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설의 Rock Band Queen!!

in #kr8 years ago

바다낚시를 사랑하고 바다낚시를 취미로 갖고 있는 @mirazrain 입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영국 락 밴드 Queen~

그들의 삶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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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영국에서는 전설의 밴들들이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비틀즈, 레드 제플린, 딥퍼플.... 그리고

오늘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전설을 만든 락밴드 퀸 입니다.​

뭐 락 음악 매니아 뿐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분들도 그들의 이름은 알고 있으실꺼라고

생각 하는데요. 그만큼 전설이 된 퀸에 대해서 오늘은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컬 겸 피아노 : 프레드 머큐리, 기타 : 브라이언 메이, 베이스 : 존 디콘 , 드럼 : 로저 테일러

등으로 구성된 퀸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오늘날 까지를 간략하게 다뤄 볼까 합니다.

그들도 전설인 만큼 할 이야기는 꽤 있을꺼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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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전설의 시작 그리고 성공.....

​1969년에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의 학생이였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베이시스트 팀 스타펠이 밴드를 만들기로 결심 합니다. 메이는 학교 공지 게시판에

광고를 실었고 젊은 치과대학 학생이자 드러머 였던 로저 테이러가 밴드에 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밴드 이름을 스마일 이라 지었고, 그 밴드는 지미 핸드릭스, 핑크 플로이드,

예스와 같은 밴드들의 콘서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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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시스트 팀 스타펠은 미술 대학에 재학 중이던 파로크 불사라 라는 학생을

밴드에 소개 시켜주는데요. 그가 바로 훗날의 퀸의 중심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였습니다.

파로크는 곧 밴드의 열성 팬이 되었고 팀 스타펠은 1970년에 다른 밴드인 Humpy Bong에

가입하기 위해 스마일을 탈퇴 합니다. 그의 탈퇴 후에 스마일에서 퀸으로 밴드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을 바꾼 후에 3명의 베이시스트를 거쳐 1971년 존 디콘이 들어오며

드디어 전설의 라인업은 완성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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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과 대학 공연을 다니다가 트라이던트와 계약을 맺은 락밴드 퀸은 1973년 1집

Queen을 발표했으나 지나지체 레드 제플린의 냄새가 강하다 하여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가 2집 Queen II를 내면서 조금씩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오페라 록이라 불리는

초기 음악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며 큰 히트를 치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은 1974년 후반기 3집 Sheer Heart Attack의 Killer Queen이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면서 본격적인 성공 가두를 걷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 후 트리이던트와 맺은 계약은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았고 앨범과 싱글이 히트했음에도

불구하고 퀸의 멤버들은 돈이 없었다고 하네요.

법적 분쟁 끝에 EMI와 직속 계약에 성공한 퀸은 1975년 4집 A Night at the Opera를 발매 했고

앨범의​ 리드싱글로 6분에 달하는 대곡 Bohemian Rhapsody가 우여곡절 끝에 발매되어

영국 1위 미국 9위를 기록하며 퀸이 세계적인 락밴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76년 퀸은 5집 A Day at the Race를 발매 합니다.

프레미 머큐리 작곡의 Somebody to love와 브라이언 메이 작곡의 Tie your Mother Down이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77년 6집 News of the world를 발매 하는데요. 이 앨범에 퀸의

대표곡 중에 하나인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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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에 불어다친 영국 내 펑크 록 열풍으로 주류 락밴드들이 공격대상이 되었는데요.

퀸은 자신들만의 노선을 꿋꿋이 유지하며 이를 잘 극복 하였습니다.

1980년에는 싱긍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앨범 The Game이 미국 빌포트 차트 1위에

등극하고 남미로 투어를 간 최초의 메이저 락밴드가 되면서 인기의 정점을 맞이 하였습니다.

​엘비스 풍의 컨트리 곡인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또한 빌보드 1위를 유지했고

프레디 머큐리의 가창력과 무대 매너는 절정에 올랐습니다.

​1982년 후속작으로 락밴드로서 드물에 디스코풍이 매우 강한 앨범 Hot space를 발매 했는데

너무나도 파격적인 변화와 퀸 특유의 사운드의 부재는 팬들마저 외면하게 만들었고

이는 퀸 역사에서 가장 흑역사로 취급받는 비운의 앨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80년작 SF영화 플래시 고든의 OST앨범 또한 망하면서 이제 퀸의 시대는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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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The Work 앨범을 발매해서 영국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싱글 Radio Ga Ga도

히트를 쳤지만 락밴드의 생산성 이나 인기는예전만 못해보였고 멤버들의 솔로활동이

잦아졌던지라 해체설이 파다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펼쳐진 라이브 에이드에서 퀸, 특히 프레디 머큐리는 할당된 20여분간

무대를 휘어잡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이때 받은 대중들의 환대와 이어진

레코드 매출의 상승에 힘입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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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A kind of Magic의 발매와 함께 열린 전 유럽에 걸친 매직 투어로 이어졌습니다.

이 투어에서만 라이브 앨범 3장이 나왔고 7월 11일, 12일의 웸블리 공연 2회를 포함해

전 공연이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15만명의 관객이 운징합 영국 넵워스 공연을 끝으로 완전체 퀸의 공연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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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 사후.....


​1989년 The Miracle, 91년 Innuendo를 내놓아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프레미 머큐리의

건강 문제로 투어가 불가능 해집니다.

투어는 커녕 공식 석상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온갖 루머가 나돌게 되었습니다.

결국 1991년 11월 23일 프레디 머큐리가 성명을 통해 에이즈 환자임을 인정했고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프레디 머큐리는 양성애자 입니다.)

​팥 없는 찐빵이 되어서 그런가요?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자 퀸의 활동은 거의 끝났다고 해도 무방 합니다.

뭐 객원 보컬들을 불러서 공연도 했지만 역시나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은 많이 빠져 보입니다.

그 정도로 그가 밴드의 중심이였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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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락밴드 퀸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그들의 중심 이였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서 한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 허접한 락밴드 퀸에 대한 삶의 얘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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