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마음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것 #책추천
사실 나는 포용력이 넓지 않아서, 소설 주인공의 도덕성이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스토리 외적인 걸로 끊임없이 고민하게 돼 집중하기 힘들다. 주인공이 무엇을 고민하든, 그래봤자 자기연민이 아니냐고 삐뚤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불륜이라든가, 불륜 같은 것...).
그리고 이야기를 즐길 시간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진짜 주제를 볼 지 모르는구나> 하는 마음속 빈정거림에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
그럼에도 주인공, 경애는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녀가 지지부진에게 사랑이라는 인연을 이어갔던 이유는 지난 시절의 상실감과 그로 인한 두려움에서 나왔으므로.
“완전히 끝을 낼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하지만 그런 종결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신주를 죽은 사람처럼 만들고 상곤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그건 적어도 스스로를 피조,라고 불렀던 어느 시절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경애의 시간>은 상실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범하지만 어쩐지 <평범하지 않게> 살아가는 두 사람이 만난다. 한 사람, 상수는 남자이지만 여자 행세를 하며 연애 상담 페이지를 운영하고, 또 한 사람, 경애는 지난 날의 연애를 놓지 못해 연애 페이지에 길게길게 상담을 남긴다. 회사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회사에서 어느 정도 배제된 존재이고, 학창 시절 같은 친구를 잃었다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었다. 십여년이 흘렀고, 죽은 자에게 오래도록 삐삐 메세지를 남기던 경애도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라는 말을 끝으로 더는 메세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이 잊을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면, 혹은 억지로 잊기 위해 노력하면 마음은 괜찮아질까?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슬프게도 무뎌진 것일 뿐, 그냥 자신을 될 대로 되라고 놓아둔 것일 뿐, 마음은 회복되지 않는다. 아니로니컬하게도 아픈 감정은 자꾸 끄집어내고, 이야기할수록 조금씩 치유되어간다.
상수는 경애로부터,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결혼한 남자를 놓지 못한다는 편지를 받고는 마음을 전부 폐기하라고 독설을 퍼부었지만, 실제 경애를 옆에서 관찰하다가 마지막에는 이렇게 조언한다.
“언니, 폐기 안 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말은 현 애인에 대한 충고인 동시에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경애를 위한 말, 그리고 조언하는 자신을 위한 말이기도 했다. 이별이란 그냥 슬픈 것이나 화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틋한 감정, 보고 싶다는 감정 등 여러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것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그것을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여러 이유로 경애는 1인시위를 시작한다. 부당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나 자신이 움직여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결국 상실을 극복하는 것도 가만히, 마음의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치유가 될 때까지 부단히 움직이고 아파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경애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죽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억지로 지우려하다 보면 그와 함께한 기억은 물론, 나까지 그 속에 잠겨버리고 만다.
“그것은 시월의 어느 깊은 가을날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에 관한 회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밤 내내 여러번 반복된 이야기는 ...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 어딘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두 사람이 연인이 되지는 않았으면 했다. 상수는 상수대로, 경애는 경애대로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은 너무나도 뻔한 결론이니까.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두 사람만 행복하다면 뭐든 어쩌랴 싶어졌다. 그냥,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됐다.
남겨진 자의 애통함,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 호찌민의 뜨겁고 눅눅한 열기, 남아 있는 자의 마주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따뜻함 등 온갖 열기가 뒤섞여 있는 소설이었다.
덧) 300명 한정본!!!!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최근 젊은 여성 작가에 대한 관심 + 한정 덕후의 욕심에 끌려 신청했는데 대본집 같은 것이 와서 좀 당황했다. 예쁜 게 갖고 싶어쏘여.. 적어도 책 형태의.. 허나 넘버링이 되어 있어 또 덕후는 욕심을 부려본다. 50년 후쯤 이 한정판을 비싼 가격에 사려는 사람이 줄 설 정도로 김금희 작가가 짱짱 좋은 작가로 오래도록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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