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 이경미, 《잘돼가? 무엇이든》

in #kr6 years ago (edited)

저는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독서 기록 조차도 어떻게보면 개인적 감상을 기록한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서도, 에세이에는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좀더 명확히 하자면 "요즈음 힘들지? 힘내자!" 이렇게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싫어합니다.

시대가 지날 수록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마음 편히 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힘든게 당연한거야. 너 자신을 한번 돌아봐.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 다잡고 힘내면 할 수 있어." 이런 섯부른 응원과 위로를 하는 책을 보면 덮어버리고 싶죠.

이 책도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잘돼가? 무엇이든》이라니. "나는 너를 위로할거야"라는 메세지를 뿜어내고 있었죠. 비슷한 에세이가 또 나왔겠거니 하는 생각이었으나, 인터넷 서점 서평이 워낙 좋아 한 번 들춰보긴 해봐야겠다는 정도.

혹시 이경미 감독이 제작한 <미쓰 홍당무>나 <비밀은 없다>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전 모릅니다. 근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내 인생영화라고 하면서.


공효진 얼굴이 이렇게 찍히는걸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만...

만약 이 영화를 제가 봤더라면 이 영화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이 책을 연관지어 글을 썼겠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고로 그렇게 쓸 수는 없었고, 대신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난 이 사람이 만든 영화를 꼭 보고 싶다."

영화감독이 쓴 책을 보고 나서 그 사람의 영화가 보고 싶다니. 왜 그랬을까 곰곰히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에세이는 겉으로는 허술해 보이지만 속은 깊은, 사실 매력 넘치는 옆집 누나의 일기를 훔쳐 보는 느낌이 듭니다. 연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이누나,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느낌과 일기를 좀더 보고싶다는 느낌이 이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고싶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그렇다치고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냐고 질문 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놓고 위로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옆집 누나도 힘들 때가 있고 감정변화도 심하지만 일상을 돌아보면 소소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이 자연스럽게 위로를 줍니다.

삶이라는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어제 오늘, 엄마가 이사를 도와줬다. 십자가상을 달고, 성수를 뿌린 뒤 성호를 긋고 긴 기도를 소리 내 해주었다. 이렇게 말로 기원하면 그 말이 반드시 하늘에 닿는다며 앞으로 힘들 때면 지금 엄마가 해준 기도를 기억하라고 했다. 힘들다고 좌절하거나 투정하지 말라며 원래 인생은 다 고행이라고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의 말도 내 인생의 등불인 엄마의 말도 죽을 때까지 모른 척하고 싶다.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 읽어보세요." 라고 말하지 않으렵니다. 서점에서 눈에 보이면 한 번 집어 보세요. 누나의 일기 훔쳐본다는 느낌으로. 저는 <미쓰 홍당무>를 보러 가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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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의 말 오랜만에 봐요. 언제 읽어도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는.. 나중에 위로책도 서점에서 읽어봐야겠어요 :)

우왓. @laylador 님은 쿤데라의 책을 프랑스어 원서로 읽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한번 보이면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생각도 못한 책으로 새로운 부분을 발견 하셨네요... 영화 저도 보질 못했어요... 왠 지 재미 없을것 같다는..... 저도 우연히 책을 보면 같은 생각이 들수도 있겠죠... 우연히...언젠가!

스팀 고래의 꿈.jpg

그..그래도 보통은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주시는데^^;;

하하 너무 속마음 그대로 적었나요 ... 죄송해요 ㅡ ㅡ;

서점을가게되면 한번 읽어봐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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