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방 이야기 #1
매년 이맘때면 오매불망 기다리는 소식이 있었다.
스키장 개장 소식.
보더 입장에서는 보드장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아무래도 스키장이 더 입에 붙는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스키장이나 스키어, 보더들은 바빠진다. 스키장 입장에서는 국내 최초 개장이라는 타이틀을 따고 싶어서 치열하게 각자의 스케줄링에 사활을 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계속 유지될지를 가늠해 제설 시작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1월 셋 째 주쯤 되면 각 리조트의 웹캠을 지켜보며 최초 개장이 어디가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보더들은 엄청 바쁘다.
한 시즌에 한두 번 정도 스키장에 다녀오는 보더들을 관광 보더
라 부르는 매니아들이 있다. 이 보드에 미친 사람들은 시즌 준비에 몇 개월을 쏟아붓는다. 일단 여름부터 하나둘씩 공개되는 신상 장비에 가슴이 벌렁거리며, 시즌권도 풀리자마자 가장 저렴할 때 구매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투 베이스를 뛰기도 해, 시즌권을 두 개나 사는 보더도 있다.
버스 시즌 패스도 있어서, 패스를 사두면 해당 시즌 동안은 무료로 셔틀을 이용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운전을 좋아해서 자차로 왕복을 했지만, 셔틀을 이용하면 라이딩하고 피곤할 때 달달하게 자면서 갈 수 있으니 엄청 많은 보더들이 애용한다.
시즌권과 셔틀 준비를 마치면, 시즌방 준비에 들어간다.
시즌방은 스키장 주변의 아파트나, 집을 한 시즌 동안 렌트하는 개념이다. 방 하나 거실 겸 큰 방 하나의 아파트가 시즌에 600만 원 정도 렌트비를 받고는 했었다. 이 시즌방을 구하기 위해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렌트비를 갹출해 한 시즌 동안 사용한다.
이 시즌방의 효용은 실로 어마 무시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보드에 미친 사람들은 장비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 본인들에게는 전부 필요한 장비지만, 주변인이 보기에는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 여튼 그렇게 많은 장비를 보관하기에 시즌방은 필수 요소다.
그리고 시즌방은 기동성을 높여 준다. 슬로프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라이딩 시점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데, 대학생 스키 캠프 시즌이나, 해외여행객 러시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면 슬로프가 인산인해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이럴 때면 시즌방에서 슬로프를 유심히 살펴보다 사람이 빠지는 때 게릴라 식으로 라이딩을 즐기고 오는 등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주로 사람이 빠지는 때는 점심시간과 주간 close 직전 한 시간 반이다.
게다가 일 년에 한 번은 꼭 찾아오는 미친 추위에서 자유롭다.
관광 보더들 강추위에 입 돌아가며 라이딩할 때 시즌방이 있는 보더들은 보일러 올려놓고 치맥을 즐긴다. 거 왜 추울 때 보드를 타나. 낄낄거리며 짠!
이렇듯 효용이 높은 시즌방은 그 준비가 시즌 준비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멤버가 굉장히 중요하고, 위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즌방 멤버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 아무래도 얽힌 사람들 전부는 시즌 내내 무언가 불편하다. 종종 불화가 생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자신의 라이딩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 남을 가르치려 들거나 지적질을 하는 멤버가 섞여 있을 때 십중팔구 다른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진다.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남녀 문제다. 남친이 없는 꽃보더가 껴 있으면 열이면 열 꼭 남자끼리 일이 나도 뭔가 일이 났다.
반대로 멤버끼리 사이가 돈독하면 정말 그 방은 복받은 시즌방이 된다.
내 경우 트러블이 있는 시즌방은 별로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좋았던 추억만이 대부분이다. 우리 시즌방은 너무 어린 친구들은 없었고 아무래도 직장인들이 많았다 보니, 금요일 밤 아니면 토요일 오전부터 하나 둘 시즌방으로 모였었다. 이 시즌방 생활이 1-2년 지나 4-5년 동안 계속되면, 멤버들 사이가 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나는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집에도 들르지 않고 시즌방으로 바로 쏘고는 했었다.
오늘도 가니?
네 엄마. 이미 고속도로 탔어요.
그래 조심하고. 월요일 퇴근하고 올 거니?
네. 연락 없으면 잘 지내는 거니 걱정 마세요.
그래 밥 안 해도 되니까 좋다.
가끔 이런 통화하며 거의 매주 일찍 도착하는 축에 속했는데, 고속도로가 막히던가 해서 시즌방 식구들이 늦으면 언제 오나~ 창밖도 내다보고 하며 기다리게 되더라. 그러다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하면 그게 그렇게 반갑고 신나고 그랬었다.
