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추억하기
베트남에 오기 전에는 영화를 참 많이 봤습니다.
딱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재밌어서 많이 봤더랬죠.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뭔가를 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일요일 밤 9시쯤에 극장으로 향하고는 했어요. 마냥 티비 앞에 널부러져 있기는 싫고, 다가오는 월요일의 공포를 이겨내려면 잠들기 직전까지 월요일을 잊게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단 말이죠. 그러기에는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이 딱 좋았습니다.
영화를 이렇게 자주 보게 된 것도 아부지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서라운드 시스템에 집착하시면서 극장을 자주 데리고 다니셨고, 화질에 집착하시면서 거실에도 웬만한 시스템을 구축하셨거든요.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한창 집에서 영화들을 많이 봤습니다. 집에서 봤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참 많은데, 유독 저희 아부지는 미국의 epic historical 영화를 좋아하셨어요. 거 참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지평선이 펼쳐지는 대평원이나 초원 같은 풍경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영화에서 그런 풍경이 나오면 크햐- 라는 특유의 추임새를 꼭 넣으셨더랬습니다. 그리고 매번 하시는 말씀이 한번 가봐야 되는데.. 한번 가봐야 하는데.. 그러셨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 저도 멋도 모르고 아 가봐야겠네.. 이런 생각을 품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봤던 영화 중 하나만 꼽아봐! 라고 물어본다면 가을의 전설을 꼽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몬태나 주의 풍광도 멋지고, 제임스 호너의 음악도 기가 막히거든요. 게다가 리즈 시절의 브래드 피트는 남자인 제가 봐도 설렐 정도로 멋있었어요. 당시에는 참 양심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생기면 여자들 마음은 어쩔 거며, 눈 높아진 여자들을 만나야 하는 남자들은 또 어쩌란 건지..하는 심정이었죠. 극 중 이름인 트리스탄도 뭔가 겁나 멋있었어요.
그런데 꽤 오래된 영화다 보니까 가끔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도 만나기 시작하네요. 제 와잎느님이 그렇습니다. Main theme 을 틀어놓자니 이 음악 뭐야? 이러면서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가을의 전설 영화 음악이잖아- 했더니 모르더라고요. 하긴 영화 개봉했을 당시에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테니 모를 수 밖에요. 새삼 나이 차이를 실감하며 충성을 다짐하고, 살짝 줄거리를 설명해줬죠.
저는 삼형제 중에 맏이에요.
동생이 둘 있죠.
그래서 우리 가족에 비유를 하며 설명을 해줬어요.
첫째로 나오는 저 사람은 사회적 야망이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조직에 속하면 빛을 발하는 케이스지.
우리 둘 째 동생을 떠올리면 돼.
가끔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유연성이 부족하지만,
네트웍을 잘 만들고 그걸 잘 이용해.
막내로 나오는 저 사람은 우리 집 막내랑 똑같아!
겉보기와 다르게 고집이 엄청 세요.
지가 옳다면 그냥 옳은 거야.
닥치고 그거야.
딴 거 없어.
그럼 오빠가 브래드 피트라는 거야?
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또 굴욕을 안겨주면서 가을의 전설은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어갑니다. 원래 명작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존재 가치가 더해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외모만 빼고 삼형제 중에서 제가 제일 트리스탄하고 닮았습니다. 역마살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방랑기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고 할까요. 대학 다닐 때는 그냥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겨울만 되면 스키장에서 살면서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직장에 들어가서는 금요일 아침에 짐까지 싸서 출근하고 퇴근과 동시에 주말 내내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다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곤 했거든요. 게다가 외노자 생활까지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참 불효만 합니다.
베트남에 올 때도 거의 통보나 마찬가지로 가족에게 알렸죠. 동생들은 뭐 또 나가는 구만ㅋㅋ 이랬고, 엄마는 이놈은 또 나가려 한다고 뭐라 그러셨어요. 아부지는 그래. 한마디만 하셨는데, 참 아부지의 그래 이 한마디가 무겁게 다가왔었네요. 마음 한 편이 굉장히 무거우면서도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동생들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둘이서 든든하게 집에 있으니 크게 걱정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가며 아 가족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깨닫고 있습니다.
