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세상' - 김제동,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in kr •  2 months ago


방송인 김제동 씨가 새 책을 냈습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라는 다소 소극적인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그가 헌법에 대해서 공부한 후 느낀 바에 대한 에세이집입니다.

아는 분도, 모르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김제동 씨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고생을 했죠. 그런 경험이 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에세이집은 헌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서가 아닙니다.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이라는 부제가 있긴 하지만 사실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 미처 잊고 지나쳤던 우리의 권리와 의무, 바꿔나가야 할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이죠. 이 에세이집에는 헌법에 나온 조항 하나하나에 대한 그의 생각, 헌법에 적힌 대로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그의 소망이 뭉쳐있는 글이 모여 있습니다. 초반에는 다소 정리가 되지 않은 모습의 글이 보이기도 하지만, 중반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따뜻한 진심이 잘 전해지더랍니다.


그가 바라는 세상에 관한 글을 읽던 중 예전 생각이 나는 구절이 있어 옮깁니다.

옥스퍼드였는지 케임브리지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들이 제게 학교 투어를 시켜줬어요. 학교를 둘러보다가 "여기 이 초상화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자기네 학교 선배래요. 그런데 그 선배가 우리들이 아는 사람이에요.
아이작 뉴턴
사실 그런 건 별로 안 부러웠어요. 정말로 부러웠던 건 따로 있어요. 건물 벽돌에 뭘 하나씩 새겨놨더라고요. 가만히 보니까 동판에 새겨놓은 것도 있고 학생들이 임의로 새겨놓은 것도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1870년부터 1905년까지 우리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셨던 메리 아주머니에게." 학생 식당에서 일하셨던 분을 기리는 거죠. 그리고 왕의 초상화 옆에 또다른 그림이 있어서 "이건 누구냐?" 하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경비로 일하셨던 분이래요. 그분의 초상화를 학생들이 직접 그려서 걸어놓은 거예요.
저는 그 경비였던 분을 왕과 동등하게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고 우리가 살면서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로 대하는 그 태도와 문화가 참 부러웠어요.



제가 대학생 때 지냈던 기숙사 식당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학교 기숙사는 1970년대 지어졌고 100여명 정도 학생이 살던 작은 규모의 기숙사였기에 식당도 자체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주방에는 기숙사가 지어졌을 때부터, 20대 나이 때부터 일해온 아주머니들이 계셨는데 새로운 기숙사가 지어지기 직전인 2014년까지 적은 임금에도 식당일을 하셨습니다. 똑똑한 학생들의 밥을 책임지는 것이 본인들의 자부심이라고 하면서.
일년에 한번 하는 홈커밍데이 때는 식당 아주머니께서 해 준 밥을 먹었던, 이제는 나이가 드신 교수님들이 방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주머니들은 오랜 세월의 보람을 한꺼번에 느끼는 듯 교수님들의 두 손을 맞잡고 좋아하셨더랬죠.
제가 졸업을 한 뒤에 기숙사를 부수고 새로 건축하면서 새로운 식당은 기존과 다른 방식, 위탁운영으로 바뀌게 된다는 통보를 받고 이제는 학생들에게 밥을 해줄 수 없다는 소식에 아주머니들은 식당에서 서로 손을 붙잡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새로 지어진 기숙사 안에는 건축 기부금을 낸 사람의 명단이 있을 것입니다. 기부금을 낸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 애정으로 헌신한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신축 기숙사에 들어가본 적 없고, 앞으로 들어가 볼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분들의 기록이 기숙사 어딘가에 있기를, 그리고 나중에 나이 들어 그 기록을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기를 바라봅니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김제동은 본인같은 제목으로 책을 냈군요. 항상 주장하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약간 두려워ㅜ하는 듯한 발걸음들... 조금만 더 뻔뻔해 졌으면 좋게써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찡하네요..

·

@bookkeeper 님,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김제동 씨는 방송에서 강하게 말할 때도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순둥이가 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 혹은 옳고 그른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요.

떠나시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을 떠오르니 씁쓸하네요..

·

@aileecho 졸업하고 나서 찾아뵙지 못해서 안타까운 맘이 계속 듭니다.

아직 Payout 되지 않은 관련 글
  1. 술자리 교육 논쟁 ( 87.17 % )
  2. MBA의 목적에 대한 현실적 단상(Feat. 고려대 Finance MBA) ( 83.09 % )
  3. [My Find Education] 대한민국 교육문제 해결법 ( 83.05 % )
  4. 젊은이는 행복하면 안 되나요? ( 82.53 % )
  5.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유토피아는 없다. ( 81.78 % )
모든 기간 관련 글
  1. 술자리 교육 논쟁 ( 87.17 % )
  2. 학교 다니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요? ( 87.03 % )
  3. 프롤로그 넷 중 셋 ( 86.20 % )
  4. 바보가 되어간다 ( 85.88 % )
  5. 청춘의 민낯 ( 85.56 % )

인터레스팀(@interesteem)은 AI기반 관심있는 연관글을 자동으로 추천해 주는 서비스입니다.
#interesteem 태그를 달고 글을 써주세요!

@pediatrics@promisteem 독서 챌린지 #8 미션 완료입니다. 이 글에 1/3만큼 보팅 & 리스팀 하고갑니다. 3일에 걸쳐서 나머지 보팅 하겠습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

@promisteem 님, 감사합니다😊

·

스팀가격 하락으로 보팅금액 줄어들어서 저도 돕고갑니다!
정의로운 세상이 오길 ..희망합니다!

·
·

@innovit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 보팅으로 제가 성금을 내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방문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낡은 의식을 깨주는 이런 글들 너무 좋네요 역시~~ ^^

·

@raah 님, 감사합니다😊

그런세상이 언젠가 꼭 왔으면 해요..
해외사례는 정말 찡하네요..ㅎㅎ

·

@kyunga 님, 말씀대로 언젠가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겠지요😉

Hi @pediatrics!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2.656 which ranks you at #13847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dropped 4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13843).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316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207.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Only a few people are following you, try to convince more people with good work.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Try to improve on your user engagement! The more interesting interaction in the comments of your post, the better!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김제동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저 돈이 최고는 아닐텐데 우리 사회는 부끄러운 민낯을 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네요..

우리나라는 특유의 갑질문화가 있습니다. 남을 누르고 올라가려 하는 거죠. 모두 같아지면 행복할 텐데 반드시 올라가려 합니다. 그래서 등수 메기는 것도 좋아하죠. 애니팡이 흥행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한국 문화가 진절머리납니다. 모두가 일등하는 세상, 모두가 꼴등하는 세상 또는 일등도 꼴등도 없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세상.

도서관에 있는지 찾아보러 가야겠어요^^

·

신간이라서! 벌써 누군가 빌려갔을지도 모릅니다😅

Posted using Partiko iOS

@pediatrics님 후원 감사합니다. 곰돌이 자다 깨서 보팅 왔어요. 그럼 전 다시 자러 가요. @gomdory 곰도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