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스티미언] 나를 찾아 떠난 여행

in #kr6 years ago

뻔뻔한 스티미언 참여하여 첫 글... 여행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운전을 하지 못합니다.
개발자라서 늘 늦게 끝나고 주말에도 출근.
게다가 밖으로 다니는 것보다 집에 처박혀 책읽고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딱히 다녀본 여행이...
하지만 평생 못잊을 여행이 몇 있긴 합니다.
그 중 한 여행을 적어보려 합니다.

2011년 8월.
쪼크만 소기업만 다니다가 대우일렉에서 냉장고 연구소에서 일할 때입니다.
나름 대기업이다보니 1년에 한 모델을 개발했고, 시간적 여유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때 사람도 많이 만나고 소설도 쓰고 그랬죠.
여름휴가 일정이 나왔는데, 헛, 9일.
원래는 5일인데 앞뒤 주말 합쳐 2+5+2=9
평생 직장생활 하면서 이렇게 긴 휴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전 직장은 여름휴가가 겨우 2일이었으니. ㅎㅎㅎ
그래서 9일동안 집에 처박혀 책만 볼 수는 없으니 어딘가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여행을 안 다녀봐서 어딜 가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엄마를 찾으러 가자'

저는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자마자 할머니집에 맡겨졌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그 후로 저는 28년이나 엄마와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사진 하나 없어 얼굴도 기억이 안 나고, 오직 아는 건 이름 뿐.
그래도 찾겠다고 다짐한 건 동생의 역할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동생에게 엄마를 꼭 찾으라며 엄마의 언니와 오빠 이름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동생은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일일이 전화했고,
놀랍게도 엄마의 언니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엄마를 만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MB정권이 한 일 중에 하나가 가족관계등록부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엄마가 나올 테고, 엄마의 호적초본에 엄마의 주소가 나올 거라고.
그렇게 저는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디 계시든 찾아가보겠다고.
드디어 휴가 첫날, 저는 바로 동사무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내 가족관계등록부를 뗐습니다.
그리고 내가 친아들이라는 게 나오기 때문에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와 호적초본도 뗄 수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와 호적초본.
거기엔 자녀로 나와 동생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아,,, 재혼하셨구나.
그리고 주소, 남쪽 끝. 아주아주 먼 곳.
바로 아버지가 계신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 거짓말같이 비가 옵니다.
그러자 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빠 온다고 아빠가 좋아서 우나보네.'

아빠가 좋아했던 새우버거 2개를 담고 절을 했습니다.
'아빠, 평생을 미워하며 살게 될 줄 알았던 엄마를 찾으러 갈거야.
나를 버린 엄마를 찾으러 갈거야.
그런데, 찾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얼굴도 몰라.
그래도 찾아볼게.
아빠의 유언이니까.'
눈물이 나오려는 걸 힘들게 참았습니다.
벌써부터 울면 안 되니까요. 긴 여행의 출발, 힘을 내야 하니까요.

차편을 알아봤습니다. 기차도 없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더군요.
주소만 거기고 다른 곳에 살 수도 있을 테지만 무작정 가보기로 했습니다.
네 휴가는 9일이니까요.
서울에서 한 번에 가는 고속버스는 하루 2대 뿐.
그래서 일단 전라도 광주로 간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여 더 가서 내린 작은 시골마을.
이미 해는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발했지만 벌써 저녁시간.
스마트폰 지도 어플로 주소를 찾았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집에 다가갈수록 가슴이 떨렸습니다.
안 살면 어쩌지? 날 못알아보면 어쩌? 재혼했는데 내가 괜히 찾아가는 걸까?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집앞, 개가 짖어댑니다.
초인종이 없어서 문을 두드리며 계시냐고 불렀습니다.
한참을 부르니 10살쯤 되는 아이가 나옵니다.
'누구세요?'
'어, 저기 여기 ㅇㅇㅇ이라는 분 사시나요?'
'네. 저희 엄만데요. 누구세요?'
그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밖에 누구니?'
'엄마 손님 오셨어.'
잠시후 한 여자분이 나오셨습니다.
순간 심장이 멈추듯 숨이 차올랐고 저는 침착하려 애썼습니다.
그 여자분은 제 여동생과 똑같아도 너무너무 똑같은 여자분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 없어 얼굴로 몰랐는데도 저는 엄마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누구세요?'
저를 보고 누구냐고 묻습니다.
'저 김영진이라고 합니다. 혹시 저 아시나요?'
'그러세요? 모르겠는데. 저를 아세요?'
'네. 제가 아는 분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기다리세요. 옷좀 갈아입고 나올게요.'

