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도 고민한단 말인가.

in #kr7 years ago (edited)
한때 글 깨나 쓴다고 유명세를 누린 적이 있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이는 힘이 있었다. 곧 죽을 것 같던 검푸른 입술의 상사병 환자도 벌떡 일으켜 살려낼 정도로 나의 글에는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했으며,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귀 하나에도 사람들은 걸음을 멈춰 세웠다. 심드렁한 눈빛으로 흘깃거리던 그녀들은 도도함을 벗어던지고 끝내 호흡마저 제물로 바쳐왔다. 때문에, 지역사회의 또래 집단 사이에서 글 깨나 쓴다는 유명세를 떨쳤고, 이따금씩 걸려 오는 여아들의 전화에 영문 모르던 가족들은 때아닌 귀찮음을 생각보다 오래도록 감내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PC(PSTN) 통신상에 올려 둔 몇몇의 글들이 문인회와 출판사 편집장의 눈에 띄었고, 별안간 생각지도 않은 출판의 기회를 얻게 됐다. ‘글 잘 쓴다.’는 주변의 반응에 심드렁하게 반응하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편집자와의 만남을 포함하는 수차례의 확인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 나의 글 실력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지제대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다만, 당시로서는 신춘문예 입선이나 기성 작가가 아니면 주어지기 힘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어리기까지 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던 대학교 시절에는 용돈벌이 삼아 학보사에 써냈던 몇몇의 시와 수필 덕분에 한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당시 학보지 자문 위원이셨던 문예 창작학과 담임교수께서 별안간 사무실로 불러서는 “자네 전과할 생각 없는가? 있다면 몇 가지의 서류만으로도 당장 가능하게 해줄 수 있네만.”하고 제안하셨으나, IT분야를 통해서 먹고 살 일만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리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게 고사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의 제안을 하셨지만, 결국 나는 펜을 쥐는 대신에 키보드를 두들기기로 했다. 나는 가끔씩 그 순간을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법을 쓰는 몇 안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회는 해본 적이 없다.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굳이 사전을 펼쳐 단어를 애써 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적토마였으며, 일당백의 항우장사였다. 글감들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멈칫거리기라도 할 때는 과감하게 구겨 버려도 금세 다른 영감들이 머리에 차고 넘쳤다. 거창하지만 담백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펜 끝에 닿은 낱말들 어느 하나도 허투루 쓴 적이 없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글을 쓰던 때가 있었고, 차마 망가뜨릴까 애지중지하던 언어의 정원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염증에 잠시 쉰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성실하거나 꾸준했던 것은 아니지만, 펜을 잡았을 때의 손가락 마디 마디에서의 생경함을 느낄 즈음이면 언제나 어떤 주제이건 닥치는 때로 쓰고 또 썼다. 눈물 없이는 읽을 수도 없는 짝사랑을 써 내려가기도 했고, 어디서 주워 담은 사진에 글감 하나 억지로 써 붙이며 궁상도 오래도록 떨었다. 과거의 재능을 기부 삼아 해보겠답시고, 연애 고민 상담도 해봤고, 다양한 형태의 배설을 해냈다. 글을 썼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위로받고 위로받기를 내 블로그를 통해서 자그마치 12년을 함께 했다. 그렇게 나를 웃게 하고 울리고 간 모든 생의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고, 버리지 못했던 글쓰기는 어쩌면 내가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달피 여긴 나를 글이 버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김리 선생의 말처럼, 불연 날아든 영감들을 단 몇 개의 낱말들로 메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꾹꾹 눌러쓴 문자를 호흡케 하고 나아가 독자들로 하여금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메모를 한다. 오래 되지 않았다. 오래도록 피웠던 담배 덕분인지, 나이 먹은 서러운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둘 모두인지. 그게 뭐든. 기록하지 않으면 불과 몇 분전의 일도 좀처럼 떠올리기가 힘들 때가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아직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데,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차후에 심상을 복원하는 가운데 또 다른 고통을 견뎌야 할 것임은 분명한데,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을 것 같았서다. 많지는 않았지만 오래도록 꾸준히 써온 글임에도 불구하고, 예전만 못한 글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다. 하루가 멀게 마감을 재촉하는 편집장을 곁에 둔 것도 아니고, 그 어려운 시 한 구절 써 달라 청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달랑 문장 하나 끄집어 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거참..