시즌방 멤버의 중요성은 무한 반복을 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시즌방 준비 기간에 렌트비 + @ 를 걷게 되는데, @ 는 관리비와 식비다. 종종 이 식비를 가지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격주로 시즌방에 왔다 싶으면 매주 오는 멤버들이 쓰게 되는 식비가 아까운 것이다. 거 얼마나 한다고... 여튼 그리하여 게스트를 받는 시즌방들이 많다. 타 스키장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지인 등이 놀러 오면 저렴하게 숙박을 제공하고, 해당 게스트비는 @에 산입을 한다. 가끔 마당발 멤버가 있을라 치면 @가 시즌 내내 점점 불어나 강릉으로 마실 나가 회를 먹기도 하는 이벤트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 시즌방 같은 경우는 희한하게 집안 살림을 시즌방에 옮겨다 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님께서 베이커리를 운영하시기에 금요일 밤에 남는 빵을 죄다 실어 오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남는 옷 죄다 가져와 잠옷을 제공하는 놈도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동생이 사둔 커피 훔쳐다 시즌방에 투척하고는 했다. 오늘의 아이템 시간이 소소하니 참 재밌었는데, 지금은 내 와잎느님이 된 당시 여친께서는 처음 초대받고 시즌방 문화에 어리둥절하여 집안 살림 하나씩 보태야 하나 싶었나 보다. 두 번째 방문 때 장인어른께서 사다 둔 맥주 한 박스 가져온 적도 있었다. 그날 시즌방의 환희는 예수님 탄생의 환희에 버금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쓰다 보니 길어져 나눠야겠다.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187.살아있는 화석식물 메타세쿼이어
메타세쿼이어는 은행나무와 함께 화석식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공룡시대에 인류와 함께 생존 하면...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꾸준한 활동을 북이오(@bukio)가 응원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전혀 격어보지 못했지만
글만 읽어도 정말 재밌었을것 같습니다 ^^
주말마다 캠핑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ㅎㅎ
올해도 벌써 보드타는 계절이.. 시간 빠르네요ㅎ
오늘도 디클릭!
그러게요.
동계올림픽 구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로운 시즌 직전입니다. xD
대박사건!!
결혼 이후 한번도 못 다녀 왔습니다.
다시 낙옆부터...? ㅜㅠ
낙엽이 왜요.ㅋㅋㅋ
가장 어려운 스킬 아니었나요?ㅋㅋㅋㅋ
다음날 유격 받은 기분일 듯 합니다. ^&^
우와... 맞아요..스키장 못간지 넘 오래 됐는데 이번년도엔 다녀올 수 있을지ㅠㅠ
겨울에 한번쯤은.. :))
저는 관광보더에 속하는군요 ㅋㅋㅋ
베트남에 계시면서 못다니실텐데 그립겠네요.
저도 태국오면서 5년동안 “보더장” 을 못가서 너무 그립슴니다. ㅎㅎㅎ
베트남 올 때 제일 아쉬웠던 게 이제 보드 타기가 힘들어지는구나..였어요.ㅎㅎ
Hi @machellin!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2.879 which ranks you at #11526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improved 6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11532).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276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93.
Evaluation of your UA score: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스키 시즌방 이야기 너무 좋아요-! 청춘, 열정, 따뜻하고 도란도란한 느낌이 들어요.
Machellin 덕분에 잘모르는 스키방 세계 너머를 볼 수 있었어요.
역시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중요하군요. :D 좋은 멤버를 만나시다니 인복이 있으셨군요-
그나저나 어머님께 '월요일 퇴근 후에 보는 올거니?' 라는 인사가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지시네요.ㅎㅎ 스키의 계절이 돌아오네요!
하도 싸돌아 다니니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셨어요.ㅎㅎ
시즌방 멤버들하고는 아직도 사이가 돈독해서, 가끔 산발적으로 베트남 놀러오면 접대비로 수억 뜯기고, 한국 가서 뜯긴만큼 뜯어오고 그렇니다. :D
시즌방 참 재밌습니다.ㅎㅎㅎ
시즌권까지는 들어봤는데
시즌방은 처음 듣네요 ㅎㅎ
저런 문화도 있군요...
사실 좀 충격입니다 ㅋㅋ
여러모로 장점이 많습니다.ㅎㅎㅎ
그런데 충격까지 받으셨다니.. 무엇이 그렇게 충격적이셨나 궁금하네요. xD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제가 운동이랑 안친해서 그렇습니다-ㅅ-ㅋㅋㅋㅋ
뭐... 이런 마인드지요-ㅅ-ㅋㅋㅋㅋ
안넘어지고 할 수 있으면 재밌을텐데...
제 몸뚱아리는 속도와 친하지 않더군요..;
저도 결혼전에는 관광보더와 시즌방의 중간격인 "프리퀀트 보더"였습니다^^
시즌이 시작하면 매주 토요일 새벽 스키장 버스를 타고 오전보딩을 즐기고 점심때에 돌아오는..
운이 좋아 일찍 도착하면 첫 리프트를 타는 경우도 종종 있었죠.
리프트에 올라 찬바람을 맞으며 듣는 팝송은 늘 가슴이 설렜었는데..이제는 모두 추억이^^;;
크 자주 다니셨군요. 첫 맆트 타고 올라가서 정설된 슬로프 처음으로 내려오면 정말 황홀하죠.ㅎㅎ 요새는 저작권 때문에 음악이 안나오던데, 예전에는 스키장에 잔잔히 울리던 음악들도 참 운치 있었습니다. 기억 나는 음악들 많네요.ㅎㅎㅎㅎ
헉..음악이 없는 스키장이라니..앙꼬없는 찐빵 느낌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