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文 - 오래된 사람에게

in #kr6 years ago (edited)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소식 없던 결례를 이해해주십시오. 일을 바꾸고 영 익숙지 않아 낮에는 정신없이 배우며 밤에는 숨을 잊은듯 자고 일어나는 날들을 보냈는데, 계절이 바뀌니 문득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오래 전 왕래할 때에 종종 걷던 골목을 기억하십니까. 줄 지은 건물들을 사이에 두고 대로 뒤편에 혈관처럼 위태롭던 그 길 말입니다. 처음 만난 날 함께 식사를 하고, 좀 걷자며 말 없이 각자 길바닥만 훑기에 골몰하다가 언젠지 모르게 들어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낡은 파라솔 아래 웅크려 앉아 과일을 팔던 노인이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을 기억하시는지요. 그 옆에는 아주 낙후된 여관이 있었습니다. 백칠이 벗겨진 곳에 곰팡이가 쓸었고 외벽에 붙은 파이프의 녹이 심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는데, 그 옆 조그만 창에 붙은 에메랄드 페인트 칠을 한 쇠창살을 보고, 저는 당신과 그곳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노인의 시선을 묻는 것은, 그때의 제 불경한 속내를 노인의 눈빛 때문에 당신에게 들켜버렸던 건 아니었는지 새삼 궁금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촌스러운 비즈발이 걸린 여관 입구를 지날 때, 조급하게 뛰던 심장을 돌이켜보면 당신께 미안한 제 심정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그때 키스는 나눴습니다. 골목에 붙은 더 작은 골목 어귀를 돌아 다다른 남의 집 대문 앞에서, 갈 곳이 없어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게 어찌나 아쉽던지 저도 모르게 당신의 손을 잡고 말았었지요. 당신은 물러나지 않았고 저는 나머지 한 손을 마저 잡고 나니 참을 수 없어 입을 맞췄습니다. 그 집에서 누가 보고있지는 않을까, 곧 문을 열고 호통을 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있었는데, 당신의 혀가 너무도 부드러워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격동하는 욕정을 당신의 이빨로 틀어막고 잡았던 두 손을 온 힘으로 꽉 쥐는 것으로 당신에게서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그 집 앞에 다시 가진 않았지만, 당신은 어땠습니까. 저는 당신과 그 골목길 근처를 걸을 때면 정신이 자주 거기에 가있었습니다.

우리가 왕래하지 않게 된 뒤로 그 길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골목이 사라지면 노인은 어디에서 과일 장사를 하고 있을지요. 당신은 그런 것들을 걱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그대와 무관한 것들에 마음을 내는 일을 즐기며 그리하여 소소한 웃음으로 쑥쓰럽게 벽들과 하늘과 사람들을 쳐다보며 지내는지요.

언제 다시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기어코 소식 없이 떠나갔던 것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무례로 당신을 묻지 않게 된다하더라도, 당신이 먼저 걷고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피어나던 향기로 당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워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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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가입 첫번째 포스팅이십니다.
반갑습니다.
그럼 저두 오랫만입니다. ㅋㅋ

안녕하세요. 정보전달글을 쓰고 싶어 가입했는데, 문서 편집이 무척 어려워 만질 게 없는 형식의 글을 먼저 올렸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즐거운 스티밋 생활 되십시요! 스티밋은 사랑과 자리이타가 살아서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와!! 매우 멋찐 글이네요

안녕하세요. 에리카님 블로그에 다녀왔는데, 여기에 익숙하신 분이군요. 종종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네네 자주 소통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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