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오늘 아침에 이슬 맺혔더라.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형 생각나? 서울시청 광장에서 사람들이 촛불 들고 아침이슬 불렀을 때 형도 청와대 뒷산에서 들었다고 했잖아.
그때 생각나지 않아?

나는 형이랑 많은 시간 보내면서 꼭 훌륭한 정치인이라야 민주주의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고,
독립운동이나 민주운동에 헌신한 분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각성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형 때문에 정신 차리고 산 사람도 많고, 애국자 된 사람도 많았고, 인생 바뀐 사람도 참 많았어.
나도 그 중 한 명이지.

나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이 된 지도 모를 정도로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
그런데 형이 하는 것을 보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고, 진심으로 부끄럽더라고.
형은 힘이 셌고, 나는 한없이 약한 시민일 뿐이었으니 싸움을 해도 한 가지밖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형의 언론 장악은 정말 집요했지.
무자격 신문사에 방송의 길을 열어주고 공중파 시대가 열렸지.
형의 의도대로 식당이나 열린 공간에서 형이 좋아하는 채널이 자주 보이고,
시청하시는 분들이나 일하시는 분들이 꽤 맞장구를 많이 치시더라고.
나는 언론 하나만 가지고 싸우는 데도 무척 힘들었어.
다행히 친구들이 있어서 외롭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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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거지 복장을 하고 방송국 앞에서 놀 때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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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개 분장을 하고 법원 앞에서 놀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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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도 했었지. 사랑의 김장 담그기를 해서 전국의 이웃들에게 김치 배달도 했지.
그때 봉사야말로 예술보다 어렵다는 걸 알았어. 김치를 배달받는 분들이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전국에 계신 시민들이 정성스레 발품팔고 동의를 구하고 어려운 사정을 알리기도 했지. 정치가 눈을 크게 뜨고 구석구석 찾지 않으면 절대 발견되지 않는 어려운 이웃.

추운 겨울 소파 위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면서 지냈던 팔순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가슴 아팠어.
형은 높은 곳에 있을 때 이런 분들 생각할 틈이 없었겠지. 형이랑 싸우면서 참 많이 배우고 많이 봤지.

조계사만한 라면탑을 쌓겠다고 했을 때 형은 우리에게 인사를 했지.
인사 잘 받았어.

국정원, 조계사에 전화…시민들 기부행사 취소

형, 늦었지만 지금 고백할게.
사실 조계사 높이의 라면탑 쌓기 선언은 블러핑이었어.
우리가 그 선언을 하고 나서 백방으로 방법을 구했지만 조계사 높이의 라면탑은 엄청난 공학적 전문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사실을 알았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형이 국정원 직원을 보내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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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의 존재도 알려고 해서 안 것은 아니고,
화가 난 스님들의 제보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지.
이 사건 때문에 당시 신문에 대대적으로 기사가 났고 덕분에 우리의 뜻이 많이 홍보됐어.
형 덕분에 행사를 두 번 치른 효과를 봤는데,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해.

형, 나는 이제 고향 제주로 내려와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어.
형을 보면서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꿈을 키웠을 아이들이 많이 있고 지금도 자라고 있지.
지역언론에 칼럼 쓰는 거 빼고는 사회활동을 거의 안 하고 있어.
생업투쟁이 꽤 만만치 않아.
그래도 형이랑 싸웠던 시간 덕분에 이제는 시대정신이나 사회정의라는 말이 전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와 약속을 하나 했지.
30년 후에는 형보다 더 형다운 사람이 탄생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고.

형이 바꿔버렸던 상식과 정의와 도덕이 아직 남아 있잖아.
다시는 형과 같은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건 모를 일이지.

형이 내준 숙제가 꽤 많아.
형이 이 사회에 뿌려 놓은 것은 4대강보다 더 깊고 어지럽고 아파.
그걸 원래의 상태로 만들려면 참 할 게 많아.

우리가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아침이슬>의 마지막 가사가 누구의 것인지 이제 알았겠지?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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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김총수...팟캐스트...수 많은 국민들의 노력과 관심의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축하 이벤트 하는 곳이 많으니까...활용해 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네요...스팀달러로 win-win하고 싶은 @dollarlove입니다. growing together~~

@dollarlove 님//그 분들의 공이 크죠~~ 한번 둘러볼게요^^

설치류 한 마리가 온 국민을 각성하게 했으니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carrot96 님//설치류 ㅎㅎㅎ

맞아 콜드플레이 형들도 비슷한 노래를 했지

Just because I'm losing
Doesn't mean I'm lost!

@caferoman 님//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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