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in #kr7 years ago

뿌연 매캐한 연기 속 이라도 좋다.
발 끝까지 힘을 잔뜩 넣으며 걷는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걷는데 집중하면
건강한 생각들이 샘솟는다.

미처 처리되지 않았던 프로세스들이
자동으로 돌아가 결과를 툭툭 뱉는다.

툭 뱉은 말 중에 푹 하고 찔렸다.
삶은
내 이름 획이 점차 지워지는 것이다.

태어나고 살아가면 처음엔 내 존재 만으로 인정을 받는다.
웃고
울고
엄마와 아빠를 찾고
기고
걷고
뛰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행동을 해도
하나의 존재로 존중 받고
이름이 불린다.

시간이 갈수록
그 존재는 희미해 진다.

언니 오빠
아빠 엄마
삼촌 숙모

대리님 부장님 사장님 대표님
교수님
의장님

관계와 관계 사이
나라는 존재는
나의 삶은 없어지고
관계만 남는다.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걷는다.
이름을 단단히 박아넣은 이름표의 획순이 스러진다.

그래서 그렇게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은가 보다.
죽어서 호랑이 처럼 거죽조차 남기지 못하는 인간은
고작 그 이름 하나를 남기는데 생명을 쏟아 붓는다.

이름이라도 남기면 다행이다.

쓰지도 못할 돈,
가져가지도 못할 명예와 권력,
이를 얻는데 허우적 대다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리라.

권력이 아니라,
명예가 아니라,
돈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공동체를 남기라.

내가 있어 풍성하지만
내가 없어도 살아 남는
공동체를 남기라.

관계 맺은 하나하나가
나를 기억하는
공동체 속 흐르는 밈에
나를 남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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