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국의 길로 가리라 보는 이유

in #kr6 years ago (edited)


'가상통화(암호화폐) 투기는 규제하고, 블록체인 기술 발전은 지원한다. 투기 과열이 지속되면 거래소 폐쇄도 가능하다.’ 


 정부의 입장은 이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풀이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인정하되 장기적으로 암호화폐는 '질서있는 퇴장'을 유도한다는 입장입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발언이 역풍을 맞아 발을 빼는 듯 했지만 결국 시간의 차이일뿐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선에서 이분들 얘기를 듣는 사람으로서 답답함이 컸습니다. 일단 법무부 내부자료에 나온 것처럼 이분들이 블록체인에 무지한 것도 사실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버블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맞구요. 하지만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결과, 한국은 중국의 길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시야를 넓혀서 보겠습니다. 암호화폐 양성화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일본이고 다소 애매하지만 미국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도 조심스럽게 양성화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에스토니아는 직접 발행에 나서겠다고 나섰습니다.


반면 중국은 거래 · 채굴 · 해외 사이트 접속까지 막을 정도로 엄격합니다.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도 전면금지에 가까운 스탠스입니다. 


크게 나눠 미·일·스위스는 양성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중·러·인도·인니 등은 전면 금지를 향해 갑니다.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전면금지와 양성화를 향해 갑니다. 한국의 선택도 중국과 일본의 길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미국, 일본, 스위스는 스마트한 선진국이니까? 중국,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라서 무식해서 그럴까요?


두 군(群)의 차이는 통화의 성격입니다. 전자는 언제든 다른 국가의 화폐와 바꿀 수 있는 경화(硬貨 ) 국가입니다. 후자는 쉽게 다른 나라 화폐와 바꿀 수 없는 연화(軟貨) 국가입니다. 이 차이가 결국 각국의 암호화폐에 대한 입장을 가릅니다.


미국 달러, 일본 엔은 말할 것도 없고 스위스 프랑도 어느 나라에 가져가도 믿고 바꿔주는 신뢰 받는 통화입니다. 쉽게 말해 외환위기 가능성이 거의 0%인 국가입니다. 현대 자본주의가 내일 망하지 않는 한 굳건한 지위를 유지할 화폐니까요. 이 국가에서 외환이 빠져나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국제 경제에서 활동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앞서 에스토니아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 에스토니아가 그런 기축 통화 발행국은 아니잖아?" 에스토니아는 유로화 사용 국가입니다. 역시 외환이 바닥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입니다.


반면 중국, 러시아, 인도는 어떨까요. 아무리 중국이 위안화 세계화에 기를 쓰고 매진해도 몇가지 이유(자본 유출 우려, 변동성 등)로 요원합니다. 중국이 3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으로 철옹성을 쌓고 있지만 위안화가 경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월가의 헤지펀드를 위시한 세력이 중국에 환 공격을 가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것도 중국의 불완전한 지위를 드러냅니다. 


러시아 루블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전에 루블화 반토막 나서 유럽여행 반값으로 다녀오신 분들이 꽤 많으십니다. 군사력으론 미, 중에 어깨를 겨누는 러시아지만 외환위기에는 취약합니다. 90년대 말에는 외환위기를 맞기도 했구요. 외환 변동성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동남아 국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 암호화폐는 통화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투기 문제, 미국과 일본이라고 적을까요? 탈세? 미, 일에선 탈세가 일어나지 않나요? 두 선택을 가른 핵심이 아니란 말이죠.


대체 암호화폐 시장과 외환 관리가 무슨 관련이냐? 간단합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외환을 외국으로 송금하며 법의 규제를 받습니다. 달러로 바꿔 인천공항으로 들고 나가려해도 제한합니다. 외환이 빠져나가는 것은 외환관리법으로 막습니다. 이는 국가 경제의 안정을 지키는 주권의 문제입니다. 특히 외환위기의 악몽을 겪은 한국 외환관리법의 엄격함은 중국 못지 않습니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환치기는 너무 쉽습니다. 한국서 비트코인을 사서 외국의 누군가의 계좌로 보내면 끝입니다. 블록체인 시스템 상 누구도 통제할 수 없죠. 유례없이 편리한 통로입니다. 인천공항을 막아뒀더니 고속도로가 뚫린 격이랄까요. 태생이 아니키적인 화폐와 화폐 방어를 위해 수천억달러를 쌓아놓은 국가의 동거. 불협화음은 당연합니다.


