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가는 호주, 난 어땟을까?(2)

in #kr6 years ago

그 날의 하루는 정말 길었다. 그 당시 일기에 보면 이 날에 대한 내용이 좀 자세히 적혀져 있다.

골드코스트 공항에 마침내 도착했다. 첫인상은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한 공항이였는데 안타깝게도 나의 입국심사는 그렇게 깔끔하지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린후 입국심사대까지 가서 immigration card를 일단 작성했었다.

원래는 기내에서 받아서 작성했어야 했는데 기내에서 받지못해서 심사대앞에서 바로 작성했다고 일기에 나와있다. 일기에 보니 기내에서 내가 카드를 받지 못해 승무원에게 물어봤고 승무원이 나보고 기다리라는 말만 해서 짜증이 났다고 적혀있다. 내생각에는 그 당시 상당히 예민한 상태였던것으로 보인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작성하다보니 줄이 상당히 길어져서 심사를 받기까지 1시간 넘게 기다렸던 것으로 나와있다. 엄청나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내차례가 왔다. 당시 심사대에는 중년의 여성심사원이 심사를 맡고 있었는데 그 때의 대화는 간략하게 이랬다.

심사원: 여권과 비자승인서류를 제출해주세요.

나: 여기욥.

잠시후

심사원: 혹시 담배나 기타 세관에 신고할 물건 가지고 있어요? 있으면 지금 신고해야 됩니다.

    혹시 담배 피세요? 

나: 아뇨. 저 담배안펴요.

심사원: 네 알겠습니다.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물품은 압수되니까 그 점 명심하세요.

나: 네 알겠습니다.

심사원: 비자는 워킹홀리데이네요.(정확히는 무슨 숫자 붙은 비자였음.) 혹시 이전에 호주에 입국한 적 있나요? 있다면 언제였나요?

나: 이번이 호주 첫번째 입국입니다.

심사원: 네 알겠습니다. 여기서 나가시면 라인이 두개 있는데 나가자마자 오른쪽으로 꺽으면 사람들이 줄 서 있을거에요. 거기 가시면 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였다.

지금 보면서 웃긴건 이건 내가 영어가 안되는 상황에서도 꽤나 잘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내 기억에도 이때는 별 무리없었고 일기장을 봐도 이 부분인 다 적혀져 있다. 참 신기한 상황이다.

그렇게 1차심사대를 통과해서 오른쪽으로 꺽어서 가니 2차 심사대가 있었다. 여기서는 승객들의 짐을 검사하는 곳이였는데 정확히 기억하는게 세밀한 검사를 하는 곳이였다. 그 때 기억하기론 아랍계,동양계 사람들은 전부 다 이 라인으로 보내졌고 백인계들은 다른 라인으로 보내졌다. 지금 보니 일기장에 뭐라고 적혀있나면 왜 인종별로 나눠서 짐 서치를 따로 받는지 이해가 안가고 이건 인종차별이 아닐까 라고 적혀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인종차별로 보는 경우가 아주 많고 나도 그 당시 그랬다. 헌데 호주정부에서 이럴만한 이유가 있는게 밀수품을 들여오는 인종의 절대다수가 동양계와 아랍계쪽이다. 특히나 아랍계는 테러때문에 짐 서치가 엄청나게 심도있게 행해진다. 나는 호주에 있으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서 이게 딱히 문제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많은 수의 동양계(특히 중국계)와 아랍계들은 확실히 여기부터 호주가 인종차별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들어온다.

짐을 아주 세밀하게 검사했는데 아마 마약관련된 밀수때문에 굉장히 엄격하게 검사했었다. 그 중에 하필 또 내가 검사관에게 불려져 완전히 짐을 unpacking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30대초반의 검사관이 나를 불러서 코너쪽으로 가더니 영어로 천천히 아주 명확하게 말해주었다. 내용인 즉슨 짐 다 풀어서 하나하나 살펴볼껀데 혹시 지금이라도 세관 신고할꺼 있으면 지금 나한테 이야기하면 된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다라는 것이였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말그대로 정말 캐리어 안에 있는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꺼내야 됬는데 그 때 당시에는 검사관이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다.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라 내가 인종차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부분은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긴 한데 그때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느낄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검사관이 unpacking 하기전에 이 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영어가 서툰 걸 안건지 아니면 공항에 오는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이 안좋은 건지 그 검사관은 굉장히 친철하게 설명해주고 또 내가 못 알아들을까봐 굉장히 느리게 이야기해줬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검사관: 우선은 니가 이 절차에 걸렸다는 게 너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승객들의 10분에 1은 이런 절차를 거치게 되어있어서 그런거니 너무 기분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니 짐을 하나하나 다 꺼낼껀데 혹시 세관에 신고해야 되는 물품들이 있으면 지금 꺼내도 된다. (이 부분은 정확히 반복해서 2번 말했다.) 그리고 지금 짐을 풀었는데 마약이나 밀수품에 해당하는 물건이 발견될 시 호주법에 의해서 처벌될 것이고 그런게 없으면 지금 짐을 다 꺼내려고 한다. 없으면 시작하도록 하자.

