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했다는 소문이 퍼져 뉴스타파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in #kr5 years ago (edited)

#2018년 5월5일 마약일기

267D2541521A110A2D.jpg

주말은 일상의 고단함이 낸 상처를 잠시 덮어줄 수 있던 반창고같은 시간이었다. 덮인 반창고아래서 상처난 마음의 피부는 그 허락된 시간만큼만 아물 수 있었다. 상처가 다 아물기 전 결국 할 일은 늘 생겼고, 출근했고, 정의로움의 퍼포먼스를 계속 해야 했다. 내 상처의 고물은 들여다보지 못한 채. ‘누가 기자한다 그러면 뜯어말리리라. 행복하지 않아.’ 나는 늘 생각했다. 고물이 썪어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그러나 이젠 내가 그 행복하지 않은 직업을 강제로 내려놓게 생겼다. 이것 또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면 지옥이다. 하루 종일 모발 검사 결과만 생각한다. ‘마약이 검출 되면 어떡하지? 아니 그렇다치고 얼마나 소문이 퍼져나갈까?’ 두려운 상상은 늘 현실이 된다.

오후에 방에 쳐박혀 있는데 뉴스타파의 한 선배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 선배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허재현 기자와 관련한 안좋은 소문이 돌고 있어요.”

박 선배 특유의 낮고 정중한 질문이 담긴 목소리를 듣자 내 가슴은 얼음주머니를 찬 것처럼 차갑게 굳었다.

본능적인 태연함을 가장했다. 한층 밝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 그거요? 마약? 저 아니에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거짓말. 의식적으로 나의 생존을 위해 거짓말이란 것을 해본게 과연 몇 년만인가.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낯선 내 모습은, 내가 몰랐던 모습일까, 아니면 이게 진정한 나인가. 아니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지금의 내가 과연 내가 맞는가. 모르겠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래. 당연히 아니겠지. 내가 다른 기자동료들에게도 허 기자가 그런 거 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박 선배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타 회사 선배이지만 나를 수년전부터 걱정해주며 이런 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성인군자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를 상대로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마약 사건으로 내사를 당하고 있었나봐요. 근데 그녀석이 검거될 때 같이 술마시던 자리에 제가 있었어요. 나까지 의심을 받았는데 경찰서에 임의동행해 가서 검사 받고 아무것도 안나와서 저는 그냥 나왔어요. 근데 그게 경찰이 악의적으로 그렇게 증권가에 찌라시로 뿌려버린 듯 해요. 미치겠어요.”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걸까. 괴롭다. 전화를 끊고나서 변호사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변호사는 굳이 주변인들에게 나의 비밀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래. 수사기관과 회사에만 솔직하면 된다. 지금은 어떻게든 소문이 퍼져나가는 걸 막는 게 우선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 인생의 뿌리이자 열매의 전부인 우리 부모님과 가족에게까지 고통을 지워줄 순 없다.

일단 속이자. 가능한한 끝까지 속이자. 난 내 직무와 연관된 범죄를 저지른게 아니지 않나. 나는 공직을 맡고 있는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내 사생활이다.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박 선배께는 가장 빠른 시일안에 진실을 알려드리자. 그러면 된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있지만 무너진 자존감은 나를 괴롭힌다. 내가 이런 처지가 되다니.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무슨 말이든 쏟아내고 괴로움의 덩어리를 가슴 속에서 좀 덜어내고 싶다. 존경하는 혜문 스님에게 좀 급히 만나러 갈 수 있냐고 여쭈었지만 지금 당장은 안된단다. 다음주에 만나자고 하신다.

집앞에 주차해둔 차 안에서 회사 동료에게 oo이게 전화를 걸었다.

“oo아. 나 마약을 한거 같아. 경찰한테 걸렸고 지금 여기저기 소문도 퍼지고 있어.”
“오빠가 그런거 할 사람이 아니잖아.”
“좋아하던 애가 중독자였어. 걔 병 고쳐보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그걸 같이 해버렸어.”
“어떡해.”

정말 어떡해야 할까. 이런 무력감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내가 수습할 수 없는 사고다. 운명에 맡겨야 하지만 내 운명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어쩌면 좋을까. 나는 울었다. 통곡했다. 차안의 공기가 우울한 습기로 가득찰 때쯤 통화를 마쳤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4
BTC 64038.60
ETH 3148.89
USDT 1.00
SBD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