인생에 도움될만한 문구나 격언을 들으면 머리에 화살촉이 꽂히는 것처럼 탁하고 박혀요.

아. 그렇구나. 나는 디딤돌에 걸려넘어진거구나!

저는 마약을 했습니다. 처벌도 받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힘들다기보다는 마약했다는 사실이 아웃팅 되어버렸고, 직장을 잃은 것이 힘들지요. 누군가 씹다버린 껌이 아스팔트 바닥에 착하고 달라붙어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또 그것을 발로 밟고, 재수없다며 신발에 붙어 있는 껌을 떼어내요. 아스팔트 바닥에 신발을 긁고, 그 바람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 다시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 있게 되는 더러운 껌같은 존재가 바로 저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존감이 찢겨져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있는데 나라는 물리적 존재는 사라지지도 않고, 배고픔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고, 추움과 더움을 그대로 느끼는게 괴로웠거든요.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길을 가다가도 혹여 누군가 저를 알아볼까봐 선글라스 없이는 한동안 외출도 못했지요.

하지만 그 덕에 아픈 사람들을 더 가까이서 살펴보게 되었지요. 아픈 사람들을 기록할 수 있고 아픈 사람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지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말을 저는 통역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제가 중독성 강한 필로폰을 해본게 어쩌면 참 다행이란 생각도 하게 되었지요. 기자가 필로폰을 하다니, 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지만, 말과 글을 조리있게 다듬을 줄 아는 직업인이 필로폰을 했다는게 차라리 다행인 측면도 있지 않은지 생각하게 되었지요. 우리 사회가 마약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제가 어떤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같은 기자가 더 나오면 안되겠지만요. 저는 마약 예찬론자가 아닙니다.

그래요. 일어서보려고 합니다. 저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에 넘어진 것이니까요. 힘들지만 딛고 일어서서 폴짝 뛸 수 있도록 손잡아 주시겠습니까. 제가 더이상 마약 중독의 일기가 아닌 회복일기를 쓰고 있는 이유입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마약일기,회복일기)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ort:  

기자님. 지갑 들어가셔서 Active Key로 로그인하시고 보상받은 리워드 수령하세요. 아직 안하신 것 같네요. ^^

네, 제가 알려주었습니다. ^^;;

힘내요!

감사합니다

아직 한국 사회가 성숙되지 못한 것 같아요.
나와 다른 남을 잘못된 시각으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회!
언젠가는 변화 되겠지만 이런 사회속에서도 우린 희망을 잃지 않고 개개인이 열심히 조금씩이지만 변화 시키는데 노력해야겠지요.

네 성숙은. 고민에서 시작됩니다. 아직 마약중독자가 나서서 고민을 털어놓은 적 없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회는 성숙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제가 괴롭지만. 계속 고민거리를 제공하면 됩니다. 응원해주십시오.

Congratulations @repoactivist!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published more than 10 post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20 posts.
You received more than 100 as payout for your post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a total payout of 250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지금까지 올리신 글 읽어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기자님께서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하면 좀더 행복해질까 하는 생각입니다.

스팀잇 커뮤니티는 작은 커뮤니티입니다. 규모가 작은 커뮤니티라 그런지 익명으로 글을 주고받는데도 불구하고 한마디라도 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타 인터넷 커뮤니티(디씨인사이드, MLB파크 등등..)보다는 신념 공동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확인해 보셨겠지만, 스팀잇에 쓰시는 허기자님의 글은 이미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지고 있습니다. 변명과 주접이다, 마약 사용이 어떻게 '아웃팅'이 될 수 있냐, 여전히 기xx 답다 등등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때 허기자님의 홈그라운드였던 트위터는 어떻습니까. 마약기자가 마약일기를 파는 세상이다 등등..

앞으로 이 '마약일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마약일기의 화제성이 오르면 오를수록 커뮤니티에 퍼지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악플이 달리는 속도는 제곱으로 빨라질 것입니다. '성실한' 악플러는 허기자님이 과거에 썼던 기사를 뒤져 '예전엔 이런 소리 하던 인간이 지금은 딴소리하네?'라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마약일기가 '전 한겨레 기자 허재현'의 글이 아니라 '블로거 A'의 글이었다면 어땠을까. 스팀잇에서 많은 보팅을 받을 순 없겠지요. 하지만 제가 열거했던 여러가지 악플들은 달리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합니다.

여기까지 답글을 작성하고 다시 읽어보니 주제넘은 제안을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자일 하던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기자일 말고 다른 일을 하기 쉽지 않죠. 기자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 할지라도, '글쓰기'에서 만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사회라면 허기자님이 기자일 외에도 다른 일을 생각해보실 수도 있겠으나, 기자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스팀잇은 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는데 아직은 미약한 상황이고요..

새로운 한 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5
JST 0.028
BTC 54787.37
ETH 2302.94
USDT 1.00
SBD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