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편] 그렇게 다시 만나다

in #kr6 years ago

1편 엄마는 어쩌자고 작은방에 외간남자를 들였을까 에서 이어집니다.

2편 그렇게 다시 만나다

'김성진....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강연을 본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어느새 그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김성진, 절망의 삶에서 희망을 말하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기사를 읽다가 그 사람의 페이스북을 알게 됐다. 자석에 이끌리듯 친구 요청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미쳤다 나 진짜...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리고 왜??' 얼굴이 다시 화끈거렸다. 뒤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누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자꾸 돌아보았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혹시나 친구 요청을 수락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3일 동안 페이스북을 얼마나 많이 들어가 봤는지 모른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처음엔 바쁘가 보다는 이해가 슬그머니 원망으로 바뀐다. '치.. 유명해지면 단가! 지가 뭐라도 된 거 마냥 친구 요청도 씹고!!' 그런데 그날 밤 '김성진 님과 이제 친구가 되었습니다'란 알림이 떴다. 그리고 그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있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쿵쾅 하고, 두 뺨이 다시 벌게졌다. 메시지를 열어봤다가 허탈한 마음에 맥이 풀려 웃고 말았다. '김성진 님이 회원님께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전부였다. 난 뭘 기대한 걸까... 메시지에 답을 할까 말까를 계속 망설였다. 똑같이 가볍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볼까? 아니면 나 기억하시냐고 물어볼까? 아니야 그러다 혹시라도 누구시냐고 물어보면 웬 개망신이야... 메시지에 답변을 썼다 지우 고를 반복했다. 그때 마침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라고 했던 선배의 조언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 한 번 보내나 보자.'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2015년에 저희 집에서 월세를 사셨거든요. 회사 그만두시기 까지.. 마지막에 같이 맥주도 마셨었는데.... 얼마 전 티브이 강연에 나오신 것 잘 봤어요. 축하드려요. ^^

아.. 자꾸 말끝이 흐려진다. 그래도 꾸역꾸역 메시지를 써 보냈다. 이 정도면 유별나 보이지도 않아 내심 마음에도 들었다. "지이이잉~"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바로 답변이 왔다.

나영 씨 반가워요. ^^ 그럼요 완전 기억하죠! 잘 지내요? 아주머니도 건강하시죠? 어쩌다 보니 이렇게 티브이에도 출연하게 됐네요. 축하 감사해요. ^^

별거 아니지만 기억하죠 앞에 붙은 '완전'이란 단어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상하다. 왜 자꾸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만 싶은 걸까?... 시계를 확인해 보니 벌써 12시다. 이렇게 늦은 시간 메시지 보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괜히 신경 쓰인다. 그때 채팅창에 김성진 님이 메시지를 입력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잠시 기다리니 그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나영 씨 아직 거기 살아요? 저도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사무실 하나 잡았거든요~ 언제 시간 되시면 커피 한잔 하실까요? 지난번 너무 급하게 나와서 죄송하기도 했고요... ^^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새벽시간 센치해진 감정 때문인지, 덜컥 커피 약속을 잡았다. 약속을 잡고 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뭘 입고 나갈지로 시작해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까지... 엄마에게도 말해둘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알면 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기도 했고, 그냥 가볍게 커피 한번 마시는 건데 유난을 떨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금요일 늦은 오후 4시쯤 시간이 괜찮다고 했다. 만나기로 한 곳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부담도 없었다. 옷차림도 고민 끝에 집 앞에 나온 거니 편하게 입고 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 금요일이 됐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6시 반. 평소엔 10시가 다돼야 일어나는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나오니 엄마가 웬일이냐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고 한다. 해야 서쪽에서 뜨던 말던, 잠이 안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보지도 않는 티브이를 틀어 놓고, 커튼을 활짝 열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햇빛이 강했지만 그 따사로운 느낌이 괜찮아한 참을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침으로 베이글에 뜨거운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고, 오늘의 만남을 그려본다. 괜스레 약속을 생각하니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편하게 입고 나가기로 한 결심이 흔들린다.'막상 만나서 할 말이 없으면 어쩌지..' 이상하게 시간이 가질 않는다... 팩도 하고, 한 듯 안 한 듯 화장도 하고,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던 브라와 팬티의 색상을 맞추며 갑자기 두 뺨이 다시 벌게졌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그였다.

나영 씨 어떡하죠? 4시에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급한 약속이 생겨서 약속을 조금만 뒤로 미뤄도 될까요? 한 7시쯤 어떠신가요?

그 메시지에 괜스레 심통이 났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고 또 가지 않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루함을 못 참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저만치 앞에서 약속한 카페가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직 10분 전이다. 먼저 가기 뭐해서 어떡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카페 입구에서 서있는 그가 보였다. 성진 씨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얼굴이 빨개지지 않아졌는지 신경이 쓰였지만, 나도 다가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진짜 오랜만이네요 나영 씨~ 어떻게 지냈어요? 아 참, 오늘 약속 변경해서 죄송해요"

"아.. 괜찮아요 저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보다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네 감사해요. 나영 씨 근데 시간이 벌써 저녁시간이네요. 우리 커피보다 저녁 같이 어때요?"

예상치도 못한 제안 해 망설여졌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아... 네... 저녁. 그럼 저녁 먹죠. 근데 어디로..."

"아, 제가 잘 아는 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시죠? 여기서 가까워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니, 조그만 퓨전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는 이 집 주인과 잘 아는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뭐 드실래요?"

"아, 성진 씨가.. 아 성진 씨라도 불러도 괜찮을까요?"

"아 네 그럼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제가 아마 나이가 4살인가 많았을 거예요. 맞죠? ㅎㅎ"

"아 그랬던 것 같아요. 단골이라고 하셨으니 맛있는 걸로 시켜주세요."

"네, 그렇게 하시죠."

"사장님, 여기 제가 자주 먹던 스페셜 코스로 준비 좀 해주세요. 아! 그리고 맥주도 한병 주세요!"

"나영 씨 맥주 괜찮으시죠?"

평소에 맥주 한 병만 마셔도 술기운이 올라오고 얼굴이 벌게지는 통에 술은 자제하고 있는데, 이 남자 나한테 묻지도 않고 먼저 맥주를 시킨다.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출처 : unsplash.com

우려와는 달리 예전에 살던 이야기를 나누며 신나게 떠들었다. 내가 이렇게 말이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한두 잔 마신 맥주가 한 병을 넘어가고 이미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영 씨, 근데 남자 친구 있어요?"

"아, 전 없어요. 성진 씨는 있어요? 있으실 것 같은데..."

바로 대답이 나올걸 기대했는데, 그가 잠시 머뭇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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