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 다시보기] - 6부: 국호를 정하다
7세기에서 8세기를 걸쳐 이 야마토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국가가 이 거대한 섬에 처음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국호도 이 때에 비로소 '일본'이라고 정하고 왕의 칭호도 천황이라고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일본에 도입합니다. 본격적으로 국가라는 조직으로써의 체계적인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호적제도]
모든 백성의 이름과 연령을 호적에 기제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한 논을 수여, 이것을 기반으로 곡물과 토산물의 일부를 조세로 거두어들였습니다.
(많이 익숙하죠? 한국에서도 시행되었던 이 제도가 바로 수나라에 걸쳐 당나라 때 정비된 조세 제도였습니다.)
[행정제도]
이 호적을 기반으로 50호를 1리(향) 으로 단위를 지정해, 군.리(향)로 나누어 지방 행정제도를 세웠습니다.
일본의 이 행정제도는 철저한 문서주의였습니다. 모든 기관의 행정은 문서로 수행했었죠. 네, 바로 이런 행정제도 덕분에 한자를 포함한 글자가 일본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발달한 교통덕분에 각 지역의 특산물이 공납으로 바쳐져 수도(도읍지)로 모이기도 했습니다.
- 에도시대를 구현한 미니어처. 넓게 포장된 깔끔해보이는 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
일본(야마토)의 교통은 육상교통이 도읍지를 중심으로 무려 수십미터 폭의 포장된 도로를 기반으로 닦여져 있었습니다. 도읍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그러한 직선도로가 있었고 이러한 발달된 교통이 이들이 행정제도를 세우고 발달시키는 대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덕분에 교통을 중심으로 숙박업과 기타 상업이 번창할 수 있었죠. 또한 조선통신사도 이런 훌륭한 도로와 상업의 발달, 일본인들의 독서율과 즐비한 서점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 돌아갔다고 합니다.
-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일본인들. 당시 에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중 하나였을 정도였고 그 화려함과 질서정연함하고 깔끔한 거리, 그리고 인구 수에 조선은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 당시 일본은 중국에도 뒤지지 않는 아시아의 맹주였다.
Tip! 이 때 갑자기 일본이 행정제도를 도입하거나 국호를 지은 것은 백제 멸망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의 인구가 자연증가율의 10배가 넘게 불었는데 신라의 삼국통일 당시 백제인들이 신라의 지배 밑에선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대규모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이 야마토 시대는 백제가 신라에게 패한 직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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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그럼...!
한일합병과 임진왜란도...뭐, 쩝 쌤쌤이하는 걸로..ㅋㅋ
라고 하면 멍멍이 소리로 들릴까요??ㅋㅋㅋㅋ
물폭탄 한대 맞고 시작해야겠습니다.ㅋㅋ
아무튼 그러다가 10세기에는 간토 8개국과 이즈 지역을 기반으로 한 나라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또한 세토 내해를 중심으로 해적들이 판을 쳤고 '후지와라노 스미토모'가 왕조로부터 자립합니다.
↑후지. 하코네. 이즈 지역의 위치를 표시한 지역. 도쿄의 인근이다.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무사였고 해적이었다. ( 헤이안 시대는 794년~1185년)
그런데 바로 이 때가 신라에서도 해적이 기승이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떤 일본역사 연구가들은 스미토모 세력이 신라와도 연동하고 있었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기간에 평정되어 멸망합니다.
- 당시 왜구라 불렸던 일본 해적들의 모습. 한눈에 보기에도 걸걸하고 한 성깔 해 보이는게 아주 상남자스럽다.
- 그리고 그런 그들을 쫓아가는 명나라 군대. 해적들 보다가 중국군 보니 갑자기 삐까뻔쩍해 보이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ㅋㅋㅋ
오늘은 여기까지!! 제 7부에서는 장원공령제도에 대해 소개할 것이고 그 이후로는 해적과 금융업자에 대한 소개가 차례대로 이어질 것 같네요. ^^ 국가제도가 세워지고 나라로써 선포한 시기 이후라 그런지 이 이후부터는 역사가 다소 복잡하고 지루합니다.
지루하지 않도록 짤방을 또 적절히 섞어야겠네요 ㅋㅋㅋ
개인적으로 해적과 악덕 금융업자들에 대한 자료가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그럼 여러분. 다음에 또 봐요!^^
여러분 안녕!!
흥미롭네요. 글도 그림도 짤도 잘 비벼진 느낌 ^^
글쓰랴 댓글순항하랴 힘겨웠스므니다. 다음번에는 밀리지 말아야지....
저 시대에 저정도 대로라니
조선통신사 일행도 많이 놀랐을것 같네요
도로의 발달이 국력의 척도라고 들었던것 같은데(맞는지는 저도잘...)
이미 저때부터 일본이 우리를 앞서고 있었던것 같네요
일본사를 자세하게 접할기회는 별로 없었는데
덕분에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오호~그런 말이 있나요? 도로의 발달은 국력의 척도다라....
어디서 줏어들은거 같은데요..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 뭐그런거와 일맥상통한다는 의미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
ㅋㅋㅋㅋ그런가요? 뭐 도로의 발달덕분에 크게 국력이 축적된건 사실이니까요
고대는 물론 현대에도
도로의 정비는 국력의 척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능력과 개념이 잡혀있다는 이야기죠.
가장 단적으로 로마가 그랬고.
중국의 통일왕조가 그랬고, 우리의 고구려나 발해가 그랬으니까요.
오호~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역시 이래서 역사를 공부해야하나 봅니다ㅋㅋㅋ
조선통신사 그림만 봐도 전통적인 동양화 구도가 아닌
투시법을 이용한 서양화 구도를 받아들였다는게 보여지네요
오늘도 몰랐던 정보 많이 알아가용 :)
잉 ㅋㅋㅋㅋㅋ저도 그냥 슥 보고 지나가느라 놓쳤는데 아고...굿잡!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네요 ㅋㅋㅋ어쩐지 느낌이 한국 민화랑은 다르더라니 ㅋㅋㅋ
저는 일본이 백제의 후예들이라는 이야기는 들은적이 있어요. 그때 인구가 급 증가했나봐요. 섬나라에 중국과 맞물릴정도로 인구수가 많았다는게 참 신기해요.
저 당시 오사카였나 에도였나....별로 기억은 없는데 하여튼 둘 중 하나였던것같아요. 세계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도시였대요~ 그림으로만 봐도 엄청나잖아요?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다른 나라 역사가 재미있는지 몰랐는데 @omanaa 님 통해서 재미있게 알아갑니다.^_^
ㅎㅎ 이제 곧 완결입니다요. 세계대전을 다음에 다룰까말까 고민중...
흥미로운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백제 멸망이후, 백제로 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7~8세기 야마토 이야기에서 갑자기 조선통신사의 등장인지라.. ^^;
도로의 정비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거지만.. 도로정비가 잘 된 시기는
통신사시기라면 오사카와 사카이에서 교토어름이 아닐까 싶네요.
이시기에 히데요시가 엄청나게 돈을 쏟아부었을시기니까요.
거기다 사카이는 일본 최고의 상인이자, 문명인을 자부하던 사람들이었구요.
물론 그 이전에도 커다란 길들이 존재했지만요.
문득.. 옛날 일본 친구가 장난처럼 '독도는 우리땅~' 하면
전.. '교토 서쪽으론 다 우리땅~' 이라고 했던게 기억나네요. ^^;;
ㅋㅋ 그럼 그 일본친구는 다시 한번 "고로 한반도는 일본이 백제의 맥을 이어 수복해야 할 땅~"라고 했으면 딱이었겠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