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바둑의 황금기 ‘관철동 시대’
근현대 한국바둑의 황금기 ‘관철동 시대’
관철동 시대란 한국바둑의 시작인 한국기원이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었던 1968년부터 ~ 1994년까지의 기간을 이야기합니다.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조치훈 등이 국제기전과 국내기 전을 가리지 않고 타이틀을 석권해가면서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성장하게 된 기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국내 바둑인구가 엄청나게 많아지고 바둑기사과 수많은 바둑애호가들이 관철동으로 모여들면서 생긴 새로운 문화와 낭만이 꿈꾸던 우리나라 근현대사 바둑에 꽃을 피웠던 시기입니다.
비단 이 기간에는 바둑기원을 포함하여 다방, 신문사, 출판사, 술집, 밥집 등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대화를 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낭만과 정이 가득한 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여가생활은 60년대부터 도시인들에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되고 바둑은 그 문화에 가장 알맞은 놀이 중 하나였지요
물론 바둑은 개인과의 승패가 가려지는 종목이지만 대국을 할 때 상대가 꼭 필요하고 끝난 뒤에도 그냥 헤어지지 않고 다방으로, 술집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였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에야 바둑기원들이 오래된 건물 후미진 곳에 있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북적북적 모이는 중앙에 위치한 지금으로 따지면 별다방 커피숍 이상 가는 자리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철동에 위치한 한국기원은 그러한 곳에 있었고 당시 제법 고층빌딩인 5층 건물이었습니다.
1층은 다방으로 기사들과 바둑애호가들의 살롱 역할을 하였습니다.
2층은 일반회원실, 3층은 찬조회원실, 4층은 기사실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5층에는 현현각이라는 바둑전문 출판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모르겠군요 ㅎㅎ;
이는 포스팅 때마다 현재 최다로 등장하시는 ‘조남철’ 선생님의 큰 밑그림이 있었지요
각종 기전이나 대회 또한 여기서 이루어졌고 프로기사들뿐만 아니라 기사를 써야 하는 관전 기사들부터 바둑애호가들이 다 이곳으로 모였으니 이곳에서 바둑에 대한 스토리들이 쏟아져 나왔겠지요?
바둑을 한판 찐하게 두고 나면 배도 고프고 소주 한잔 생각에 다들 우르르 몰려가서 밤늦은줄 모르고 즐기니 술과 인생 그리고 바둑과 연결되는 수많은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이 있었겠지요.
대표적인 이야기들은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74년 10월에 발생한 ‘기계 파동’ 사건입니다.
(한국기원의 불편함) -https://steemit.com/kr/@mooyeobpark/4teqpx
이는 이전에 포스팅한 내용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사진들에 부정에 반발한 기사들이 집행부에 퇴진을 요구하며 한국기원을 탈퇴, 집행부의 퇴진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76년 12월 새로 구성된 이 사진이 기사들의 경제적 신분보장에 최선을 다한다는 약속과 함께 상처를 봉합했지만 아직도 그 당시에는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조훈현 9단의 독주와 서봉수 9단의 이야기입니다.
조훈현 9단의 압도적인 독주 속에 서봉수 9단이 항상 홀로 외롭게 도전을 하고 두 기사의 경쟁을 통해 한국바둑의 수준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일명 조서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그들의 경쟁을 통해 발전한 한국바둑계는 이창호 프로와, 유창혁 프로라는 걸출한 신인들이 나타나게 되지요.
세 번째로는 조치훈 9단의 일본 명인 타이틀 획득입니다.
80년 명인, 81년 본인방, 83년 기성전 타이틀까지 획득하며 일본 바둑 일인자로 부상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조훈현이, 일본에서는 조치훈이 세계바둑에서까지 모든 기전을 다 휩쓸어버리는 현상에 한국기원에서는 조치훈을 통해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고 국민들 또한 바둑에 대한 관심을 더욱 많이 갖게 되었지요.
(조치훈은 한국인입니다.)
네 번째로는 이창호의 등장입니다.
86년 11세에 나이로 입단한 이창호 프로는 스승 조훈현을 능가하고 국내외 모든 기전을 휩쓸면서 바둑 최강자 계보에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또한 신세대 바둑인구를 유입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대표적인 이야기들중 안쓰인 내용들은 앞으로 하나씩 포스팅해나아갈 예정입니다.)
우리 어른들이나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 기억하는 것도 바둑이야기는 대부분 관철동 시대에 이야기일 겁니다.
안타깝게도 찬란하게 꽃 피웠던 우리나라의 낭만적인 바둑문화는 90년대 초에 들어서 천천히 사라지게 됩니다.
관철동에 종로 코아 건물이 세워지며 젊은이들의 거리로 변해가고 그로 인해 다방도, 오래된 음식점도, 술집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변이 젊은이들의 환락가로 변해가게 됩니다.
