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회사에 마약입건 사실을 일방적으로 알리다

in #kr5 years ago (edited)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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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1일 (2)

“진술조서에 꼭 직업을 밝혀야 하나요?”
혹여라도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큰일이었다. 경찰서 출입기자들은 진술조서 자체를 입수하진 못하더라도 친한 경찰로부터 흥미로운 사건내용을 대충 전해들을 수는 있다. 악의적 목적을 갖고 있는 경찰이 ‘허재현’이라는 이름은 설사 모르더라도 ‘한겨레신문 기자’가 입건됐다는 내용만 알더라도 외부에 유출하기 십상이다.

경찰이 역제안을 해왔다.

“그럼 그냥 직장인으로 표기해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모든 조사에 협조할테니 제가 부당한 일만 겪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오후 3시. 마약수사대에서 조사를 받는 도중 꺼두었던 휴대폰을 잠시 켰다. 회사 팀장의 전화가 계속 걸려와 있었다. 팀장에게 전화하니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너 지금 어디야? 너 마약했니?”

대체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을까. 난 아직 경찰 조사중인데. 뜨거운 심장이 녹아내려 곧 차가운 얼음처럼 굳었다. 경찰 조사관에게 “내 정보가 벌써부터 유출됐다”고 항의했다. 팀장이란 사람은 “중요 사건은 경찰청장에게 직보가 된다. 그 과정에서 한겨레 쪽에도 보고가 된 듯 하다. 우리는 절대 어디에 유출하지 않았다”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이런 얘기는 애초에 내게 안하지 않았나.

“선배. 소변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다만 저도 제가 과거에 뭘 했었는지 아직 몰라요. 그러니 검사는 더 받아봐야 해요. 아직 경찰 조사중이니까 끝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선배도 놀랐겠지만, 난 더욱 놀랐다. 당연히 경찰 조사가 끝나면 회사에 보고하고 징계를 각오하려 했는데 마치 회사에 뭔가를 숨기고 있다가 들킨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할까. 주저앉아 울고만 싶다. 하지만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 다시 경찰 책상 앞으로 걸어와 앉았다.

“얼마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데 신경을 안정시켜줄 것이라며 친구한테 받은 약이 있었습니다. 태국에서 가져온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투약했을 때 실제로 좀 기분이 좋아지고 그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의사가 처방한 약이 아니니까 불법 약물이란 인식은 있었지만 그게 무슨 약인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검사를 다 받아볼테니 일단 그게 결과가 나온 뒤에 혐의를 인정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마약 투약 혐의를 선뜻 인정하기가 주저됩니다.”

경찰은 동의했다. 머리카락을 몇가닥 뽑아 경찰이 가져갔다. 경찰에게 머리칼을 뽑히는 느낌은 치욕스러웠지만 모든 조사에 협조하는 게 그나마 내게 남은 양심의 전부다. 보름 뒤쯤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부디 마약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2018년 5월1일 (3)
친한 친구인 이은의 변호사가 내 전화를 받고 한 걸음에 경찰서로 달려와주었다. 오후에 시작한 경찰 조사를 저녁 6시쯤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허기를 달래고자 이 변호사랑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목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삼키는 건 쓰디쓴 눈물이었다.

“우리 불쌍한 부모님 앞으로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 변호사에게 하게 된 첫 마디가 그거였던 것 같다. 이 변호사가 뭐라고 위로의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말은 없다. 그저 나는 한동안 쉴새 없이 울었고 이 변호사는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었던 것 같다.

부모님. 내게는 부모님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셨다. 비록 인생의 절반 이상을 막노동을 하며 도시 빈민처럼 사셨지만 그저 자식 하나 잘되는 것만을 바라고 내게 아낌없이 인생을 바치셨던 분들이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 양이 아니라 상대적 양으로 느끼는 것이다. 부모님은 내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늘 내게 미안해하셨지만 난 부모님이 평생 최선을 다해 사신 것을 알고 있다. 부모님의 노후만큼은 내가 꼭 유복하게 보살펴드리리라 마음먹었었다. 그 평생의 고단함을 자식으로서 위로해드리는게 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런데 부모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하나 더 안겨드리게 생겼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앞길이 캄캄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릿속은 우주의 빈공간처럼 아득하고 공허해져갔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돌아갔다. 40대 초반의 여성 대리기사가 나타났다. 난 집주소를 말해주고 조수석 자리에 눕듯이 앉았다. 휴대폰을 켰다. 내 손가락은 포탈 사이트 검색창에 “고통없이 죽는 법”을 치고 있었다. 이런 저런 글들을 급히 찾아보았으나 고통없이 죽는 법은 쉽게 검색되지 않았다.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하는 식의 자살 방법은 너무 처참하다.

‘그래도 점잖게 죽는 방법이 없진 않겠지. 다음에 찾아보자.’ 잠깐 잠이 들었고 차는 어느새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 강아지가 나를 보며 반갑게 뛰어들었다. “루시야. 오빠 지금 많이 아파. 다음에 놀아줄게.”

방문을 닫고 옷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극단적으로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난 잠이 쏟아지곤 했던 것 같다. 뇌가 나를 기절시키는 걸까. 고맙다 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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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발로 뛰어다녀서 낚아 올린 생생한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미약한 보팅으로나마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계속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비밀이 너무나 쉽게 새나가는 것은 참 염려스럽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포스팅 잘 보고 있습니다 치부 일수도 있는 개인사를 쓰시기 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을거라 생각 합니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 보내며 다음 포스팅도 기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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