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금리 인상이 영화 산업에 끼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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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빅스텝(한번에 0.5%p 금리인상)으로 인해 한국 영화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10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보다 다소 주춤하면서 세 번째 빅스텝에 대한 속도 조절론이 나오고 있는 건 다행스럽다. 올해만 두 차례 빅스텝을 밟았던 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이 아닌 ‘베이비스텝 (한번에 0.25%p 금리인상)’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그럼에도 연이은 금리인상이 여전히 국가 경제에 전반적으로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지금이 진짜 한국영화 위기론을 얘기해야 할 때”라는 강도 높은 우려가 영화계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불안감에 대한 방증이다.

“‘한국 영화 대위기’라는 말을 써도 될 만큼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말대로 금리 인상을 지켜보고 있는 한국 영화 산업의 분위기는 어둡다. 일반적으로 금리인상이 계속되면 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적 취약부문의 이자부담이 증대될 우려가 커진다.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통화 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 가계는 실질 소득의 감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소비를 줄이게 되고, 기업은 물가와 성장 전망의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고용과 투자를 미루게 된다.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담당 조성진 상무는 “금리 인상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면 소비자들의 문화 상품에 대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 인상으로 인해 자금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투자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러다보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기획 위주로 투자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보통 금리 인상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지만 뮤지컬 등 다른 문화 상품에 비해 영화 관람료가 비교적 저렴한 영화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겪지 않을 거라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영화라는 매체는 관람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편적인 문화 상품이기에 불황기에도 다른 산업에 비해 영향을 적게 받지 않을까 싶다”고 신중하게 내다봤다. 여기서 변수는 역시 OTT다. 지난 5월 <범죄도시2>의 천만 관객이 극장 산업에 숨통을 불어넣긴 했으나, 그럼에도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인해 영화 산업이 OTT쪽으로 재편되고 있고, 젊은 관객을 중심으로 관객의 영화·시리즈 관람 패턴이 OTT로 옮겨가는 산업 상황에서 관객이 과거처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지가 관건이다. 황재현 담당은 “<범죄도시>의 천만 관객과 올해 여름 시장을 지켜보았을 때 관객이 여전히 극장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서도 “다만, 많은 관객이 OTT를 함께 구독하고 있어 현재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소비 위축이 극장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금리 인상이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난 2020년 말 CJ그룹 정기인사에서 구원투수로 오른 허민회 대표 체제의 CGV는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7월 지주사인 CJ그룹으로부터 2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이자 부담에 대한 부담감을 낮췄고, CJ올리브네트웍스 광고사업을 흡수하며 구조조정에 주력했다. 롯데시네마 또한 “아직은 금리인상이 극장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고 있지” 만 “소비 위축으로 인한 관객의 영화 관람이 어떤 추이를 보일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로선 금리 인상으로 인한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극장과 달리 신규 영화 투자는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위축됐다가 금리 인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2023년 이후 제작되는 신규 영화에 대한 투자의 상당 부분이 스톱된 현재 산업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인해 신규 영화 투자가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장원석 대표는 “금리가 낮아야 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금융 외 투자처로 몰리는데, 금리가 연달아 인상되고 있는 지금은 영화 외 자본뿐만 아니라 영화 쪽 자금도 고금리 금융 상품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얼어붙은 신규 영화 투자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올해 개봉 영화들이 고전하면서 영화 투자자금의 선순환이 완전히 막힌 상태”라는 게 장 대표의 얘기다.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 등 한국영화 4편이 한주 간격으로 맞붙었던 올해 여름 시장을 복기해보자. 여름 시장에 앞서 지난 5월 개봉했던 영화 <범죄도시2>가 팬데믹 시기에 처음으로 동원한 천만 관객은 나비 효과처럼 여름 극장가에 숨통을 불어넣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팬데믹 이전이었다면 제 살을 깎아먹는 출혈 경쟁을 감수하더라도 관객의 중복 관람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티켓값이 상승한 지금은 극장을 찾은 관객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냉정하다. 총 관객수 435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과 726만여명을 각각 동원했던 <헌트>와 <한산: 용의 출현> 두 편만 겨우 체면치레할 수 있었다. 산업 전체적으로 실패한 올해 여름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영화가 예년만큼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주기 쉽지 않은 상품’이라는 교훈을 던져준 셈이 됐다. 내년 각 투자배급사 라인업은 그간 내놓지 못한 영화들로 구성될 수 있지만, 내후년인 2024년 라인업은 아직 안개 속에 있는 것도 그래서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대형 투자배급사의 1년 라인업 숫자가 열편 안팎이었다면 현재는 그보다 절반인 대여섯편으로 몸집을 줄인 것도 이러한 산업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해 수익을 낸 뒤, 그것이 다시 신규 영화 투자로 이어져야 하는데, 코로나 19와 최근의 금리인상은 그 선순환 구조를 막고 있는 것이다. 신체로 치면 운동부족으로 인한 동맥경화라고나 할까.

영화 수입 시장은 금리 인상뿐만 아니라 달러화 상승으로 인해 지갑이 얼어붙었다. 지난 11월 6일 막을 내린 올해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은 분위기가 예년만큼 뜨겁지 않았다고 한다. 아메리칸필름마켓은 칸필름마켓, 베를린영화제의 유러피안필름마켓, 홍콩 필름마트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마켓 중 하나로, 국내 수입사들이 외화 수입을 주력하는 곳이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대표는 “영화 수입계약을 달러로 했고, 달러화를 송금해야 하는 상황인데 달러화 상승 이전의 10만 달러와 이후의 10만 달러는 원화 가치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수입사로선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고, 마켓에서 영화를 수입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달러 가격이라도 환율 차이가 크고, 예년에 비해 영화 가격이 많이 오른 탓에 지갑을 여는데 더욱 신중해진 것이다.

“영화 비즈니스는 올해 겨울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의 흥행 결과에 따라 방향이 좀 더 명확해질 것 같다.” 정상진 아트나인·엣나인필름 대표의 말대로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은 12월 16일 극장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 물의 길>가 전편이 그랬듯이 많은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끌어들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 또한 “<아바타: 물의 길>가 올해 겨울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극장 산업에 긍정적인 신호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겨울 시장의 <아바타: 물의 길>부터 마블의 새로운 프랜차이즈 시리즈들이 대거 개봉하는 내년 여름 시장까지 극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으면 극장 산업과 한국 영화의 신규 투자 상황도 올해보다 좀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매일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금리인상과 달러화 상승 등 경제 상황에 따라 올해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의 한국 영화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가 쉽지 않고, 물결이 크게 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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