암튼 영화 음악 얘기하려다가 참 이상한 대로 점점 빠져나가는데, 어떻게 글을 맺어야 할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프로페셔널한 분들은 의식이 흐르는 대로 써 내려가실 텐데, 글쓰기라면 코흘리개 어린이 수준의 저 같은 글린이는 굉장히 혼란스럽네요. 마치 어렸을 때 처음 접한 멋진 아저씨들의 카리스마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한때는 머리가 긴 형님들에 대한 동경 비스무레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마이클 잭슨이 있었구요, 좀 더 나이가 들어 초등학교 고학년 일 때는 커트 코베인이 있었습니다. 커트 코베인은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잘 생기기도 잘 생겼지만 어쩜 그렇게 영화처럼 살다가 갈 수 있는지요.. 그리고 멋진 형님들 리스트에 브래드 피트도 당연히 있습니다. 여자사람 친구들은 짧은 머리 브래드 피트를 훠얼씬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브래드 피트의 긴 머리 시절이 그렇게 멋있었는데..
그렇게 긴 머리의 형님들을 동경하면서 본판은 망각한 채 나도 한번 머리를 길러볼까..라는 생각까지 품게 됩니다. 물론 고등학생 때까지는 머리를 3센티 이상 기르지 못했으니, 수능이 끝나자마자 기르기 시작했지요.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니 어쩌겠어요. 근데 길러보니 참 편한 점도 많았습니다. 주변의 시선만 빼면 뭐.. : )
음.. 이런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암튼 여기까지 얘기가 흘러와버렸어요. 요는 제임스 호너의 음악이 너무 좋다는 겁니다. 요즘 자기 전에 자주 듣고 있어요. 후반부에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가족들이랑 거실에서 영화 보던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끄적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네요.
아니 진짜 가을의 전설 보고 머릴 기른건가요?ㅎㅎㅎㅎㅎ
노노. 여기저기서 영향 받은 거죠 모.ㅎㅎ
마지막 사진 ㅎㄷㄷ
가을의 전설이 95년작이니.. 마슐랭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부인님께는 충성을 다하심이 옳으신 듯 합니다.
ㅋㅋㅋㅋㅋ 네. 잘 해야죠.^^
지금도 길진 않아요.ㅎㅎㅎ
으아아- 좋네요. :-) 저는 곧바로 "브로크백 마운틴"이 떠올랐습니다ㅎㅎㅎ 그러고보니 자식은 성별을 불문하고 아버지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감성이 있으시다면 자식도 그 감성을 닮아간달까요. 제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찍힌 명화들을 볼 수 있는 나이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성인이 되고 나니 그 영화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어 참 좋더라고요. 요즘도 '딸 이 영화는 꼭 봐야 돼!'하고 파일을 슬쩍 건네주시기도 하고요 ㅎㅎㅎㅎ 아, 아빠 이야기하니 아빠 보고 싶네요 ㅎㅎㅎㅎ 마셸린 님 글 보고 아버지 추억하기-가 되어버렸어요 ㅎㅎㅎㅎ
아버지랑 사이 좋으신가보네요.ㅎㅎㅎ
저도 딸래미 아빠되면 그렇게 사이 좋은 아빠 되고 싶어요. : )
브로큰백 마운틴은 제가 안 본 영화인데 함 봐야겠습니다. 구글링 잠깐 해보니까 풍경도 멋지고 히스 레저가 나오네요 !
우와, 뭔가 롹커의 삘이 납니다!
음..많이 들었던 말이에요.ㅎㅎㅎㅎ
역시! ㅎㅎ
어릴 때 티비에서 해주던 가을의 전설을 보고
정말 빠져들어 집중해 봤던 기억이 나요-
그 때 10살도 안된 시기였던 것 같은데...
뭘 알고 봤을까 급 궁금해지네요 ㅎㅎ
(그 때도 브래드피트는 넘 멋있었다는+_+)
서사적인 영화들은 한번 보기 시작하면 훅 빠져드는 거 같아요. 아마 @xinnong 님도 그래서 집중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
!!! 힘찬 하루 보내요!
https://steemit.com/kr/@mmcartoon-kr/5r5d5c
어마어마합니다!! 상금이 2억원!!!!!!
그림 잘 그렸으면..ㅠ
안타깝네요.ㅎㅎㅎ
글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막 이리저리 흐르는데, 저 이런 글 좋아요 ㅎ
재밌었어요 ㅎ
그런데 브래드피트 진짜 잘생겼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ㅡ^
잘생겨서 부러워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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