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in #kr2 years ago

'영화가 진중하질 못하네. 액션의 합이 안맞아. 시작부터 붕 떠 있어.'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는 위화감을 극복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영화가 다 끝나고 보니 초반부 30분간의 우왕좌왕 정신 없는 액션신이 말 그대로 정신 없게 연출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정신 없는 게 맞다.

이정재는 멋진 액션 영화를, 둔중한 첩보 영화를 꿈꾼 게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장 첩보 액션스러운 후반 30분으로 입증한다. 그는 군부 폭력의 지배가 연장되었던 1980년대를 재구성한 이 굉장한 팩션극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일면을 아주 깔끔하게 잘라내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감독으로 데뷔한 게 아니라 작가로 데뷔한 것이다. 영화로 역사를 서술하는 작가.

'헌트'는 나홍진의 '추격자'에 필적할 만한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이정재는 정우성과 더불어 준수한 외모 뒤에 감줘둔 일그러짐을 연기한다. 폭력의 하수인들의 얼굴. 그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걸작 '용서 받지 못한자'에서 보여준 얼굴과 비슷하다. 앞서 나는 그가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영화를 기다린다고 썼다. 감독 겸 배우 이정재가 그 기대에 화답해 주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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