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떠나는 배 - 박경리.....죽도 밥도 아니구나
지난해 회사에서 지급하는 복지포인트로
대하소설 (토지(土地)를 만화로 구현해 놓은
e-book, crema를 구입하고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하소설 '토지'는 e-book을 포함해 3가지 셋트를 갖고 있습니다.
강산이 몇 차례 바뀌기 전 '토지'가 단행본으로 발간 되자마자
용산 남영동 부근 서점 근처에서 만남을 잇던 독서클럽 멤버들이
경쟁하듯 책을 구해 나눴던 흔적으로
겉표지가 많이 낡은 옛 버전이 있고,
이후 새롭게 발간한 핸드북용의 소장 셋트까지......,
지금껏 욕심을 내면서 책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토지'
26여 년 동안 참으로 긴세월을 한 묶음에 담아내면서,
우리나라의 근대 및 현대 사회를 잇고,
양반, 상인, 중인, 노비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인간상을 통해
지역의 특색과 문화, 생활, 언어 등을 총 망라해 정리한 '토지'
그 '토지'를 쓰신 박경리 선생님이 남긴 유일한 시집이 있습니다.

이 또한 귀하게 소장하는 시집으로,
제가 갖은 것은 표지가 너무 낡았습니다.
그러나 담긴 시들은 어느 때 다시 읽어도 낡음의
흔적은 볼 수 없고, 살아가면서 점 점 크게 공감을 하게 된답니다.
특히 소개하는 '못 떠나는 배' 유난히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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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한다 떠나야
그러나
풀을 뽑다가
닭 모이 생각을 하며
치악산(雉岳山)을 보고 있는 나
죽도 밥도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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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떠나는 배
박경리
내가 떠나는 것은
사무실 칸막이 들락거리며
내노라는 사내들
줄 서는 나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는 것은
뉴 모오드
백치 같은 계집들이
쓰라린 얘기들
호크로 고기 찌르듯
조롱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는 것은
지성(知性)의 마패 차고
사물(事物)을 이용(利用)하며 동분서주
양화(良貨)를 쫓아내는
무리들 때문이다
그것들이
자연(自然)스럽게 이루어지는 세상
거짓말이 만발하고
음모가 만발하고
밟고 떡치고
향연이며 기성(奇聲)이다
쾌락(快樂)이며 검은 웃음이다
확실히 사람은
하나를 더 가진 동물(動物)
쾌락을 위한 살해(殺害)
정신(精神)의 살해(煞害) 말이다
떠나야 한다 떠나야
그러나
풀을 뽑다가
닭 모이 생각을 하며
치악산(雉岳山)을 보고 있는 나
죽도 밥도 아니구나
『못 떠나는 배』, 지식산업사, 1988년.
오....박경리선생님이 이런 시를 쓰셨군요. 가슴을 채찍으로 쌔리치는 힘이 있습니다.ㅠㅠ 그저 소소한 보팅으로 감사를~
발견해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생각 하는 것은 그 오랜 시간 대하 소설 쓰시면서 혹시 고뇌한 흔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저도 마지막 구절이 와닿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학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시집을 읽어본 이후로는 시집을 읽은 적이 없는데, 쉴 때 한번씩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경리님의 시집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되었네요. 좋은 시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겹거나 너무 분주해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문득 찾는 시집 입니다.
시집 안의 다른 시들도 아마 다 쏘옥 와닿을 것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작은 소통의 기회가 되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