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리뷰

in #kr7 years ago (edited)

블랙 팬서 | 2017 | 감독 라이언 쿠글러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영화다. 주인공 블랙 팬서를 포함해서 등장인물의 상당수가 흑인이라는 점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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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전복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주인공과 메인 빌런은 흑인 남성이다. 와칸다 최고의 과학자(슈리)는 힙합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다. 평민 출신의 젊은 여전사(나키아)가 첩보 활동을 하고, 왕국 최고의 호위병 또한 민머리의 여성들이다. 호위병의 우두머리(오코예)는 가발을 집어던지며 '총 따위의 허접한 무기를 쓰는' 미국인을 경멸한다.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 특유의 투박한 영어 발음을 구사한다. 켄트리 라마가 프로듀싱한 OST는 흑인음악의 매력을 발산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그 자체로 특기할 만하지만,영화가 다루는 갈등은 보다 깊고 복잡하다.

에릭 킬몽거는 멋진 몸과 스타일리쉬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매력적인 악당이다. 그의 체격과 무술 실력은 트찰라를 압도한다. 그가 고르는 수트는 검은색과 금색 장식이 강조되는데, 보라색을 띄는 트찰라의 수트에 비해 전형적인 흑인의 색상에 가깝다. LA폭동 당시 흑인의 편에서 싸웠던 아버지를 여읜 에릭은 흑인의 울분을 응축하고 있다. 그에게서 떠오르는 인물은 말콤 엑스, 액스맨 시리즈의 '에릭(매그니토)', 그리고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이다. 그가 미국에 버려져 왕위 계승에 배제되었다는 점을 빼면, '흑인의 적통'에 가까운 사람은 오히려 에릭이다.

그리하여 에릭과 트찰라의 대립은 '사이다를 선사하는 매력적인 악당 vs 평화를 추구하는 선한 주인공'의 구도를 넘어선다. 이들의 대립은 '누가 진짜 흑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과 수백년 전 노예선에 실려가 아메리카 대륙에 남아있는 흑인 간에는 정치적, 문화적 괴리가 상당하다. 과연 미국 내 흑인들의 진정한 고향은 아프리카에 있을까? (실제 아프리카 대륙의 관객과 미국 내 흑인 관객 모두 영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했으므로 이 갈등의 선을 불편하지 않게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와칸다를 점령한 에릭은 더 이상 이 나라에 해가 지지 않을 것(The sun will never set on the Wakandan empire.)이라고 천명한다. 노골적인 제국주의의 언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어렸을 때부터 품어왔던 와칸다의 아름다운 모습은 석양이 지는장면이었다. 애초에 그의 혁명은 실패로 귀결될 것을 암시한다. 그가 죽어가면서 바라보던 아름다운 석양은 '더 이상 제국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감독이 트찰라와 나키아의 입을 빌려 제시하는 길은 개방과 대외 원조다.

과연 이러한 해법이 (누가 진정한 흑인인지의 문제를 일단 제쳐두고) 흑인이 처한 환경을 개선할지는 확실지 않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행해지는 원조가 수혜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퇴행을 야기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원조 혹은 오늘날 대외 협력이라는 말로 대체된 개입 행위는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다.

영화의 나이브한 설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눈부신 과학 기술을 이룩한 국가의 정치 제도는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족국가와 왕국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와칸다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무술 전투다! 여기에는 어떤 통치 이념도, 사상도 없다. 그렇기에 트찰라는 갈등할 수 밖에 없었고, 킬몽거가 그 틈을 파고들어 왕위를 쟁탈할 수 있었다. 평민 출신인 나키아가 왕족과 어울린다는 사실이 트찰라 가문의 탈권위적 성격을 드러내지만, 영화 어디에서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히어로 영화의 독법으로 영화를 봤을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하트 모양 열매'의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몸에서 잠깐 빛이 났던 것을 제외하면 히어로 영화에서 요구하는 시각적 연출은 충분치 않았다. 예컨대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 센스와 거미줄, 토르의 번쩍이는 번개빛이 블랙팬서에게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기부상열차를 활용한 마지막 전투가 심심하게 느껴졌다. 만화적 상상력은 '비브라늄' 금속을 다루는 데 전부 소진된 것만 같았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마블은 스파이더맨, 토르에 이어서 같은 전략을 사용한 듯하다. 의도적으로 '진짜' 위기를 넣지 않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에서는 아이언맨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토르에서는 헐크라는 초강력 보조자가 있었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어도 관객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블랙 팬서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심각한 위기와 진정한 결핍은 없었다. 에버렛 로스의 척추 총상이 말끔히 치료되는 설정 상에서 와칸다가 고칠 수 없는 부상이란 건 없다. 트찰라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만,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첫 번째 왕위 계승 씬에서의 고릴라 부족장은 (영화 예고편과 포스터 어디에도 안 나오므로) 중요한 위협이 아님을 첫눈에 알 수 있다. 안타까운 홍위병의 죽음 역시 오코예가 아닌 무명의 배우였다. 이렇듯 영화는 부드럽게 흘러갔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없었다.

이처럼 블랙 팬서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흑인 감독, 흑인 배우, 흑인 음악을 내세운 독보적인 시도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요소를 넘어서 흑인간의 갈등, 쇄국과 개방 등 고민할 만한 지점도 포함했다. 미군(합동특수작전사령부)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금기를 비튼 대담한 시도였다고 본다. 개인 평점 2.5/5. 낮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높게 평가하고 싶은 사람은 마이클 B. 조던과 켄드릭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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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총맞고 멀쩡하게 치료되는 걸 보고나니, 중반에 주인공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에도 별로 긴장이 안되더라구요.
마이클b조던 없었으면 안그래도 뭔가 흐릿한 영화가 정말 밍밍했을 것 같아요. 포스터도 킬몽거 포스터로 해놓으셨네요ㅋㅋ

개인적으로 마이클조던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보다보니 잘생겼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ㅋㅋ 저도 막상 클라이막스에서 긴장감이 사라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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