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 우붓. 두번째 숙소 도착

in #kr6 years ago (edited)

=(day 1) 걷고 또 걷기. 발리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날이 밝았다.

숙소에서 페르마 버스 터미널까지 약 1km의 거리가 잡혔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숙소를 출발했다. 키의 2/3를 차지하는 대형캐리어와 기내용 캐리어,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를 들고.
택시따위 타기 싫었다 나는 돈존이니까.

발리는 가만 있거나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데 그렇다고 풀 짐을 끌고 다닐만한 날씨는 아닌 것 같았다.덕분에 까만 바지에 하얀 소금띠가 생겼다.

그래 이것이 돈존의 옷이다. 우붓에 도착해서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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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땀이 많아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소금띠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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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그림.페르마버스. 미니벤 느낌이 나는 이코노미人 전용 버스/

버스 안은 생각보다 포근했다.

아직 극성수기에 접어들지 않아서인지 좌석이 꽉 차지 않아 가운데 좌석에 짐을 놓을 수 있었다.

에어컨 없이도 견딜만 하구나.....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 바로 위에 에어컨 구멍이 보였다. 평소 버스 에어컨을 틀지 않는 편이지만 -돈존은 추워인간이다- (물론 더위도 탐) 그래도 더워 죽을 것 같은 상황을 겪어서인지 에어컨이 반가웠다. 구멍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흘러 나왔다. 살짝 냉한 미니 선풍기 같은 바람.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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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페르마 버스 터미널에 도착.

터미널은 작고 조용했다. 밖으로 나오자 마자 시끄러운 찻길이 펼쳐졌지만 따가운 햇볕을 가릴 버킷햇을 준비해 왔기에 이정도는 가뿐하다 생각했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여행다닐 때 짐 끌고 다닌 경력이 많았던 터라 아무렇지 않게 모자를 눌러쓰고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도에서도 별로 멀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야. 평소 1-2키로 거리는 껌이니 뭐.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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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 터미널 우붓. 작고 조용하다/

원래 여행다니며 이것저것 챙겨 다니는 보따리상 타입인데다 옷 만큼은 포기 못하는 주의이었다. 게다가 두달이라는 어떻게 보면 애매할 수도 있는 기간을 가는 거니 사 입는 것 보단 그냥 옷을 가져가는 게 낫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옷들만 가져간 것도 아니었는데 간단히 매치할 종류끼리 챙긴다는 게 한 짐이 되었다. 거기다가 모기향, 1회용 렌즈 등 온갖 잡동사니가 추가 되니 이미 1인 이동 무게를 상회한 수준.

그렇게 몇 미터를 걷고 있었는데 이럴 수가...

발리의, 정확히는 우붓의 길 곳곳에는 구멍이 많았다. 가게와 가게 사이로 블럭 정비가 되지 않아 끝나는 지점마다 구멍이 보였다. 뻥 뚫린 구멍 아래로, 하수구와 여러가지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끌고 가면 10분이면 도착했을 것을 몇 십 키로 짜리 짐을 끌고 울퉁불퉁하고 구멍 뚫린 길을, 그것도 차와 오토바이가 꽉 들어찬 도로 옆을 가고 있자니 점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미 출발해 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다. 조금만 더 가보자며 돈존은 또 여행가서 하면 안 될 짓을 갱신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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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멍이 몇 십개. 생각보다 우붓의 레벨은 높았다/

그렇게 중간쯤 가다 정말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왔다. 등 뒤에선 땀이 주륵주륵. 햇빛은 따갑게 내려쬐고. 어제 분명 옷 위로 흰 소금을 보았는데 오늘도 그렇게 되겠군. 근데 그렇다고 400m 남겨놓고 택시를 탈 순 없잖아 -돈존이라 택시 타는 데에 이상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특히나 바가지가 흔한 관광지에선- 에라이 갈 때까지 가보자 하고 미친 듯이 다시 짐을 끌었다.

