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글은 결국 내가 되었다. @redsign

in #kr7 years ago (edited)

오늘 글은 제 주관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아니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당시의 내게 글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 말하는 수단이었고, 그 속에서 비록 1인칭의 '나'는 없었지만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는 다 나의 이야기였다.

가장 처음 쓴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나만의 캐릭터를 구성해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했다. 특히 사랑에 관한 글을 자주 쓰곤 했다. 그것은 아직 내게는 너무나 어려웠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거리감이 있었지만, 나는 '사랑'이 참 좋았다. 사랑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달콤한 사탕이 입안에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현실의 어떤 것들이 그들을 괴롭힐 지라도 서로를 감싸고 의지하면서 사랑으로 그것들을 이겨냈다. 사랑은 그들을 바보로 만드는 듯 보여도 언제나 그들을 구원했고, 그들의 머리 위에서 달큰하고 향기로운 벚꽃잎을 가득 내려주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금은 울지라도 결국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으면서.

그들의 사랑은 내게 '유토피아'로 보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얻는 도취감. 자신을 깔본 이들이 부럽도록 행복한 결말을 맞는 승리감. 그 모든 행복에 젖어있는 그들의 미소는 글을 쓰는 동안 내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했다. 그것은 마치 열어선 안되는 금기의 상자를 들여다본 것같은 느낌이었다. 내게로 스며드는 그들의 행복은 내게 사랑의 여주인공이 된 것같은 느낌을 들게 해 마약에 취한 듯 이성의 눈을 감게 했다. 닮고 싶었다. 그 행복을 나 또한 느껴보고 싶었다. 비록 내게 현실은 등 뒤로 날아드는 아버지의 알코올 냄새 절은 칼날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랑이라고 하는 무대에서 나는 날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무렵 사랑을 시작했고, 줘도 줘도 돌아오지 않는 사랑과 결국 배신으로 돌아온 결말에 내 유토피아는 나에게서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졌다. 꿈의 바스라진 조각이 발 아래로 가득 밟혀 진한 선혈을 비명처럼 쏟아냈다. 매일매일 마음 속에 장맛비가 멈추지 않고 내렸다. 긴 우기였다. 그 속에서 나는 눈물로, 비명으로, 분노로 알았다.

사랑을 하는 것은 향기로운 붉은 장미의 가시 돋친 줄기를 손 안에 꽉 쥐는 것과 같은 것. 매혹적인 그 향기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남김없이 집어삼키고서 뱉어냈다. 손 안에 가시가 꽉꽉 쥐어 박혔는데 내 사랑은 그 상처들이 징그러워 버리고 가버렸다.

두 번째로 쓴 글은 현실과 판타지가 반반 섞인 이야기들이었다.

마족과 엘프의 피가 반반 섞인 반마족과 반엘프 남매 이야기. 인간이 된 몬스터들의 가족 이야기. 악마의 피가 섞인 날개 꺾인 검은 날개의 천사 남매 이야기. 어릴 적 살해당한 동생으로 만든 양인형을 품에 안고 영원히 잠들어 꿈 속을 헤매는 여자아이의 이야기. 이것은 모두 그때쯤의 내가 만들어냈던 인물들의 대표적인 설정이었다.

무작정 행복하기만한 사랑에 질려버린 나는 어디선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상상했던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두 개의 세계관을 가지고서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들을 자주 썼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인물들, 누군가의 머릿속에 꼭 하나씩은 존재하겠지만 오직 나에게만 더욱 특별하고, 단 하나뿐인 아이들. 내가 만들어낸 그 인물들은 마치 내게 친구처럼, 나의 아이처럼 그렇게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나는 나를 그 안에 녹여냈다. 내가 울고 싶으면 그 아이들이 대신 울었고, 내가 기쁘면 그 아이들이 대신 기뻐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이 아이들은 인생을 모두 매달려 느끼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무너져내리고, 황홀해 하고, 외로워 하고, 행복해했다. 그 아이들은 나였고, 나는 그 아이들로 분산되었다. 아버지는 내게 공부는 안하고 글만 쓴다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아이들을 놓지 못했다. 놓을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은 나밖에 없고, 내가 없으면 다 사라져버릴 아이들이니까. 나도 그런 아이들이 내게 꼭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가 치열해질 수록,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나에게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의 이유로 다가올 때쯤 나는 그 아이들에게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잊어버렸다. 가장 치열하고, 가장 아프고, 가장 외로웠던 고등학교 3학년이 지나 대학교에 올라온 뒤 옛날에 사용하던 블로그들을 돌아보다 예전에 쓰던 글들을 발견했다. 굉장히 조잡하고 여기저기로 이야기가 펑펑 튀어오르는 글들. 그것을 보고있자니 어쩐지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지금은 이것보다 꽤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정도 다 정리했두었었으니 지금이라면 예전보다 더욱 더 아이들을 진짜처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무엇을 써도 예전에 느꼈던 것의 10분의 1도 느끼지 못했고, 무엇을 그려내던간에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키보드 위에서 나는 갈 곳을 잃었고 결국 손을 내려버렸다. 2년의 시간이 흘러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놓친 2년. 공부에 치여 내 감정을 지워버린 2년동안 아이들 또한 내게서 지워져버린 것이었다. 이젠 아이들이 아닌, 그들이 된 그 글들을 나는 모두 지워버렸다. 무언가의 공허함이 초기화 되어버린 블로그의 하얀 창에 소복히 내려앉았다. 나 또한 그 곁에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그리고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해 쓰고, 내 생각에 대해 쓰고 있다.

그 뒤로 더이상 글은 내게 소통의 수단이나 나 자신을 대신하는 것도 아닌, 나를 돌아보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되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글이 더이상 흥미본위로 마음대로 가볍게 쓸 수 있는 것을 벗어남을 의미했고, 글은 언제나 내가 원할 때만 쓰고 원하지 않을 땐 쓰지 않을 수 있는 것에서 이미 크게 벗어나 내가 거울로 매일 나 자신을 마주해야하는 것처럼 글 또한 내게 그런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내 글은 내가 되었다. 내가 감정을 숨기면 글에서도 감정은 드러나지 않았고, 내가 회자하듯 돌아보면 글 또한 과거를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렇게 되었다. 내가 혼란스러우면 글도 주제를 알 수 없이 어지러워졌고, 내가 슬프면 글은 나오지 않았고, 아예 써지지 않았다. 그렇게 글은 언제나 나의 상태와 일치하게 쓰여졌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글을 쓸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슬프면 슬픈 글밖에 써지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한 편의 글이 되고, 한 편의 글은 나를 이루는 하나가 되어 나는 모든 순간순간 속의 지금 이 순간을 써내고(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 글이 되어 앞으로를 살아갈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눈물처럼 흘려내고 한 획과 획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문장과 문단의 춤을 추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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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sign님 이름으로 된 책을 언젠가는 읽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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