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 보는 거북이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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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홍콩의 한 헬스장에 갔는데 많은 사람이 그러듯 (나만 그러나..)

웨이트 기구는 쭈뼛거리며 혼자 몇번 들어올리고 내리다가 나중엔 완급 조절 실패로 응원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얼굴 시뻘개져서는 이런 자신이 괜히 민망해져 서둘러 런닝머신의 티비를 보러(?) 런닝을 했던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날도 역시나 혼자 런닝머신의 티비를 보러 어설픈 경보로 런닝을 하고 있는데 나름 번드르르하게 생긴 홍콩 남자 트레이너가 다가와 나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귀찮게 왜 자꾸 말 걸어... 나 런닝(티비)에 집중하는 거 안 보이나??'

아름다운 여회원에 대한 사사로운 관심이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은 티비만 보던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트레이너 왈: "회원님, 이쪽으로 와보세요.
회원님은 등이 너무 굽어 있어요. 목도 그렇구요. 제가 도와드릴테니 런닝 그만 하시고 이쪽으로 와서 저랑 잠깐 트레이닝 받아보세요."

헐.....

외국 헬스장에서 혼자 동떨어진 채 티비만 보고 있던 나도 한심했는데 그런 나보고 목도 굽고 등도 굽었다고라??

나는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 트레이닝에 관심 없어요.(흥)"

했지만 그 놈(?)의 번지르르한 홍콩 트레이너는 일부러 티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나에게 내 상태가 심각하다며 런닝이 중요한게 아니라 몸을 교정해야 한다며 옆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자존심이 상했고 그 쓸데없는 자존심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끝까지 "나는 트레이닝에 관심없다"란 말로 밀어붙였다.

끈질기게 내 상태가 심각하다며 옆에서 나의 안 그래도 없는 자존심을 있는 대로 구겨버린 그가 결국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가자마자 기분이 확 상해버린 나는 그 자리에서 런닝머신을 박차고 집으로 가버렸고 친구에게 바로 문자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무 기분 나쁘다며 그 트레이너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암튼 남자한테 이쁘다는 칭찬은 못 들을 망정 갑자기 내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얘길 들어서 기분이 상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에게 그 사람 욕을 한바가지 하고나서도 왠지 분이 풀리지 않아 집에서 씩씩대고 있다가

갑자기 그 트레이너가 왜 끈질기게 그런 말을 했을까 싶어 거울로 내 옆모습을 비춰보았는데..

아뿔사...

정말 목은 거북이처럼 앞으로 길게 굽어 있고
어깨는 둥글게 앞으로 굽어져 있었고 배는 나오고 등은 굽어져 있는 전형적인 '척추 측만증' 이었다........

나는 사실 거울로 이렇게 자세히 나의 옆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심각하게 흉한(?) 상태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 트레이너가 나를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 트레이닝 시키게 만들 작정으로 그런 말을 한 건줄 알았는데 내가 봐도 나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그랬다..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봐서 그랬는지 예전엔 분명 안 그랬을텐데 전체적으로 앞으로 굽은 나는 그야말로 거북이.......ㅡ_ㅡ

헬스장에서 기분이 나빴던 것보다 두배는 더 충격을 받은 나는 그 후로 매일매일 거울로 나의 옆모습을 비춰보며 나의 목과 어깨, 등을 일직선으로 펴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고 아주 심한 척추 측만증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스스로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점점 거북이었던 나의 몸은 곧아져갔다...

나는 지금까지도 거울을 보면 앞모습뿐만 아니라 옆모습까지 비춰보는 습관이 있고 옆모습을 보며 나의 목과 어깨, 등이 굽지 않았는지 의식적으로 스트레칭을 해준다.

그때 그 번지르르한 트레이너의 기분 나쁜 충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계속 거북이로 살았을 것이고 내가 그런 모습인 것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가끔은 정말 기분 나쁘지만 나의 좋지 않은 모습을 여과없이 그대로 말해주는 사람도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악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우리는 그제서야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내가 지금껏 알지 못 했던 나 자신의 단점을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전체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개선의 여지가 생기고 그 거울은 종종 제 삼자의 눈길이 되기도 한다.

성찰하는 사람만이 발전이 있고 우리가 발전을 하면 그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우리한테 좋은 거다.