그러고나서 짐을 하나하나 다 풀었는데 내가 캐리어하나에 옷이랑 필요한 물품들을 다 집어넣었기 때문에 꺼내는 것도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렸고 검사가 끝나고 다시 집어넣는데까지도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대략 30분정도 걸렸는데 끝나고 나서 내 표정이 안좋았는지 아니면 검사관도 미안했는지 짐을 다시 집어넣을때 같이 옆에서 도와줬다. 그러고 검사가 끝이 나자 나보고 호주에 온걸 한영한다 너의 앞길에 행운을 빈다 이러면서 가버렸다. 정확히 영어로는 Welcome to Australia! wish you good luck in your journey! 로 말했다고 일기에 적혀있다.

참 이런거는 왜 적었는지 ;;; 그 당시 영어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엄청나게 느꼈는지 이런게 엄청 적혀져 있다.

어쨋든 그러고나서 나는 주섬주섬 짐을 들고 심사대를 빠져나왔다. 캐리어 하나랑 노트북가방하나를 메고 심사대를 빠져나와서 바로 앞에 벤치가 있어서 거기서 잠시 앉아있었는데 정말 식은 땀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의사소통 문제가 내 생각보다 너무나 심각했었다. 지금에야 그 때 기억을 되살려서 이야기하는 거였지만 그 때 당시에는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수가 없었다. 일기에 이부분은 상세히 적혀있기는 한데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서 벤치에 약 1시간정도 맥없이 앉아있었다고 나와있다.

흔히 말하는 현자타임이 온건데 정말로 그 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중에 솔직히 말해 다시 귀국할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1시간이었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에 도망치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정말로 그 때 처음으로 내 마음을 추스리고 계속 도전을 이어나갔던거 같다.

애초에 그리고 돌아갈 여건도 안됬다. 내가 들고온 자금중 상당부분이 이미 미리 개설해놓은 호주 NAB계좌에 들어가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자금도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당장 해야 될 과제는 내 숙소가 있는 브리즈번으로 이동해서 체크인 하는 것이였다. 여기서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면 내가 타고 온 에어아시아는 애초에 브리즈번행 노선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실수로 숙소를 먼저 잡는 바람에 최대한 가까운 골드코스트로 향한 후 거기서 트레인을 이용해서 브리즈번으로 오는 것이 나의 플랜이었다. 근데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했던게 몇번 버스를 타고 어떻게 트레인 역에 가서 타야하는지를 전혀 안알아보고 왔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험난했던건 공항에서 보니 버스가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셔틀이라고 써져있는 버스, 하나는 그냥 버스. 도저히 뭘 타야 될지 난감한 상황 그리고 더 중요한건 브리즈번까지 가는데 쓸 교통카드를 만들어야 했다. 근데 공항을 두바퀴나 돌았는데 도저히 그런곳을 찾을수가 없었다.

거기서 또 멘붕상태에 도달해서 벤치에서 30분 가만히 앉아서 좌절했던 걸로 기억한다. 식은 땀을 그렇게 많이 흘린 적은 처음이었는데 내 인생 최대 고비중 하나가 아니였나싶다. 영어는 하나도 안들리고 나 혼자타지에서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 당시 나는 소심하고 겁쟁이였다. 이건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히 사실이였다.

그런데 참 인생이라는 것이 묘한게 이 때의 고비가 나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 당시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고 어떻게든 위기를 직면해서 돌파구를 만들었어야 하는 강제적인 상황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

벤치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심한다. 공항 정문에 안내데스크가 있었는데 여기 가서 물어볼 참이었다. 정말 한 20분을 고민하다가 가서 물어봤는데 친철하게 대답해줬다. 문제는 내가 그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딱 하나 알아듣은 단어는 orange 였다. 이 부분이 일기에 적혀있기로는 직원이 이야기했는데 정말 못알아 들어서 뻘줌해서 알아들은 척을 했다고 적혀있다.

