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과 함께 한 좀 지난 출산 이야기

in #kr8 years ago (edited)

2015/09/20 오전 7시경 


자다가 무언가 울컥하고 나왔다. 평소 둔감한 나인데 울컥~


이것이 말로만 듣던 양수?? 


출산예정일은 이미 이틀이 지났고 며칠전 살짝 이슬이 비쳤기에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병원에 갔다.



2015/09/20 정오 


양수검사 후 입원 결정. 의사한테 물었다. 


"언제 퇴원하나요?" 


"애기 낳으면요." 


.............


두렵다. 


관장을 했다. 참을수 있는만큼 참으라고 했는데 30초정도 참았나...


제모는 언제 하나 했는데 제모는 하질 않았다. 할거냐 물어보지도 않았다. 


양수가 먼저 샜기에 유도분만 해야 한단다. 촉진제 투여. 


생리통같은 느낌...기분 나쁘다..


출산 당일 벼락치기로 신랑과 연습했던 라마즈 호흡을 시작했다. 


호흡 효과 있다. 하지만 호흡 안 할때는 다시 기분 나쁜 생리통.. 


신랑한테 성질내며 빨리 하나 둘 셋 구령 붙이라고 했다.


신랑 처음엔 열심히 해주더니 곧 흥미를 잃었는지 아님 구령 제대로 맞추기가 피곤했는지


핸드폰에 자기 구령을 녹음해서 그것을 들려주었다..............(핸드폰 구령은 영혼없는 구령이었다. 효과 무)


간호사가 들어와서 내진을 했다. 


출산 전에 어디서 들은건 있어가지고 미리 회음부 마사지를 해서 그런지


공포의 내진은 아니었다. 단지 기분 나쁜 진통이 꽤 계속된거 같은데 일센치인가 0.5센치인가 열렸다고 했다.


간호사한테 벌써부터 제왕절개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뒤에 간호사가 오더니 무통시술 동의서를 신랑한테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신랑은 또 그걸 고민하고 앉아있다. 성질냈다. 너 동의 안하면 나 분명 제왕절개라고.. 


그 얘길 듣더니 한참 고민 후 결국 동의서에 사인했다. (그걸 왜 고민하냐....)



무통관을 삽입했다. 참 친절한 의사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무통 시술은 그닥 아프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시범으로 조금 넣어준다고 했는데 조금만 넣었는데도 평화가 왔다. 


무통천국은 아마도 잠시 지속된 뒤 끝났고 다시금 진통이 왔다. 계속 기분 나쁜 생리통 수준이다. 


막 배를 가르거나 내 배를 찌르는 고통은 아니었다.. 


호흡으로 생리통을 버텼다. (생리통 수준이었지만 평소에 생리통이 거의 없었기에 그것도 괴로웠다)



2015/09/20 저녁 6시경


나름 몇시간동안 기분 나쁜 진통 겪었는데 자궁문은 거의 열리질 않고 (0.5센치였던가...) 


촉진제 빼고 저녁 먹고 다음날 새벽 6시부터 다시 시작하잔다. 


친정엄마와 언니가 사온 호박죽과 전복죽을 먹고 밤 12시부터 금식.


12시부터 6시까지 푹 자고 6시부터 힘을 내려 했으나 그건 꿈이었을 뿐..(원치않는 올나이트)



2015/09/21 0시경  


신랑은 바닥 침대에서 자고 나는 위에서 계속 끙끙. 진통은 여전히 생리통 수준.(하지만 그것도 괴로웠다..)


신랑은 끙끙거리는 나의 소리에 잤다 깼다를 반복. 


외로운 새벽 나와 함께 해주는 건 같은 입원실에 있는 출산한지 얼마 안된 산모의 모유수유 외출소리..


신랑은 자다 깨다를 반복하더니 나에게 또 핸드폰을 쥐어주며 진통어플을 추천해주었다.....

(왜 다 핸드폰에 맡기냐..) 


홀로 외로이 호흡하며 진통을 했다. (남들이 말하는 심한 진통 전혀 아니었으나 난 괴로웠다..)


2015/09/21 오전 6시경 


아..... 한숨도 못 잤다. 금식을 해서 그런지 힘도 없다. 


관장 또 할거냐고 물어서 또 한다고 했다.(관장 두번하길 잘한듯 하다. 더 안심하고 힘 줄 수 있었다)


밤새 진통했기에 많이 열렸을줄 기대했는데 전날보다 일센치 더 열렸나 ....휴


다시금 촉진제를 넣는다. 조금 더 심해지는 생리통...