@kmlee 김리 선생의 호흡을 보고 한참이나 고민했다. 단 한줄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머리를 쥐어 짜낸다는 것이 여간해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어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차피 하던 고민이었는데, 그 양반이 더 심화시켰다고 해야 옳겠다. 그리고, 더 복잡해졌고, 지금 이 것도 앞뒤 없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자랑만 늘어놓은 글이 됐지만 그냥 올리련다. 알아서들 생각하시겠지들 -_-;;; 답답함은 도저히 가실 기미가 없다. 에잇!

p.s ; 적잖이 사람 놀래키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주신 돈의 극히 일부는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계시는 분에게 보내드렸습니다. '극히 일부'에 주목하세요. -_-;; 허투루 쓰지 않고 저 또한 바람직한 스티밋 생태계 구축에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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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p-into-milk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julianpark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도 스팀잇엔 고수의 엄살글이 늘어갑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

잘읽었습니다.
@홍보해

매번 고맙습니다.

잘 드렸다 싶습니다.

네, 잘 주셨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댓글이지만..가즈앗!!

와우~~
대단하십니다. ㅎㅎ
팔로우하고 종종 찾아올게요
일단 ..
다음 글 읽으러 갑니다. ^^

개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참이나 모자란 글에도 이렇게 추켜세워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 곳에서도 조만간 유명세를 떨치시지 않을까...
아, 이미 떨치고 계실지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지금도 유명과는 거리가 멉니다.
단지, 글 한 줄도 제대로 써 내지 못하는 조악한 글 솜씨가 괴로울 뿐입니다.

전공은 컴퓨터 공학도셨는데도 역시 필력이 대단하십니다~불우이웃과의
나눔도 실천하시고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 되네요~^^

그게 다 @kmlee 님의 덕이 크지요!!

^^ 우유님도 받으셨군요.
@kmlee님 사람 많이 놀래키는 재주 있으신거 확실합니다. :)

그렇게 나를 웃게 하고 울리고 간 모든 생의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고, 버리지 못했던 글쓰기는 어쩌면 내가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달피 여긴 나를 글이 버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저 문장이 여운이 많이 남아요. 지금 글도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신 거 같은데요. 집중해서 읽었어요.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당분간 책 좀 읽으면서 글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격려 고맙습니다.

필력이 갈수록 좋아집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요 ㅎㅎㅎㅎ

가당치도 않습니다. 모자라고 모자랍니다.

내용은 가볍지 않지만 편하게 읽혀요~ 본인의 생각을 써내려 갈 수 있고 그것 또한 글이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부럽습니다~! 저도 생각이 많을 때는 메모하거나, 마음이 들키는 것 같아 저만 알아볼 수 있게 한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문장들을 암호같이 나열하고는 한답니다~!

올해 '3가지 소망'을 꼭 이루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plop-into-milk님을 추천했습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가능하시다면 아래 링크 참고해서 참여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018 소망 릴레이] 올해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3가지 소망:)

ㅎㅎㅎ 또 추천을 하시는군요. 생각 좀 해보도록 할게요. 단어 하나를 끄집어 내는 것도, 단 한 줄의 글을 쓰는 것도 보통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근래 들어 더 그렇습니다.

매번 고마워요. ;)

그럼요 그럼요~! 저도 추천받고 내 소원이 모였지 몇일의 고민 끝에 하루에 걸쳐 기록했는걸요~ 언제든지, 또 글이 어려우면 마음 속으로라도 빌어 보시기를 바래요:) 다~ 이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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