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보는 보팅풀, 문제가 있나? 없나?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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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리학도다운 글을 써 보겠습니다. 최근에도 보팅풀 이야기로 스팀잇 KR 커뮤니티가 날카롭습니다. 대립하는 두 진영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죠.

찬성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돈으로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 셀프보팅 기능이 있는 것에서부터 사실상 허용이 아니냐? 왜 내 자유를 침해하느냐?' 라고 합니다. 반대측은'보팅풀을 운영하는 것은 KR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일이다. 해서는 안 된다.' 로 갈라져 다투고 있습니다. 사실 상대방의 자유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건 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대측의 논리는 좀 빈약해 보이기도 하죠. '왜 kr 커뮤니티가 파괴되는가? 근거가 있는가?'

저는 근거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아마 셀프보팅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겁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영원히요. 그러니 한번쯤 서로의 근거를 짚고 넘어가야 kr 커뮤니티 내의 다툼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채굴된 스팀은 공유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무한해 보이고, 영원히 푸르름을 유지할 것처럼 보이니까요. 목동(그래요, 저 같은 스티미언들 말이죠)들은 최대한 적은 노력으로 공유지를 차지하고 싶어하죠.

목초지를 가져갈 수 있는 원리는 세 가지입니다. 글을 잘 쓰거나, 소통을 잘 하거나, 돈이 많거나. 여기서 가장 편한 방법은 돈을 많이 투자해서 큐레이션 보상을 받는 겁니다. 글감을 생각할 필요 없이 한 번 클릭하면 되니까요. 자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자본을 투자해 큐레이션 보상을 받습니다. 그러다 몇몇 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큐레이션 보상만으로 만족할 필요가 있나? 저자 보상을 챙기면 안 될 이유는 뭐지? 고래가 모여서 서로서로에게 보팅을 해 주고, 저자 보상과 큐레이션 보상 둘 다 챙기면 안 될까?

사실 경제학적으로는,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가장 옳은 선택입니다. 공유지는 아직 푸르고 넘실거리니까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땐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초보 스티미언이 받을 수 있는 스팀의 보상이 줄어드는 것 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바로 하위 스티미언들의 마음이 짓밟힌다는 거죠.

카푸친 원숭이.jpg

[전 갑자기 왜요?]

귀여운 카푸친 원숭이는 젤리나 포도같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물론 오이나 토마토 같은 달지 않은 음식도 주면 잘 먹죠. 과학자들은 카푸친 원숭이를 가지고 화폐 교환 실험을 해 봅니다. 과학자가 돌을 원숭이에게 건네주고, 원숭이가 다시 돌을 가져오면 오이를 줍니다. 둘 다 오이를 주면 맛있게 먹습니다. 시원하잖아요, 오이.

진짜 실험은 이제 시작입니다. 방 두개에 원숭이들을 한 마리씩 넣습니다. 방 두개 모두 플라스틱으로 되어서 상대를 볼 수 있죠. 원숭이 한 마리가 돌을 과학자에게 건네 줬는데, 이번엔 포도를 받습니다. 원숭이에겐 비트코인보다 귀중한 음식이죠. 그걸 보고 옆 방의 원숭이도 잽싸게 돌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과학자는 이 원숭에게는 오이를 줍니다.

오버스로.jpg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입에다 오이를 잠시 넣었다가 과학자에게 던져버립니다. 훌륭한 오버스로에요.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동일 노동에 동일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원숭이조차도 분노를 느낀다는 겁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베를린의 한 실험팀은 10달러를 가지고 두 명이 나눠 가지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한 명은 지배자가 되고 나머지 한명은 피지배자가 됩니다. 지배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달러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5:5로 나눌 수도 있고, 9:1로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나누는 지는 지배자의 마음대로입니다.

단, 두 사람 모두가 나누는 방법에 동의해야만 돈을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다. 한 명이 거부하면 둘 모두 빈털터리로 나와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불공평한 조건, 즉 8달러 대 2달러와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받아들이지 않고 빈털터리로 나오는 쪽을 택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거래 앞에 섰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관장하는 뇌섬이 활성화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2달러라도 챙기는 게 이득이지만, 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노하고 거래를 결렬시킨 다음 떠나 버리죠. 대체 왜 돈을 받지 않는 걸까요?