호흡으로 견디고 몇센치 열렸는지 내진을 자주 요구했다. 

(출산 전 회음부 마사지 덕분인지 내진의 고통 그닥 없었다)


끙끙대고 있는데 담당 의사샘 오셔서 삼센치이상 열리면 무통 놔준다고 좀만 더 견디라 하셨다.


근데 삼센치까지 참 안 열리더라.......


생리통은 점점 극심해지고..


아주 심한 생리통이 찾아왔다. 


신랑은 옆에서 졸고 있다........(이젠 핸드폰 구령마저 없다..)


졸고 있는 신랑이 미워지면서 보란듯이 (일부러 나의 고통을 보여주기 위해) 소리내어 아프다고 울었다.


신랑은 그제서야 잠에서 꺠어 호흡 구령을 급히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호흡도 소용없다며 아프다고 더 보란듯이 엉엉 울었다...

(사실 그정도로 미친듯이 아프지 않았으나 얄미웠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또 내진. 이젠 무통 놔주겠단다. ㅠㅠ 


나처럼 고통에 둔감한 사람도 꽤 많이 고통스러워야 무통 맞을 시기가 되는 듯하다.


무통을 맞았다. 


무통천국이란 말/// 정말 실감한다.


나에게 찾아오는 그 평화란.........


너무 평화로워서 웃음을 지을 수 있었고 잠이 솔솔 왔다.^^



근데 무통천국도 잠시


왜 갑자기 큰게 ......



화장실이 시급하다. 


신랑을 집으로 보냈다. (입원 전 출산가방을 큰거 두개 쌌는데 간호사가 계속 다시 집에 갖다놓으라고 했다.)


나 무통 맞아서 이제 좀 괜찮아졌으니 애기 낳으려면 한참 걸리니 집에 가서 짐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신랑은 정말 가도 되냐고 연이어 물었고 나는 빨리 가라고 짜증냈다.(너가 가야 내가 안심하고 화장실 가지!!)


거의 싸기 직전이었기에 신랑을 급히 집으로 쫓아 보내고 


나는 간호사를 급히 호출.


"화장실부터 다녀와서 다시 시작할게요!!"


"화장실 이제 못 가요."


"...??!!"


"진짜 급하면 여기다(침대보) 보세요. 저희가 갈아드릴게요."


...............


오 마이 갓....


신랑을 미리 집에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힘을 준다.

(너무 급했기에 침대보에서라도 봐야한다 생각)


여러번 힘을 주었으나 큰건 나오질 않고///


간호사 왈:"화장실 배 아니에요...애가 나오려 해요..."


........?!! (느낌은 백프로 급한 화장실 배였다)


간호사는 신랑 어디갔냐며 급히 찾았고 난 짐 놓으러 집에 갔다고 하자 왜 안가다 지금 갔냐고 한다..ㅎㅎ


빨리 데려오라고 해서 급히 전화를 해서 신랑을 찾았다. 


신랑은 집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서 다시 당장 오라는 말에 당황스러워 했고 자꾸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내가 빨리 오라고~!!! 라고 버럭하니 그제서야 군말없이 온다고 한다.택시타고 오는중에 제왕절개 하는거냐 물었다..


(후일에 시부모님한테 들었는데 신랑은 우리 친정집에서 큰일을 보던중 내 전화를 받고 물도 내리지 못하고 왔다한다)



2015/09/21 오후 1시경 


신랑이 왔을떄는 나는 이미 얼굴이 터질듯이 힘주는 자세를 연습하고 있었다. 

(신랑은 이순간만큼은 졸지 않았다)


아이가 둘인 친언니에게 똥누듯이 하면 된다고 들었기에 정말 그렇게 했다. 간호사도 그렇게 알려 주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신랑한테 나가라고 했다.


간호사와 힘주는 연습 다시 하는데 나한테 아플때 힘주라고 한다. 


나는 언제 아픈지 모르겠다고 했다..(무통 맞은지 얼마 안돼 아픈걸 못 느꼈다..^^)


간호사가 자꾸 아플때 힘주라고 했는데 아프질 않아서 똥이 가장 급할때 힘을 줬다. 힘을 잘 줬단다. 이 느낌이군.^^


무통빨이 들었을때 아기를 낳은건 참 운이 좋았다. 아픈걸 못 느꼈으니...


