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액트 오브 킬링 - 승자만 기억하는 역사의 잔혹함과 그 한계.

충격적이다.
이 말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1. 줄거리
영화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50만명 학살의 주범을 주인공으로 한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군부에 의해 전복되었다.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노조원, 무전 농민, 지식인, 화교가 '반공'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중국계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학살당했다. 이러한 학살은 서방 정부들의 직간접적 원조 아래 자행되었다.이 영화를 감독한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학살이 일어나고 40년이 지난 현재 학살의 주범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보려 인도네시아로 갔다. 그리고 학살의 주범들은 여전히 인도네시아 사회의 지도층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학살의 주범이자 지금은 국민영웅으로 추앙받는 '안와르 콩고'에게 학살 당시의 장면을 재연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놀랍게도 안와르 콩고는 그 제안을 기쁘게 수락한다. 마치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이 자신의 전기를 찍는다는 듯이.
영화는 안와르 콩고와 함께 학살에 참여한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학살 당시에 느꼈던 감정, 그리고 그때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어본다.
#2. 총 3일에 걸쳐 영화를 봤던 이유
이 영화의 런닝타임은 2시간 40분이다.
마음먹고 보면 쉬는 날 하루 날잡고 쓱 볼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까지 총 3일 걸렸다.
처음 이 영화를 1시간 정도 보고는, 도저히 더 볼 수 없어서 껐다.
내용 자체가 너무 버겁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저 학살의 주범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그들이 희희낙낙거리며 학살 당시를 추억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게 너무 불편했다.
그들의 웃는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사람을 고문하다가 죽일 때, 피가 너무 많이 나면 비린내가 심하니까,
철사로 목을 졸라서 죽였다는 걸 웃음 만개한 얼굴로 말한다.
차라리 진지한 얼굴로, 나지막이 얘기했으면, 어떻게든 볼 수 있었을텐데,
그들의 당당한 목소리와 웃음 띈 얼굴이 나로하여금 구역질나게 만들었다.
영화 '추격자'에서 나오는 그 어떤 잔혹한 장면보다 나에겐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첫날 1시간 보고 끄고, 그 다음날에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셋째날 다시 틀어서 봤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봤다.
영화의 전반부는 학살 주범들이 죄책감없이 학살 당시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학살 주범의 인간적인 얼굴을 잠시나마 보여준다.
내가 영화의 전반부만 보고 껐다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지 못했을 거다.
단순하게 살인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호화롭게 살 수 있도록 놔두는 인도네시아의 현실을 욕하고 비판했을거다.
하지만 후반부에 학살의 주범인 안와르 콩고 씨가
"내가 했던 살인, 내가 했던 학살이 전부 다 나에게로 돌아올까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죽인 그 사람들.. 내가 이렇게 죽였어요. 내가 그랬어요.."
라고 나지막이 말하면서 숨죽여 오열하는 장면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저 사람들도 사람이긴 하구나. 차라리 싸이코패스였으면 좋았을걸.
차라리 끝까지 자기가 한 행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면, 난 그 사람을 악마라고 칭하며 욕했을텐데.
나는 이 글에서 학살이 왜 일어났는지, 누가 그랬는지, 그 주범이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와 같은 문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으며,
자신의 죄를 반성하는 문화가 왜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3.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의 잔혹함과 그 한계

결국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바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의 잔혹함과 그 한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생각하다.
'글자'가 일부 귀족층, 양반층 등 소수 지배층서만 배우고 향유된 시대에서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핍박받는 피지배층은 글자에 접근조차 할 수 없고 기록을 남길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누구나 글을 배우고 어떠한 정보든지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서의 역사는 이전과는 다르다.
여전히 승자의 기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일시적, 단기적”인 승자의 기록이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수정된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 학살의 주범은 여전히 승자이자 사회의 지도층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학살의 주범의 입맛에 맞게 기록되었다.
하지만 10년, 100년 후에도 똑같은 내용의 역사로 남을지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다.
영화 초반부에서 안와르 콩고 씨는 자신의 학살 행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인도네시아 역사 교과서에서 가르치듯이 자신이 죽인 사람들은 사악한 반공이었으며,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살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최소 50만명이 영문도 모른 채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죽었지만,
학살에 동조한 주범들은 국민영웅이 되고,
언론사 사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승자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잔혹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를 보자.
안와르 콩고 씨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자신이 죽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후손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무서워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사실은 ‘무차별 살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살인은 죄악이라는 것 또한 안다.
그렇기 때문에 40년 넘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거다.
인도네시아 학살의 주범들은 언제까지나 승자일 수 있을까?
