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고속버스
버스에 몸을 의탁한 채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볼 때면 갖은 생각이 머리를 잠식한다. 그중 단골손님을 소개하면 이러하다. 이곳에 올라탄 많은 사람이 찻삯을 지불한 대가는 운전기사님의 어깨에 한시적일망정 목숨을 내맡기는 것이다. 버스가 한창 내달리면, 자고 나면 피곤이 가중되는 이상한 잠을 자기 일쑤이지만 때때로 나는 애걸하는 심정으로 (염불 등 혹 종교적 행위를 하고 있진 않은지) 그의 동태를 살핀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엔 목적지와 저승길이 교차한다. 물론 이미 밝혔듯 낙관의 정제를 한 알 삼키고선 뒤숭숭한 잠에 빠지기가 태반이지만.


호텔
호텔은 첫인상이 가장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보편은 아닌 것이다. 친정부 성향(사람이 먼저다!)으로 보이는 프론트데스크의 직원들은 만인을 귀인으로 간주하는 듯 연방 캐러멜같은 미소를 보낸다. 객실은 말끔히 정돈돼 있고 천당의 구름을 가져온 양 침구는 포근해 보이고 아담한 냉장고엔 음료가 들어 있으며 이건 제일 중요한 것인데 화장실(욕실)의 상태가 양호하다. 구차해서 쓰지 않으려 했으나 굳이 적자면 음료의 자기소개(for you)는 내 호주머니마저 안심시킨다.
그러나 공유경제의 부적응자가 될 게 뻔한 나의 눈에는 점점 미덥지 않은 것들이 들어온다. "흠, 저건 좀 더럽군." 객실의 청결을 책임지는 파수꾼들의 직업정신에 물음표를 들이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역시 집이 최고군." 없는 이미지이지만 그럼에도 글쓴이의 이미지를 생각하여 이에 관해선 그만 쓰기로 한다.


택시
이곳에서의 이동수단은 택시였다. 그것을 이용하는 데에는, 긴절히 손을 휘젖는 원초적 수단을 쓰기도 휴대전화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했다. 물리적 경계에 구속 받지 아니하고 전국의 택시 기사님들이 공유하는 습속이 하나 있다. 어딜 가나 그들의 운전은 시원시원하다는 것. 국부적 현상은 아닐 테지만 이곳에서 피부로 느낀 점이 있다. 기사님들의 연배가 상당하다는 것. 나를 도착지에 내려놓은 많은 분들이 희끗희끗한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현찰을 건네고 웬만하면 잔돈은 받지 않았다. 무슨 커다란 호의라도 베푸는 듯 하차의 목소리엔 독지가의 (흉내를 내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었다. "잔돈은 괜찮아요."


바다
충충하고 쌀쌀했다. 저렇게만 살면 뭐라도 되겠다 싶을 만큼 파도는 성실하게 들이닥쳤고 이내 게거품을 닮은 포말을 남기고 물러섰다. 발을 담글 요량으로 다가가면 파도는 내게 미치지 않았다. 몇 번을 기다려도 애만 태웠고 결국 몇 발짝 구애하자마자 파도는 무릎을 덮쳤다. 세상, 쉬운 게 없다. 7월의 바닷물이 이렇게 차가웠나. 비껴간 태풍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힘이 실린 바람도 꽤나 싸늘했다. 해변에 가닿기 전 코 끝에 와닿는 짠내가 낯익으면서도 왠지 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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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이른바 맛집에도 갔다. 막국수를 잘한다는 집과 꼬막무침을 잘한다는 곳. 물국수 비빔국수 다 맛봤는데 죽기 전에 둘 중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비빔국수를 택할 듯하다. 꼬막무침을 하는 데는 번호표를 받아 들고 기다려야 했다. 평소 기다리면서까지 음식을 먹진 않지만 이번엔 그렇게 했다. 웨이팅이 일상인지 대기 장소에는 텔레비전, 인형 뽑는 기계, 작은 카페까지 갖춰져 있었다. 꼬막무침은 먹을 만했다. 좀 짜긴 했으나 비린 맛이 나진 않아서 기다림에 배반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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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시원한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하루도 고생많으셨어요! 어휘력이 굉장하신것같아요!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네요 ㅎㅎ

kkb031님. 글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도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음... 새로운 형태의 여행기 좋습니다.
kr-travel활성화를 위해서 이벤트를 좀 하려 하는데 여행기 한번 써보심 어떨까요? ^^

이벤트 진행하실 때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유럽에 다녀왔을 때의 감상을 글로 써 보려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travelwalker님 말씀을 들으니 언젠가 정말 써야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파도가 세상 성실하죠 ㅎㅎ
그런데 사실 파도는 바람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랍니다 ^^

네. 그렇죠. ㅎ 바람이 시키는 대로라는 표현이 좋군요.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파도의 성실함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잼있는 여행기예요. 바다 사진을 보니 저도 가족과 동해 바다 구경 가고 싶어져요.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오랜만에 바다 보니 좋더라고요. 어릴 적 느꼈던 그 희열까지 느끼진 못했지만요.

어릴 적에 갔던 장소를 재방문하셨던 건가요? 그 때 느꼈던 희열은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풀어주세요~

재방문은 아니고요. 바다에 관해서 말한 것이었어요. ^^;; 제가 분명히 적지 않았군요. ㅎㅎ 과거 유럽으로 배낭여행 다녀왔을 때의 감상을 풀 마음은 있는데 (게을러서 형상화할지 모르겠으나) 혹 나중에 쓰면 읽어 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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