정말 지금 보고 있으면 loser가 따로 없다;;;

'주황색'

한 5분간 생각하고 나니 대충 뭘 말했는지 짐작할수 있었는데 공항을 그 때 2번 돌아다녀본 결과 주황색으로 표시된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마 안내데스크에서 말한것은 거기 가서 표나 교통카드를 구입할수 있다는 이야기같았다. 그래서 그 곳으로 황급히 갔다. 가니 안에 표지판이 하나 있었는데 Go card(퀸즐랜드주에서 쓰는 교통카드를 말함)를 구입할 수 있다고 써져있었다. 정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이걸 왜 못봤지하는 의문이 들 정도인데 이게 왜냐면 필자는 나중에 이 골드코스트공항을 한번 더 오게 되는게 그때도 go card 충전때문에 여기를 왔다.
멘붕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나 보다.

곧바로 직원에게 가서 대화를 나눴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직원: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나: 오늘이 호주 온 첫번째 날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제가 지금 브리즈번으로 가야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브리즈번으로 가는지 모르겠네요. 좀 알려주실래요??

직원: 아 그러세요? 일단 여기서 버스를 타고 Train Station까지 가셔야 되요. 그런 다음 거기서 트레인을 타면 브리즈번 다운타운까지 갈수 있어요. 여기 고카드를 사서 공항 앞에 버스스탑에서 제가 알려주시는 버스 타고 가시면 되요. 요금은 가는데까지 해서 약 20불정도 듭니다. 고카드 사시겠어요?

나: 네. 혹시 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아세요??

직원: 약 한시간 반 정도 걸려요.

대화의 내용은 이랬다. 이것도 일기에 적힌게 아주 신기하다. 이걸 내가 그당시 다 어떻게 기억했는지 참;;;;

그렇게 고카드를 사서 직원이 알려준 버스를 타기 위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버스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두개였는데 직원 말로는 셔틀버스는 골드코스트 다운타운으로 직행하는 버스라고 했고 그냥 버스라고 적혀있는거는 정류장을 거쳐서 가는 버스라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준 버스가 왔고 그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기억에도 남아있고 일기에도 적힌대로 그 때 아직도 잊을수가 없는게 내가 딱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에 타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말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나를 쳐다봐서 내가 몸둘바를 모르고 있을 때 당시 앉을 자리가 없어서 내 캐리어를 세워서 거기 위에 앉았는데 주변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 저기 젊은 청년(아직도 기억하는게 정확히 Boy라고 말함.) 어디서 왔나??

나: 저 한국에서 왔습니다.

할아버지: 음 그래. 호주가 오늘이 처음인가?? 그런거 같아보여서

나: 네. 오늘 막 호주에 도착했어요.

할아버지: 호주는 뭐때문에 왔나?? 공부하러 왔니??

나: 아뇨 저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면서 여행하고 싶어서 왔어요.

할아버지: 음 그래. 재밌게 여행 잘하고 호주에 온 걸 환영한다.

이런 내용이었다. 근데 저것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해서 계속 pardon 하고 난리도 아니였다.

어쨋든 한 40분을 가니까 트레인 스테이션이 나왔다. 버스기사가 친절하게도 나한테 여기서 내려서 트레인 타고 가면 브리즈번 갈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때 버스안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좀 감격했었다.

버스기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내려서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트레인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진 않고 한 20분정도 기다렸던거 같다. 트레인을 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정말로 피곤해서 골아떨어졌던걸로 기억한다. 한 한시간정도 졸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코를 고는 소리에 놀라 깻던걸로 기억한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기에 다행히였다.

잠에서 깨니 목적지에는 거의 도착했었는데 트레인에서 밖으로 브리즈번시티를 봐라 봤을 때 비로소 내가 호주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의 숙소는 X base 호스텔. 트레인에서 내려서 스테이션을 빠져나오니 바로 앞에 호스텔이 보였다. 호스텔이 접근성이 굉장히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나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호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 트레인 스테이션을 딱 빠져나오면 호스텔이 바로 앞에 이렇게 보인다. 호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면 다들 알고 있는 X base 호스텔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어서 숙박비용이 다른 호스텔에 비해서 꽤나 비싼편. 하지만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들 이용한다. 특히 이런 호스텔은 동양계는 거의 찾기 힘들어서 영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조성된다. 나도 그런 이유로 숙소를 여기로 정했었다.

호주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영어능력향상이였기에 애초에 처음부터 필자는 외국인들과 어울려 다니려 했다. 그래서 그때도 굳이 호스텔을 선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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