사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거래를 결렬시키는 게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이는 유전자 깊이 새겨진 본능입니다. 고대의 원시 부족으로 설명해 볼까요? 만약 원시 부족이 맘모스를 사냥해 놓고, 나에게 두 조각만을 건낸다면 나는 고기를 팽개치고 사냥에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노라 선언해야 합니다. 그건 사냥에 큰 지장을 줄 거고, 족장은 그걸 예방하기 위해 나에게 처음부터 고기 다섯 조각을 건낼 겁니다. 이처럼 불공평한 상황에 처하면 뇌섬이 자동적으로 깨어나게 되죠.

제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불공평한 거래를 본 순간 뇌는 뇌섬을 활성화시킵니다.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진 하나를 올려놓은 보팅풀의 보상을 따라갈 수 없다면 우리의 뇌섬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우리의 뇌는 그러한 상황에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는 저자들이 좋은 글을 쓰는 것을 방해하겠죠. 글을 쓰기보다 보팅풀에 살랑거리는 걸 택할 사람도 있을 거구요.

사실 보팅 풀 자체는 경제학적 논리로 봤을 때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완벽할 정도죠.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스티미언들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낄 겁니다. 그리고 좋은 글은 줄어들고 공유지의 풀들은 말라 버리겠죠.이걸 막을 방법은 - 보팅풀의 파워를 어느 정도, 좋은 글에도 나눠주는 게 좋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좋은 글이 다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평판.png
( @arcange 님의 통계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명성 상위권일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는 노력해도 보상을 못 받는다는 허탈감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명성을 쌓기 위해 그간 노력한 것을 아래쪽 분들도 알아줘야 할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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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고 갑니다~
최소한의 정성은 있어야 할거 같은데...
가끔 보면 박탈감도 느껴지고 그러네요(그래서 자주 안 들어오게 되는ㅋㅋ)
뭐 너도 투자해서 고래되어라~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요....(슬프네요ㅋㅋㅋ)

그래서 열심히 댓글도 달고 글도 쓰고 해 봅니다 ㅎㅎㅎ 진짜 고래가 될 그 날까지... 키키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ㅠㅠㅠㅠ

르캉님 이글을 이제서야 봤습니다 ㅎㅎ 시간대가 달라서 놓치는게 많군요. 그냥 막연히 경험적으로 생각하는것을 실제 실험을 예로 들어 풀어주시니.너무 재밌네요. 전 학부 내내 컴공을 하지 않았다면 꼭 심리학을 전공하고싶다고 생각 했을 만큼 인간심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잘읽었습니다 뒤늦게나마 리스팀 합니닷!!

최후통첩 게임이군요! 저도 최후통첩 게임을 소재로 글을 쓴 적 있었습니다 ㅎㅎ

최후통첩과 뇌섬을 연결해서 쓴 글을 예전에 yoon님도 쓰신 적이 있더라구요. 혹시나 해서 최후통첩 게임을 검색해보자 꽤 많은 분들이 글을 쓰셨던...

역시 맛깔나게 읽히는게 르캉님의 매력입니다.
이것 또한 말로 소리내면서 쓰신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ㅎㅎ
@lekang님의 자동기술법은 보면서도 놀랍니다.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잘 안써지네용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

ㅎㅎ 이런 글감을 가지고 글 쓰시는 게 어려울 수 있었는데 잘 써주셨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쓰느라 4시간동안 끙끙 앓았습니다 ㅎ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욱사마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 리스팀을 해 주시다니 이런 영광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국 여행기 보러 종종 놀러갈게요 :)

누가봐도 인정하는 글,사진에에는 보팅수가 많던대요?ㅎ
일주일된 뉴비가^^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살아남아 대성한 5% 이외의 사람도 스팀잇의 구성원이 된다면 커뮤니티는 좀 더 넓어지겠죠. 모두의 상생과 관련해 생각해 봤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단 돈을투자해서 스팀파워를 가지는것이야 말로 아주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전 글을 쓰는 입장이지만 역시 리스크를 감당하고 스팀을 사신분들한테 이러고저러고는 그리 설득력이없어보입니다. 세상엔 여러 생각과 가치관이 공유 할 뿐입니다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없습니다 . 열심히 글을 쓰는사람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사람 자기돈투자해서 이익얻는사람.. 룰을 지키는 이상 자연스러운것 이지요..ㅎ 미래에 적당한룰이 상황에 맞게 변경이 되겠죠.. 이런논쟁도 커뮤니티가 살아있고 발전한다는 증거인것같습니다.

그렇죠. 사실 저도 스팀파워를 사신 분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다만 파워를 보팅풀 안에서만 순환시킨다면 그건 불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고 봐서요.

지당하신말씀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어쩔수 없다는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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