그런데 화장실 급한 느낌도 참 괴롭더라 ㅜㅜ 


근데 무통빨 있다고 아예 힘을 못 줄정도로 느낌 없는거 전혀 아니었다. 힘은 잘 줄 수 있었다.


단지 아래에만 힘을 집중해야하는데 얼굴이 터질정도로 얼굴에 힘이 가서 문제였지만....


간호사가 호흡 하라고 했다. 아기가 힘들어한다며.... 하지만 그 순간에는 호흡이고 뭐고 힘주는것만도 쓰러질 지경..


영혼을 다해 힘을 주고 있는데 


후광이 보인다는 담당샘이 오셨다. 멀리서 가운입은 마스크를 쓴 샘이 보이자 안심이 됐다. 이제 거의 끝인가,,


다리에 무언가를 씌우고 (아마 위생상 씌운거같다) 마지막으로 몇번 더 힘 세게 주라고 했다.


똥이 심하게 마려울때 정말 영혼을 다해 힘을 주었다. 

(얼굴이 터질듯이 느껴졌다. 터져도 그 순간엔 상관없었다)


영혼을 하얗게 불태워 힘을 세네번 더 주었던 것 같다.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말..




"힘 빼세요!!!!!"


......?


그제서야 힘을 쭉 빼니 ..



2015/09/21 오후 1시 32분 



미끄덩~~~


하고 무언가 쑥 나오는 느낌....



아래쪽을 쳐다봤는데 하얀 아기..

(내가 까맸기에 하얀 아기인지 까만아기인지 궁금했다 ㅎ 신랑은 하얀피부)


나가있던 신랑이 들어와 (멀리서 위생모자와 위생복을 입은 신랑이 들어오는게 보였다)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아기의 탯줄 자르는 모습은 난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아기를 안겨주었고 오른쪽 젖을 물리게 했다.


나는 계속 어리벙벙..

(눈물을 흘릴거라 기대했는데 영혼을 하얗게 불태웠기에 눈물조차 말랐는지 한방울도 안나옴)


어리벙벙한 상태로 아기를 봤는데 왠일..아기가 쪽쪽 젖을 빤다.. 그 신기한 느낌...신비로움..

(근데 왜 눈물은 안 나나)


신랑에게 아기와 나 동영상 촬영을 부탁하고 사진도 찍고 신랑은 밖으로 나가고 아기도 간호사가 데려나갔다.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순간 세상이 내것같았다. 드디어 끝났구나..^^) 간호사와 담소를 나누고 


"정말 마지막에 힘을 못 주겠더라구요~~~^^(엄청 여유만만)"


"힘 엄청 잘 주시던데요?? 너무 잘 줘서 마지막에 힘 빼셔야 할때까지 계속 주셔서^^" 



"하하하하 ~~~호호호호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여유롭고 즐거운 대화중~)"


휠체어가 왔고 휠체어를 타고 간호사와 입원실로 가는데 나는 계속 간호사와 담소중~


간호사 왈:"진짜 순산하신거에요~"


"진짜요?"


"네~ 키도 크시고 덩치도 좋으셔서 그러신지 그러신 분들이 잘 낳으시더라구요~"


"그래요? 하하~(엄청 여유만만)"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아줌마 왈:

"출산하셨어요?? 근데 출산한 사람이 어쩜 이렇게 기운이 좋아요~"



ㅎㅎㅎㅎㅎㅎ



NO PAIN NO GAIN


아마 고통이 있었기에 그 순간이 그토록 달콤했었나보다.^^


내성적인 나도 사람과의 대화를 즐겨하지 않는 나도 


그 순간만큼은 간호사와의 담소가 꿈만 같았다. 너무도 달콤했다.^^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했다.


아기를 크게 원하지도 않았고 아기의 나올 날을 학수고대 한 나도 아니었으나

그런 나도 아기를 만났을 땐 참으로 신비했다.


진통의 고통이 있었기에 아기를 만난 후에 기쁨이 더 컸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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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 낳은 것 같이 생생하네요

필력 좋으시네요 ㅎㅎ

ㅎㅎㅎ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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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그때가 생각나네요ㅋㅋ 그땐 애만낳음 다좋아질줄알았는데말이에요ㅎㅎ넘을산이 많아요 지금도

맞아요 인생은 매번 넘으면 또 넘을 산이 있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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