나처럼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악인을 자처할 용기가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청하지도 않았는데 우리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너는 이게 문제야 저게 문제야 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의 말이 모두 정답일리도 없고 그 사람이 나를 다 알리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우리 자신은 잘 보지 못하는 우리의 어떤 부분이 있고 이 부분은 어쩌면 제 삼자 눈에는 정말 눈에 잘 띌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악역같이 느껴지는 사람의 말을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지, 그의 말에도 혹시 일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가 말하는 그 부분을 고치면 내가 더 발전할 여지는 없는지 한번쯤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로 인해 발전을 하면 내가 좋다.

그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만 받고 이만 부득부득 가는 것으로 끝날지,

아니면 그를 이용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지,

그건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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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맞으시죠?? ㅎㅎ 누구나 다는 아니지만 한번쯤 당해봄직한 상황인 듯 합니다. 저도 한동안 짐에 다닐때 다른 근육남들에 비해 나이나 체력적으로 위축되서 구석탱이에서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트레이너랑도 눈빛을 피하고 혼자서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사실 운동효과가 그리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자신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네요.. 자신의 단점을 말해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말도 있듯이 한번쯤은 말씀대로 살펴보는게 좋을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그것을 인정 하고 받아들이기 까지가 참 힘든것 같아요~ ^^
조만만 포기 하고 받아들이면 훨씬더 나을텐데 말이에요~
오늘도 마음의 교훈 하나를 담아 갑니다. ^^ 즐거운 하루보내세요!!~

맞아요 끝까지 인정하기 싫어요
나한테 그런 단점이 있다는 것을...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남한테 지적 받으면 기분이 굉장히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단점을 개선했을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거란 생각하면 기분도 좀 나아져요^^

맞습니다. 런닝할때 정면바라보고 해야한다고 누차 지적받은적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상기가 됩니다. 나이들수록 귀가막힌다고 하는데, 노력해보려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거북이 한 마리 추가요~

저는 집 문턱에 철봉을 하나 걸어놨는데, 지나가면서 한번씩 매달려 보는 게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깨와 등 근육을 자극해 주는 것 같아서 조금 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구요.

저도 고집이 있어서 부부싸움할때 이런 비슷한경우가 많았어요. 뒤돌아서면 내가 왜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 ^^

저는 내내 신랑이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제 고집이 더 셌던 것 같아요. 제 생각과 안 맞으면 남의 생각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좀 조율을 하며 살아가야 겠습니다..^^

여기 아직 거북이인 한명이 왔습니다. ㅋㅋ

제가 쫌 지인들에겐 악인의 역할을 하는데... ㅎㅎㅎ
친구들아 날 미워하지 말아줘~~~

megaspore님과 같이 제 주변 지인들은 다 발전적으로 받아주나봅니다.
아 난 복받은 거북이~

거북이님 오사카 여행은 어떠셨나요^^

오이타 여행 전에 오사카 여행 다녀 온 것은 또 어찌 아셨습니꽈!!!
멋진걸요?

스타는 팬을 바라보지 않지만 팬은 스타를 바라봅니다..^^

그래도!!!
1호 팬은 봐주던데 말입니다!!!

가끔 댓글에 라이언님이 있나 찾아보긴 했습니다^^

역시 전 특별하군요! 😀

megaspore님 글을 보니 어렸을때 런닝머신 뛰다
넘어져 크게 창피를 당한적이 있어 그후 헬스장에
가도 런닝머신은 잘안뛰게 되더라구요 ㅎ
그날의 기억이 마음속에 큰 상처가 되었나봐요 ~ㅎ
맞아요..살다보면 자존심을 높여야 할때가 있고 낮춰야
할때가 있는거 같아요..
그걸 적당히 맞추기가 힘들어서 문제이지만요~!!
megaspore님글보면서 제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네요..좋은글 잘보고 갈께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_^

거북이그림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군요ㅋ 악역같은 사람이 있어 내자신도 돌아 볼수 있는것같아요 그당시엔 좀 화나지만요ㅎ

네 그 당시엔 '굉장히' 화납니다^^

우리에게 좋은 충고는 귀에 쓰다고 하지요. 듣기 싫은 말이라도 내게 도움이 된다면 나를 발전시키는데 쓰면 좋을 거 같아요.

역시 좋은 약은 쓴법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는 나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정말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잘 못 됐다고 지적받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 내가 잘 못된 경우도 많았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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