또한 바둑에 폭발적 인기에 따라 86년에 연구생제도가 본격적으로 정착되어 바둑으로 꽃 피우는 문화의 장보다는 바둑의 실력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게 되면서 94년 홍익동으로 한국기원이 이전을 하게 됩니다.
현대적 감각에 건물에 들어서면서 메마른 공간에 그 그윽한 정서가 사라지며 예술적 가치로써의 바둑보다는 스포츠로써의 바둑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우리바둑의 뿌리요, 요람이자 역사적 현장이었던 관철동 시대에 한국기원은 그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른나라는 역사와 전통, 문화를 위해 없는것도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없애버렸으니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한국기원이 홍익동으로 이사한지도 2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관철동시대에 아름다운이야기들처럼 지금의 한국기원에 이야기들도 훗날 아름다운이야기로 꽃피울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화성시로 이전하면서 그 관철동시대의 문화를 없애버리는 우를 또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지막 바램으로 글을 마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조훈현, 조치훈, 이창호, 서봉수...하..포스팅해야할분들인데 워낙 대단해서
손대기가 어렵군요. 추후에 한분씩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바둑에 '조남철' 이란 분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박원장님 글만 봐도 알 수 있겠네요 ㅎㅎ
중요 부분에 항상 등장하시는군요!
저도 포스팅하면서 느끼지만 안빠지시는데가 없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우신 분인거 같아요 ㅎㅎ
이창호 9단이 타이틀 독식할 때 홀로 버티던 유창혁 9단이 떠오르네요.
이시기가 한국 바둑의 중흥기였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유창혁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https://steemkr.com/kr/@mooyeobpark/tfrqe
안좋은 사건이 터졌을때 포스팅을 해서 유창혁팬분들은 언짢으실수도 있지만;
위대한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유창혁 9단도 천재중에 하나죠
그래도 문제되는 발언정도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요 ㅠ
네 정말 다행? 인것 같긴해요 하루가 다르게 더한 기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니
유창혁9단정도는 그냥 묻혀버리는듯 합니다 ^^;;
전 유창혁을 가장 좋아합니다^~^;;
공격바둑에 대가! 바둑이면 바둑 해설이면 해설 사업이면 사업 만능엔터테이너이시지요 ㅎㅎ
유창혁 관련 포스팅 (https://steemkr.com/kr/@mooyeobpark/tfrqe) 입니다.
하필 안좋은 사건이 터졌을때 부랴부랴 적어서... 다음에 다시 한번 적어야 할꺼 같긴 합니다 ^^;
조훈현 9단의 젊을 적 사진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바둑의 역사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제목이 관철동 시대이다 보니 옛날 사진을 찾으려고 열심히 헤매고 다녔네요 ^^
감사합니다!!
전설의 바둑기사들 포스팅이 또 기다려지네요.. 조훈현과 서봉수는 한국바둑중흥의 서막을 알렸지만 인간적인 관계는 또 다른 모습이었죠..ㅎㅎ
차근차근 준비해서 올려보겠습니다. ㅎㅎ
요즘에는 일이 많아서 1일 1포가 너무 벅차네요 ㅠㅠ
원장님! 관철동 시대 연재가 끝나면 아니면 간간이 일본 프로 기사 이야기도 들려 주시면 어떨까요? 울나라와 일본 바둑은 서로 연결고리가 많아서 한데 묶어서 이야기를 전개해가도 충분히 흥미롭지 싶습니다. 면도날 사카다. 컴퓨터 바둑 이시이, 이중허리 임해봉, 미학자 오다케,지하철 바둑 고바야시 고이치, 우주류 다케미야 마사키,기타등등 일본 프로 기사들의 별명이 그들의 개성을 잘 드러내주죠.. 부탁드립니다. ㅎㅎ!!
제가 부탁받은 포스팅들중에 가장 최상의 난이도 포스팅을 부탁받았군요? ㅎㅎ;
일본프로기사들의 포스팅도 날잡고 한명한명씩 해야지요
워낙 대단하신분들이 많아서 주제거리가 늘어난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ㅎㅎ! 넵.. 기대하겠습니다..
일본기사를 쓴다면 세고에선생님부터 하고 싶네요 ㅎㅎ;
제자가 오청원에 조훈현입니다....허허..
넵.. 세고에 선생님! 좋죠... 응원합니다.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한주 수고하세요
짱짱맨님도 한주 화이팅!!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을 위해 현대적인 건물로 이사한것이 한편으로는 과거 예술적인 정서가 사라졌군요 .. 앞으로는 그 느낌 그대로 옮겨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건물에 한층이라도 남겨서 바둑 박물관이라도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ㅎㅎ;;
이번에 화성으로 이전할때는 어찌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