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2(월) 감히!!

in #kr2 days ago

김부식의 삼국사를 보면, 고구려 초기인 서기49년 모본왕시절

2년(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을 습격하였다. 그런데 요동태수(遼東大守)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므로 다시 화친을 맺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구절을 두고 소위 주류역사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했다.

고구려 초기의 국력으로 태원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잘못된 것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

우리나라 주류(=강단,교과서)역사학자들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역사의 기본을 무시하는지 알 수 있다.
역사공부좀 해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고 있는 부분

왕조의 초기에 가장 국력이 강하고 호전적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기본적으로 우리 고대사를
조선시대 정도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8백년의 역사를 가졌던 고구려에 대해 10%도 이해하지 못한다.
천년가까이 유지된 왕조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했을지 상상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2년(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을 습격하였다.

에서 말하는 태원이 어딘가?
산서성 중심부에 있는 도시가 태원이다.
2천년전에도 태원은 그곳이었다.
고구려는 과연 그곳을 공격했을까?
중국측 기록에도 분명히 있다.
단지 예맥이 공격했다고 기록했지만,
고구려가 예맥으로 불렸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김부식같은 사대주의자가 없는 내용을 적었을리도 없다.

태원은 아무것도 아니고,
어양은 더 무서운 곳이다.
산서성 장치분지에 있었다.
이걸 누가 용납하겠는가?

조선의 유학자를 포함해서
현대의 역사학자들 머리속에 박혀있는 이것때문에 안된다.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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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중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인간들이 많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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