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친구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12월 중순쯤 운동을 가던 날 아침이었다. 새벽 여섯시에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카톡을 읽었다. 스팀잇 단톡방은 평소처럼 400개 정도가 쌓여 있었는데, 드물게도 동아리 단톡방이 시끌시끌했다. CPA 1차에 붙은 후배가 자기 자랑을 하고 있었다.
-취업하지 말고 비트코인이나 하죠. 저 박아만 놨었는데 트론으로 300만원 벌었어요. 이더리움이 4만원이었다가 지금 88만원이잖아요. 관심있으면 개인적으로 공부해보세요~
그리고 그 아래로 동아리원들이 자기도 비트코인 한다고 주르르 고해성사를 늘어놨다.
-빗골 한달 기다렸는데 안터짐 ㅋㅋㅋ
-비캐가 진짜 개새끼 ㅇㅈ?
-오늘 퀀텀 63000에 물림
-나돜ㅋㅋㅋㅋ
-ㅠ
방에 있는 사람 9명 중 두 명만 비트코인에 손을 안 대고 있었다. (중간에 한 명은 맨날 비트코인 이야기만 하자 방을 나갔다)일부러 가상화폐 이야기는 단톡방에서 아예 안 하고 있었는데, 다들 수익률을 이야기하자 입이 근질근질했다.
누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지! 내 스팀잇 시작은 6월이었고 가상화폐에 투자를 시작한 건 8월이었다. 90만원을 들고 와 1200만원을 만든 내 앞에서 수익률 자랑을 하자 배알이 꼴렸다. 사람들은 모두 가상화폐를 하는 거 숨겨라, 돈 얼마 벌었는지 말하지 마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자랑인데 어쩔 수 있는가?
-나 90만원으로 1200 만듬
-???인증없으면 뭐다?
통장 내역과 포트폴리오를 까자 다들 시끌시끌했다. 내심 뿌듯함을 느꼈지만, 곧 사람들이 뭘 살지 물어보고,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어보는 통에 바로 후회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트론이 35-72가 됐다.
이 후배는 트론에 2000만원을 몰빵했다가 4500만원이 되는 걸 보고 '이날은 공부 안할란다' 하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배가 아팠지만 축하해줬고, 단톡방의 모두가 부러워했다. 또 어머니한테 트론을 사라고 권했지만 사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틀뒤는 크리스마스였다. 잠시의 조정이었지만 후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천 칠백만원이 천 팔백만원이 되자 CPA 공부고 뭐고 손에 잡힐 리가 없다. 순식간에 이천만원을 잃은 셈이니 하루 종일 딴 짓만 했다.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직장인들은 라인에 들어가서도 30분에 한번씩 시세 보러 나온다고, 일이 도저히 손에 안 잡힌다고 했다. 주변의 선배
직장인들도 모두 코인에 흠뻑 빠져 있었다. 모두들 한달~한달 반 정도 월급이라고 말은 하지만 쌩돈이 눈 앞에서 날아가면 가슴이 찢긴다.
이 친구는 존버가 이긴다고 믿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저 친구가 지금 지하실에 있는건지 히말라야 중턱에서 있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란다.
CPA 1차를 붙고 2차를 준비하던 후배가 제일 걱정이다. 지금 시즌은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여기서 1년을 날려버리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코인이 독이 됐다. 지금은 2800만원이라고 하는데 '그대로 뒀으면 8400만원인데'라는 생각에 하루 종일 공부가 잡히지 않는다. 그게 절대 네 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아야 하지만 무리일 것이다.
이 친구는 엄홍길마냥 모든 코인의 고점을 정복하고 다닌다. 시스 꼭대기 리플 꼭대기 지금은 퀀텀 12만4천원... 환희매수와 공포판매의 달인이다. 멘탈도 약한 친구인데 돈 잃고 엉엉 울고 꼴이 말이 아니다.
