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갈 옷이 이것밖에 없다

in #kr3 years ago

5살 아들이 유치원에 가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옷에 쏟았다. 옷이 많이 젖긴 했지만 휴지로 다 닦아줬고 좀 지나면 마를 터였다.

아들은 울상이었다. 이거 어떡해 하면서 계속 걱정을 했다. 나는 그게 신경 쓸일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유치원 들어갈 때까지 젖은 옷을 움켜쥐며 계속 신경 쓰는 아들을 보며 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도 안 날 일로 우리는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세월이 지나 늙은 내가 지금의 나를 봤을 때 해줄 말도, 지금의 내가 할말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그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했고, 지나고나면 별거 아닌 일들로 안도하고 기뻐했었다.

별거 아닌 일로 스트레스 받고 속상해하는 지금의 나도 인정해주고, 또 미래의 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이 사실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님을 꿰뚫어 본다면, 우리는 조금은 덜 날뛰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지.

어제 엄마가 가게 화장실 문 열쇠 수리하는 일이 잘 안되서 열 받아서 소맥을 드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난 그것 역시 며칠 지나서 수리하면 될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엄마는 진심으로 열받아 하셨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진짜 저 일 때문에 화가 나신걸까. 사실상 드러난 것은 화장실 열쇠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다른 더 큰 것 때문에 다른 이곳저곳이 속상하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가슴이 쿵 하고 흔들렸던 것 같다.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걸 먹어도, 여행을 가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싶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으리만큼 가벼운 내 존재...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그토록 떠다녔나보다. 헤맸나보다.

적당히 무거워야 더이상 헤매지 않고 정착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책임감. 적당한 사명감. 주어진 것에 대한 적당한 수용. 체념. 그것으로 부터 오는 묘한 안정감.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은 나는 이것밖에 없다는, 나에겐 너밖에 없다는, 감사함. 소중함.

감사한 마음도 처음에는 체념과 같은 쓸쓸하고 초라해보이는 감정에서 비롯될 때도 있는 것 같다.

맘에 들지 않는 젖은 옷이지만 나는 이것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체념. 현실에 대한 수용. 한참 뒤에 오는 이래도 괜찮다는 묘한 안정감.

이대로도 괜찮다. 별볼일 없고 버젓하지 않은 이대로도 괜찮다.

나에게는 갈아입고 갈 옷이 없다. 나에게는 오직 겨우 이 정도의 남들이 알아볼까 부끄러운 옷밖에는 없지만 이것을 입고 세상에 나아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겨우 이정도밖에 안되는 옷이지만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다는 어쩌면 초라해보이는 체념과 수용을 한 뒤에는 묘한 안정감이 생긴다.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사실 사람들이 그정도로 나를 신경쓰지는 않았구나. 내가 가진 걸로도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구나. 같이 살아갈 수 있구나. 란 걸 알게 되면 조금은 마음이 놓아진다.

늘 긴장했던 우리. 늘 무엇을 이루느라, 자신을 꾸미느라 조급했던 우리.

내가 가진 것으로 이 세상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체념하는 과정은,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수용이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나다운 방식으로 더 적극적으로 모르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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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것처럼 표면에 드러난 사건만으로 판단하면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은 에너지죠.
내부에 쌓여있는 에너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컵에 물이 차는 것과도 같은 얘기죠.

물이 계속 차 오르다가,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흘러 넘쳤는데
아, 그 마지막 한 방울이 물을 넘치게 했구나 하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진실로 맞는 것은 아니죠.

세상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을 때, 그다지 맞는 말이라 생각되지도 않았고,
조금은 화 같은 것도 났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은 제게 생각보다는 관심이 없었고,
뭐 저 역시 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것이란 것에 이견은 없습니다.

타인을 타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모르기 때문이겠죠.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타인이 나로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 비로소 친구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가도 다투고 헤어지기도 하고...
티격태격 그렇게 살아가는게 인생이겠죠^^

<물이 계속 차 오르다가,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흘러 넘쳤는데
아, 그 마지막 한 방울이 물을 넘치게 했구나 하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진실로 맞는 것은 아니죠>

와.... 요호님은 어떻게 그렇게 통찰력 있는 말씀을 술술 잘 하세요....!!!!! 감탄 또 감탄!!!

너무 과찬이십니다 ^^

그녀의 육체는 토마시에게 유일한 육체가 될 수 없었다. 전쟁에 패배한 육체. 꺼져버려라 육체여.
갑자기 장을 비우고 싶어졌다.
단지 먹고싸는 존재인 육체자체의 육체로.......
.......... 쿤데라의 가벼움은 공산주의라는 무거움 속에서 더 빛나는 듯 합니다. 저도 가볍게 살려고요 ㅎㅎㅎㅎ
북한 사람들은 한때 같은 선에 어깨 결었지만, 확실히 체코사람들보다는 속박을 잘 견디는 군요 ㅎㅎㅎ

단지 먹고 싸는 존재인 육체 자체의 육체로..

쿤데라의 가벼움은 무거움 속에서 더 빛난다..

속박들 잘 견디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일까요??

이대로도 괜찮다. 별볼일 없고 버젓하지 않은 이대로도 괜찮다.

와.. 오늘 좀 힘든 하룬데, 힐링되네요. ^^

'체념과 수용'이라는 자기 인정이 뒷받침될 때,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첫 계단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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