환치기는 A국과 B국의 계좌를 열어두고 A국의 화폐를 입금한 뒤 B국 계좌로 보내 B국 돈으로 인출하는 행위입니다. 외국환거래법에 규정된 송금의 목적을 알릴 필요도 없습니다. 또 정상적으로 외환을 송금하지 않고 외환을 송금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가 국부의 유출로 간주해 법으로 금지합니다. 특히 한국 같은 연화 국가에 있어서 자본유출은 심각한 리스크를 불러 오는 문제입니다. 중국, 인도 등도 마찬가지구요.


중국이 2013년까지 비트코인의 거래의 90%를 차지할 만큼 열광화고 톈안먼 광장서 비트코인 결제를 받고 CCTV에서 비트코인 다큐멘터리를 내보낼 때만 해도 '감히' 달러 패권에 일격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왠걸, 이 물건이 달러에 일격을 날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통화 주권을 무너트리는 독약이란걸 깨닫고 난 뒤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 국가로 돌아섰죠.


아직은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15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커다란 위험은 아니지만, 정부 입장에선 이게 50조, 100조원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가만 두기가 힘들겁니다. 지금이야 작은 규모지만 언제든 커질 수 있는 '구멍'이니까요. 집 안에 열려있는 문이 있는 걸 알고도 가만 두긴 힘듭니다.


오늘 당국이 거래 자체나 규모 제한을 두진 않지만 의심거래보고(STR·suspicious transaction report)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일 1천만원, 7일간 2천만원 이상의 거래소 입출금은 은행들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법인이나 단체의 경우엔 더 엄격합니다. 여기엔 금융정보분석원(KOFIU)이 나섭니다.


버블과 잇따른 쇼크가 아닌 이 쪽이 방점입니다. 이미 뚫려 있는 비트코인 등의 통로를 지키는데도 골머리인 입장에서 신규ICO는 새로운 뒷문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더 경기를 일으키겠죠.


결국 주권국가로서의 고민입니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진흥과 외환관리 문제를 두고 고민한다면 정부는 고민없이 후자를 택할 겁니다. 양보할 수 없는, 층위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아마 이 문제가 이쪽으로 흘러간다면 외환위기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도 후자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한발 더 나가자면 결국 절반만 인정은 이 쪽 시장에는 없다고 봅니다. 전면금지와 양성화, 중국과 일본의 길이 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애매한 스탠스로 줄타기를 하지만 결국엔 중국의 길로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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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gngmn님 안녕하세요. 별이 입니다. @joeuhw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좋은글 읽고 갑니다 팔로우 하고 갑니다!

팔로우 감사합니다 :)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중국과 비슷한 입장에 처한 것은 맞으나, 중국과 같이 일방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긴 어렵지 않을까요. 경제자체보다 정치적인 환경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다르기 때문에요. 두 국가보다 우리나라는 너무 민주화된 국가인 것 같습니다.

방식에 대해선 위에 남긴 댓글을 다시 끌어와보겠습니다~

제 생각엔 '거래소 폐쇄'는 여론 때문에 포기하더라도 사실상의 '조지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일단 엉망인 거래소를 털어서 거래소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구고 멀쩡한 거래소는 갖가지 방법으로 견제하면서 동시에 은행에 대한 창구지도로 돈줄을 막는 방법입니다. 거대 증권사, 은행도 휘두르는 당국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거래소 손보는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jjangjjangman태그 다시면 후원 해주시는 착한 분이 계세요 ㄱㄱ!

@jjangjjangman 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좋은 분이시군요 +_+

아뇨 kr-newbie 같은 태그요!

오 이런생각은 못해봤는데 진짜 현실이 될수있겠네요

암호화폐를 활용한 환치기는 너무 쉽습니다. 한국서 비트코인을 사서 외국의 누군가의 계좌로 보내면 끝입니다.

여태까지는 프리미엄 때문에 외국서 사서 한국서 파는 방향만 있었죠. 그래서 외국 여행갈 때도 비트코인 ATM 이런 걸 이용할 유인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말씀하신대로 코인이 한국<->외국 오가며 진짜 블록체인 생태계를 체험하게 될지 모르겠네요. 중국의 길로 가게 된다면 체험 못할지도.. ㅠ

몰랐을 수 있는 이면을 통해서보니 비단
이해못할 만한 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아무리
이렇고 저렇고 해도 가상화폐는 장담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지금보다도 더 좋은 시세를 받으리라고 생각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한국이 또 묘하게 줄타기(?)를 잘하는 나라죠 @홍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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