가장 최신... 단타로 수익내다가 김프가 빠져서 또 거하게 맞았다. 친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초년생 시기에 한참 일을 배우고 지식을 쌓아야 하는데 코인에 빠져 있으면 집중하기 힘들다. 삼촌 회사의 예전 사람들 중 한명도 아침 조회 내내 일 못한다고 뒤지게 까이고, 까이고 나면 주식시장에 들어가서 자기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점검한다고 한다. 결국 잘렸다. 내 친구들은 코인시장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또한 여기서 돈을 번다 한들, 기껏해야 1억-2억일 텐데 이 돈으로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 인생을 살려면 능력이 필요하다.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코인을 하면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공부할 수도 없으며 영화를 볼 수도 없다. 사우나에 들어가면서도 폰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아는 사람은 여자친구가 말하길 제발 돈 안벌어도 좋으니까 코인좀 그만하면 안 되냐고, 매일 만나면 코인 이야기밖에 안하니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통사정을 했다.
친구는 이제 꿈에서도 코인이 나온다. 돈이 삶을 지배한다. 잘 때에도 마음껏 푹 자본 적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삶이 계속된다. 24시간 휴식도 없고 밥 먹을 때도 폰을 몇 번씩 들여다 보는 삶이다. 혹시 이렇게 돈을 벌었다 해도 언젠가 버블이 꺼지면 그때는 무엇을 바라고 살 것인가? 공부하는 걸 잊고 책을 보는 것을 잊고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코인만으로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코인은 어쩌다 찾아온 행운일 뿐이며,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제 친구 두명이 지금 코인에 빠져서 삽니다. 저도 코인투자를 시작했지만 일때문에 사실 집중을 할수가 없어서 그냥 전 스팀잇에 글쓰고 소통하는 것에 올인중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1년뒤 열어보면 떡상을 기원하며 잊어버리기!!
눈물이 핑도네요. 코인때문에 잃어버린 시간들도 떠오르구요
제 삶을 다시 찾아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풀보팅 and 리스팀 and 팔로우하고 갑니다.
잃어버린 시간들은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 투자합시다!!
우리가족은 코인덕분에 화기애애해졌어여
모든 선택은 각자가 하는거죠 . 서로 방안에서 다른일을 하며 같은 집에 살아도 한달에 두어번 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매일 저녁 만나서 코인이야기를 합니다. 정보주고받기 ㅎㅎ
그래서 트론이 내려가고 있는 이상황이 나름 행복합니다
동감입니다. 코인 가격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일상 생활을 잘 할 수 있어야 하죠. : )
일상 못살면 이거 돈벌어도 말짱 황입니다. 돈 벌어서 어따쓸려고 일상생활 즐겁게 할라고 한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저도 모르게 빠져 읽긴 했다만 이렇게 공개되어도 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코인들 안정화되면 허탈해하는 사람들 수도없이 많을 것 같습니다 ㅠㅠ 저포함 ㅠㅠ!
뭐 익명처리했으니까요!!! 카톡어플 캡쳐기능 리얼루다가 좋네요 ㅋㅋㅋㅋㅋ 기억하세요 코인판에서는 익절만이 답입니다 익절한 사람만이 승리자입니다!!
요행으로 투기하면 저리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투자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사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심리와 시장이 깡패긴 합니다
윽 하긴 그렇군요ㅎㅎ
글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지금은 먹어야 하는 장인데 친구분들 멘탈이 너무 쉽게 흔들리시는 듯...
아무것도 모르니 떨어지면 겁먹을 수밖에 없죠 ㅎㅎㅎㅎㅎ
와 코인 단톡방인줄 ㅋㅋㅋㅋㅋㅋㅋ
요즘엔 그냥 매수해놓고 묵혀두는데 마음은 편한 것 같습니다 :)
그래서 한명은 나가버렸습니다 ㅠㅠ 흐규흐규
언제나 투자는 적당히
그리고 개인의 삶은 유지해나가야죠 :)
하지만 돈맛을 보는 순간 뇌가 훼까닥 하기 때문에..
많이 공감합니다. 저도 주변에 종종 보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돈이 아니라면 짐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날려먹게 되는 듯 하구요. 돈의 크기와 자기그릇의 크기는 함께 가야 행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
욕심 내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만큼만 투자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여기에 매달려있다면 잊어버리는 게 너무 많죠!!!코인을 잊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