지난 수천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영원한 승자는 없다.
엎치락 뒤치락 하며 승자는 계속 바뀐다.
학살의 주범은
사회가 만들어준 자신의 ‘국민영웅’ 지위가 실은 모래위에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순간에 사회 내에 자정작용이 일어나
자신의 지위가 언제 어디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결국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의 한계를 보인다.
#4. 미래의 안와르 콩고가 명심해야 할 진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며 광주 민주화 항쟁을 떠올린 건 비단 나 혼자일까?
광주 민주화 항쟁도 사건의 주범이 승자였던 시기에는
광주 폭도들의 소요사태라고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뒤바뀌고, 사회가 민주화되어가는 과정을 지나면서
점차 ‘민주 항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사건의 주범이었던 당시 대통령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잠깐동안은 승자가 역사를 휘어잡고 역사까지 입맛대로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영원한 승자는없기에
결국 역사는 사회의 자정작용을 거쳐 점차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훗날 비인륜적인 방법으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진리다.
이 영화의 내용과 글을 읽다보니 '정의봉'에 맞아죽은 안두희가 생각나기도하고, <관상>에서 목이 잘릴까봐 노년에 공포에 시달린 한명회도 생각납니다.
분명 그들도 끝까지 웃을 수는 없을 겁니다 :(
분명 속으로는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겠지요..?
궁금해지는군요.ㅎ
저도 감상해보고 싶네요.ㅎ
보면 기분이 좀.. 다운되서 마음먹고 보셔야 할거예요 ^^;
'사필귀정'이란 성어가 떠오르네요.
결국 어두움의 일들은 드러날 수밖에 없죠. 다만, 그 어두움의 일들이 빛의 일인양 포장되고 속이는 경우가 많아서 잘 분간해야겠죠.
승자들은 죽을때까지 승자로 살다갈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역사가 증명해줄거라 믿어요. 그리고 절대자가 어떻게든 정의의 심판을 해주겠죠? :)
보면 마음 아플 것 같아 보지 않고 미뤄둔 영화인데... 나중에라도 꾸역꾸역 한번 보기는 해야 할 것 같네요~ 이 영화는 어떻게 보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
마음아프다기보다는 화도나고 너무 마음이 무겁고 그래요.
제 친한 친구중에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어서, 그쪽 국가 역사에 대해 관심이 가더라구요 :)
갑자기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백"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
자정작용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그 자정작용의 일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저도 저 스스로 그 자정작용의 일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음, 저는 이 영화를 일단은 이렇게 celestelle님의 글로만 접해봐야겠네요,
그래도 역사는 왜곡되지 말아야하고 감춰지지도 말아야하고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알아야하는 중요한 것 같아요... !
태교에 신경쓰셔야 할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 영화 리뷰 읽으셔서 어떡해요 ㅜㅜ 죄송해요 정말 ㅠㅠ
예쁜 아기 태어나고 먼훗날 티비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슬쩍 제 생각만 해주시고 넘어가주세요 ㅎㅎ
킄킄 아니에요! 생각할거리가 많은 글이라 완전 공감했어요:) 히히 celestelle님 글이 좋아욥!
저렇게 웃으며 사람을 죽인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니...
하루 빨리 그 날의 사건을 역사가 평가해주는 그날이 와주길 바래봅니다.
그 날.. 언젠가 꼭 올거라고 믿어요 !
온갖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지만 이 영화는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넘어갔었는데 역시.. 글로만 읽어도 장난아니군요 ㅠㅠ
캄보디아에 갔을 때 알게 된 킬링필드 생각도 나네요.
킬링필드도 어마어마하죠... 인도네시아 학살보다 더한.. ㅠㅠ 킬링필드는 지식인을 죽여서 캄보디아가 지금까지 발전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워요. 누군가의 무식한 신념이 한 나라의 흥망성쇠까지 좌지우지하다니..
저도 이 영화보면서 많이 불편했었죠. 역사라는것이 항상 승자에 의해 쓰여지니까 중요한 진실들도 이세상에서 많이 감춰졌으리라 봅니다.
네 맞아요. 정말 불편하고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 않아요. 그래서 나 스스로도 깨어있고 힘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저도 물들어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라요 ㅜㅜ
대학살 관련 영화와 책이 주는 자유와 인간에 대한 메세지는 항상 무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관동대학살을 비롯 말씀하신 민주 항쟁까지 먼 역사가 아닌 우리 나라도 겪어왔던 일이기에 더욱 가슴 아픈 영화입니다.
맞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군이 다른 나라에 가서 행한 학살도 있더라구요.. 저도 얼마전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나라면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도 고민해보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