다시 들어간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우리 둘은 나란히 아무말 없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골목길을 돌자 내 손을 잡으시며 우시기 시작했습니다.
'영진아, 내가 어떻게 너를 못알아보겠니.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
'엄마.'
28년만에 불러본 엄마.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엄마의 이름을 가득 적고
눈물로 일기장을 적시던 시절엔 평생 엄마를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했습니다.
왜 진작 찾아오지 못했을까?
'어떻게 날 찾을 생각을 했니?'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해줄말은 이것 뿐이다.
세상에, 아들이 이렇게 다 커서 나를 찾아왔네.
고맙다. 고맙다. 나를 찾아줘서.'
우린 그렇게 펑펑 울어댔습니다.
28년만의 만남이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습니다. 우린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으니까요.
'보고싶었다. 내가 너를 키우지 못해서 엄마로서 자격이 없어서 너를 찾지 못했어. 네가 언젠가는 나를 찾을 거라 믿었어. 고마워.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

우린 저녁을 먹고 방을 하나 잡고는 밤새도록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었습니다.
28년이라는 시간.
엄마 없는 서러움과 가난에 허덕였던 청소년시절, 사회에 나왔지만 계속된 실패...
엄마는 나 어릴적 얘기도 해주시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도 얘기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엄마를 찾았고 나를 찾았습니다. 28년 만에.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 그리고 엄마를 찾은 일입니다.
아~~~ 글쓰다가 눈물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저녁 드셨는지 여쭤봐야겠습니다.

Sort: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우아~~~ 고마워요. ^^

읽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흐르는데
마지막줄 읽으며 미소짓게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그래도 살아계시니 찾을 수 있더라고요. ^^

정말 쉽지않은 결정이셨을텐데 멋지세요!
추운 겨울인데 읽다보니 눈가가 따뜻해지는 기분이에요 ㅠㅠ

많이 망설였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한파가 심하니 따신 겨울 보내세요. ^^

와 ~스팀에서 이런 글도 보네요 :)
행복한 결말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좋은글 읽고 가요~
앞으로도 가족분들과 쭉 행복하시길^^

네 고맙습니다. 원래 이야기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잖아요. ^^

해피엔딩이라서 좋았어요 ㅎㅎ
이제 3일 되신 뉴비이신데
팔로우 수가 상당하시네요.
한발 빠르게 먼저 소통하기 위해서 놀러 왔습니다.
늦은 저녁인데 굳밤 되세요~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팔로우하고 다녔는데, 맞팔 들어온 건지... 어떻게 저렇게 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매일저녁 대역폭 때문에 고생인데. ^^

해피엔딩으로 끝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팅해드리고가요~
오늘도 복된하루 보내셔요^^

고맙습니다. 제가 해피앤딩을 병적으로 좋아해서요. ^^

아 진짜.............경고 삑~!!!!!

농담이구요,,, 읽으면서 눈물이 저도 모르게 ... 결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좋아요.. 따뜻한 여행기 잘 봤습니다 ^^

으힛, 옐로카드인가요? 아,,, 음,,, 또 어떤 여행을 했더라...

신나야 되는데~ ㅋㅋㅋ 아 근데 농담이라니까요 ㅋㅋㅋ 눈물바람을 만드셨어용 ㅋㅋㅋㅋ

엇,,, 급하게 쓴 건데도,,, 눈물이... ^^ 나중에 아주아주 슬픈 소설도 써보고 싶어요. 제가 병적으로 해피앤딩을 좋아해서... 지금은 해피앤딩만 쓰고있긴 해요.

감동적입니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좋은 추억 많이 쌓으시길 바라요~

고마워요. 앞으로 더 좋은 추억 많이 만들게요. ^^

과정은 힘들었어도 결과 현재가 행복하면 되는거지요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였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이 다음 이야기도 해피엔딩이길요. ^^

잘보고갑니당~~~

고맙습니다. ^^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2
JST 0.029
BTC 60896.89
ETH 3361.32
USDT 1.00
SBD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