정신이 희미해졌다. 중간에 계속해서 헬로우를 외쳐대는 호객행위에도 익숙해져버려 마치 도를 아십니까를 대하듯 나는 너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표정으로 묵묵히 길을 지났다. 땀이 미친듯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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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길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길을 걷다 한적한 길로 접어들자 사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포장되지 않은 길 옆으로 무거운 짐을 끌고 가기엔 길 사정이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찻길 가장자리 20cm를 걸치고 오토바이와 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달리는 나. 미쳤나 싶을 정도로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나마 내리막길과 그늘이 있어 다행이었다. 앞서 말했듯 9월까지 건기에 접어드는 발리인지라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으면 조금은 살만 했다. (저녁에 맥주를 먹으며 테라스에 앉으니 그렇게 시원하더라)

그렇게 숙소까지 200m 남겨 놓았을 때, 갑자기 내 뒤를 지나오던 한 커플이 말을 걸어왔다.

"-you need help?"

'

Yes. 예스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Thank you so much 라고 말하니 남자가 큰짐 하나를 가져갔다. 그렇게 해서 세명이서 길을 걸었다. 조금은 길이 덜 무서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리. 돈존해서 아낀 돈 다음 번 숙소 이동 때는 돈존 2- 돈을 존나 씀. 하기로(=택시를 타자!)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눈 앞에 숙소 표지가 보였다. 저기라고 다급히 외친 나의 부름에 친절한 남자 사람이 고개를 들고 숙소를 확인했다. 안까지 짐을 끌어놔 주고선, 친철한 그는 미소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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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숙소. Legas Hostel/

두번째 숙소 역시 인터넷에서 Wi-Fi 와 조식이 제공되는 곳 중 제일 싼 곳을 고른 거였는데 생각보다 깔끔했다. 10인실 믹스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도착하니 큰 방에 나 혼자였다. 또다시 돈존이 된 걸까.

아마 다들 1인실 이상을 쓰고 있나 싶었다. 발리는 1인실도 방 값이 싼 편이니까.

무거운 짐을 두고 마트에 들러 샴푸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샀다. 정식 첫날 기념으로 먹을 맥주와 안주를 찾는데 멀쩡한 맥주는 안보이고 알콜 제로 혹은 달달이 라들러만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오렌지 맛을 집어 들었다. 역시 맥주는 달았다... 안주는 니맛도 내맛도 아닌 강낭콩 튀김. 맛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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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신라면 맛이 나는 일본 컨셉 라면을 먹고 직원이 먹어보라며 준 직접 끓인 '코코넛레몬x레몬그라스진저 티(이름모름)'를 받았다. 차는 좋아해도 레몬그라스는 입도 대지 못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직원이 준 차는 정말 맛있었다. 순식간에 한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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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건네 준 이름 모를 티. 맛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자꾸만 모기가 물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샤워를 해야지. 깜빡하고 못 산 비누대신 어제 뜯은 폼클렌져 샘플로 샤워도 하고. 귤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대만족.

가져간 모든 기계류의 배터리가 다 나가 하는 수 없이 수첩에 연필로 일기를 적어보았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항상 기계를 달고 다니는 기계 인간이지만 이가 없으니 잇몸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일어났던 일을 연필로 적으며 기억을 더듬는 중에 생각해보는데, 돌아오는 길에 산 귤이 좀 비쌌던 것 같다. 같은 게 아니라 맞는 거겠지. 노점상에 얼마냐고 물었을 때 1kg에 15,000RP 라고 해서 반만 달라고 했더니 귤 세알을 받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은 귤 세 알이 500g이 될 순 없었다. 그냥 넘겨야지 뭐. 돈존이지만 첫날이니까 오늘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쉬기로 했다. 어쨌든 귤은 맛있었다.

/작업 도중 갑자기 닭이 울었다. 저녁 8시 반. 닭도 시차 적응(?) 중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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