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내 입건사실을 찌라시로 유통시키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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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2일 마약 일기

회사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든 출근을 해야 한다. 내가 마약을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검사결과가 정확히 나올 때까지는 ‘한겨레 허재현 기자’로 살자. 해야 할 일이 많다. 팀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어떻게 할까요.”
“나도 모르겠다. 일단 쉬어라.”
“드루킹 사건 취재 계속 해야 하는데.”
“그러게.”

일단 팀장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경찰청 출입기자이고 동시에 경찰에 입건된 사람이다. 경찰청 수사의 최고 책임자인 수사국장과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위치다. 내가 내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는 위치다. 업무를 중단하는 게 사회적 도리이다. 일단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서는 어디어디를 접촉해 추가 취재를 하면 된다고 팀장에게 설명해주었다. 팀장이 알아서 후배들에게 취재 지시를 하겠지.

팀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제 사건은 어느 선까지 알고 있나요.”
“나.부장.편집국장.그리고 사장 정도만 알고 있어. 일단 사람들에게는 집안일 때문에 갑자기 쉬게 됐다고 할테니 회사는 출근하지 말아라.”
“알겠어요.”
“일단 자초지종은 들어야할 거 같은데 오늘좀 따로 만나면 안되겠니?”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득했다. 처음에는 ‘내일 보면 안되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래도 얼른 회사에 설명을 제대로 해줘야 회사에서도 대처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비록 사고를 친 직원이지만 회사가 피해를 덜 입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해야 한다.

“오늘 저녁에 제 집앞 커피숍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은 도저히 먼 곳으로는 나가지 못하겠어요.” 팀장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잤다. 번잡한 마음 탓에 잠이 안올 거 같았는데 이상하게 계속 잠이 쏟아진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뇌가 자꾸 나를 기절시키려는 걸까.

저녁 8시가 다 되어 집앞 커피숍으로 나갔다. 검은 땅거미가 거리 곳곳을 잡아먹고 있었다. 땅거미는 점점 내 발 앞으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땅거미를 피해 팀장과 만나기로 한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좀 평소에 무겁고 차가운 말투를 쓰는 스타일이다. 대화를 할 때 회사 동료를 만난다기보다는 마치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더군다나 이런 일로 팀장을 상대해야 하니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팀장 앞에 앉았다.

“얼굴이 헬쓱해졌네.”
그러고보니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배가 고프지 않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씀드릴게요.”
“너 진짜 마약했어?”
“한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뭘했는지 아직도 정확히 몰라요.”
“그때 같이 약을 한 사람한테 뭔지 안물어봤어?”

물어보고싶었다. 하지만 끝내 물어보지 못했었다. 자세히 물어보면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그러나 투약 직후 마약임을 직감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만나던 이는 중독자였다. 중간에 알게되었지만 그렇다고 차마 헤어지지 못했다. 중독자라는 이유로 한 순간에 버림받는다면, 그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상처를 주고싶지 않았고, 아니, 헤어진다면 내가 더 상처받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치료해서 같이 밝은 삶을 계획해보려 했었다. 그러나 계획은 마약앞에 무력했다. 마약은 모든 것을 지배할 만큼 강력하다.

‘이 녀석은 예수와 석가모니까지 마음대로 조종하겠는걸?’

내가 점점 무너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결국, 중독자였던 연인과는 모든 연락을 끊고 연락을 할 수 있는 모든 단서들을 지웠다. 무서웠다. 그가 무서운게 아니라 내가 웬지 이 약을 계속 찾게 될 것 같은 직감이 무서웠다. 지금 와서 그에게 내가 투약받은 약이 무엇인지 물어볼 방법도 없고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게 두려웠다. 난 마약을 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이 살아가는게 더 좋겠다고, 스스로에게서 도망쳤다.

“일단 모발 검사를 기다려보기로 해요. 만에 하나라도 마약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래. 일단 너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마.”
“타사에 소문이 나겠죠?”
“이미 증권가 찌라시로 좀 돈 거 같아. 나한테 확인 요청이 와.”
“어떻게 하루만에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지... 진술 조서에는 직업을 기자라고 밝히지도 않았는데.”

경찰의 짓이 틀림없다. 요즘 민간인 정보를 사찰하는 경찰 정보국의 관행을 없애기 위해 기획기사를 계속 쓰고 있었고 정보국과는 거의 전쟁 치르듯 하고 있었다. 내 입건 사실을 듣자마자 시중에 퍼뜨린게 틀림없다. 내가 이렇게 보복을 당하다니. 화가 나지만 어떻게 대항할 수가 없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다. 바보같으니라고.

“넌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
“모르겠어요. 일단 회사에는 휴직계를 낼게요. 제가 투약한게 마약이든 아니든 이런 물의를 일으켰으니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을지는 고민이 들어요. 우울증도 갈수록 심해지는데 이런 일까지 터졌으니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팀장과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만나기 두려운 팀장이었지만 막상 만나니 더 같이 있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내가 그동안 어떤 마음의 고통을 갖고 지냈는지 처음 이야기한 것이었다. 웬지 모르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숍을 나와 팀장에게 역까지만 같이 걸어가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팀장과 나사이를 지나가는 공기는 어색해져 있었다.

‘나와 빨리 헤어지고 싶어하는구나.’

열차 타는 모습까지 배웅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거리를 같이 걷던 도중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수면을 돕는 보조제 같은 게 집에 있었다. 수면제는 아니었다. 원래 한알씩 먹어야 하는 보조제를 한움큼 집어삼킨 뒤 억지로 잠을 청했다. 깨어있는게 너무나 큰 고통이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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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포스팅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리며, 마약일기를 통해 본인의 마음도 치유 되셨으면 좋겠네요.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기자님, 혹시 스팀잇에서 연재해보고 싶은 시리즈나 테마 같은것 생각해보신적 있으신가요?? 앞으로의 컨텐츠도 기대가되서 그냥 한번 물어봅니다. ^^

향후 1년간은 마약일기를 연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달에 제 1인 탐사보도매체 리포액트를 오픈하는데. 그곳에서 쓰는 기사들도 이곳에 계속 소개해드릴게요. 허재현 기자라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앞으로도 무궁무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같은 응원이 있다면 말이지요. 따뜻한 관심에 송구하면서도 감사드립니다.

1인 탐사보도매체를 오픈하시는 군요. 축하드리고. 좋은 컨텐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포스팅이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의 소설 같고 드라마를 보는듯 한 사건 전개가 점점 흥미로워 집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재미로만 읽으려고 기다리고 있는건 아닙니다.^^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세상에나. 그런가요. 그저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용기를 가져보겠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기를 한번 올리고 나면 마음은 많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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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연재 잘 봤습니다 힘내세요

부끄럽습니다. 평생 성찰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그리고 계획하시는 글들이 스팀잇에서 빛을 발 했으면 합니다.

행복한 날 들 되세요.

그렇군요. 그저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제 할 얘기는 하되,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우울증을 겪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인은 굉장히 다양한데... 남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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