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형의 10마디 말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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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Magritte : La trahison des images(ceci n'est pas une pipe)

어렸을 때 일이었다.

내가 10살쯤 되었을 때 서울 고모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고종 사촌형은 나보다 3살 많았는데 그 해 여름이 너무 더워서 내가 덥다고 짜증을 낸 모양이었다. 그랬더니 사촌형은 내게 ‘여름이니까 당연히 덥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 그래 여름이니깐 더운 게 당연한 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이 말은 그 뒤로 인생을 사는 내게 두고두고 한 번씩 의문과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살면서 깨달은 바로는, 사촌형의 말처럼 여름이 ‘당연히’ 더운 것은 아니다. 보통 여름은 덥다. 하지만 여름의 새벽은 춥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엔 냉·난방 시설이 잘되어 있어 실내에서 주로 일하는 사람의 경우 여름에 오히려 더 춥고, 겨울에 오히려 더 덥다. 또, 사막에 사는 사람이 한국의 여름 낮을 경험한다면, 덥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예외의 상황을 떠나 대다수의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겨울보다 여름이 더운 것은 ‘사실’이다. 길가는 아무에게나 ‘겨울이 여름보다 더 덥죠?’ 라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100명에 3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어떻다는 것은 전부 상대적인 개념이다.

사촌형은 여름이 덥다고 짜증을 내는 어린 내게, ‘여름이니까 당연히 덥지’라는 단 10마디 말로 ‘아! 그렇지. 지금은 한국의 여름이니까 겨울보다는 더운 게 사실이고 아무리 어린 너도 그건 이해할 거야. 지금 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그리고 나도 너처럼 똑같이 더우니 내 앞에서 덥다고 짜증을 내는 행위는 삼가주길 바라.’ 라는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을 했다. 물론, 사촌형은 내게 저 10마디 말을 하면서 짜증을 낸다거나, 인상을 찌푸린다거나,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하지는 않고 나직이 말을 해줬기 때문에, ‘나도 너처럼 똑같이 더우니 내 앞에서 덥다고 짜증을 내는 행위는 삼가 주길 바라’ 라는 뜻은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뒷부분의 감정적인 해석은 받아들이는 나로 하여금 내 스스로 생각해낸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사촌형에게 그 말의 의도를 정확히 물어볼 수 있었다면, 내가 사촌형의 말을 100% 맞게 이해 한 것인지, 아니면 절반의 사실에 절반의 망상을 추가한 것인지 알 수 있었겠지만, 당시 나는 여름 더위에 덥다고 짜증내는 10살 어린이였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다시 그 상황에 직면한다고 했어도 정확하게 이러이러한 의미로 내게 말을 한 것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13살 사촌형의 10마디 말은 내게 세 가지 깨달음을 주었는데,
첫째, 여름은 ‘당연히’ 덥지 않다. 라는 것과
둘째, 때로는 불평하는 인간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불평을 잠재우는 방법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과
셋째, 그 모든 상황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삶의 한 순간에, 사촌형에게 10마디 말을 듣는 사촌동생처럼 행동했던 적과, 사촌동생에게 10마디 말을 해주는 사촌형처럼 행동했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 군대시절 ‘부조리한 일’을 당해 내게 하소연하는 후임에게 ‘여기가 군대라서 어쩔 수 없다. 전역이 답이다.’ 라는 말을 해주며 하소연을 ‘무마’ 시킨 적이 있다. 후임의 행동과 후임에게 그런 일을 시킨 사람의 행동을 일일이 열거하며 조목조목 따져가며 누군 잘했고 누군 못했다고 이분법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없는 부분이고, 그 상황에 내가 얽히기도 싫었고, 무엇보다 나는 그런 하소연을 길게 들어줄 시간도 없었거니와 내가 대법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황에 다시 갈 수 있다면 후임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긴 군대이지만, 군대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너에게 달려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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