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주말 그리고 비오는 저녁

in #kr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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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에 위치한 한 재즈 클럽에 연주를 하던 날은 하필 한창 더운 29도까지 올라간 날이었다. 정체가 심할 저녁 시간이라 대중교통을 택했고, 혜화역에 내렸다. 역에선 여름 냄새가 한창 풍기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풍기는 익숙한 추억의 냄새에 왠지, 스물 중반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도 여길 혼자 왔었는데. 마지막으로 왔던 때는 재작년인가,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고...멈추지 않은 여성혐오 살인을 멈추라는 내용의 시위였던 기억이 난다. 도로에 줄맞춰 나란히 앉아 모두 합창하고, 죽이지 말라 때리지 말라를 외치던 모습이 생생했다. 그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연주는 즐거웠다. 물론 컨디션이 올해들어 최악이었지만 (하필 이럴때 딱 맞춰 들어온 섭외가 참 아이러니) 그래도 하루 전부터 마음과 호흡을 가다듬었더니 다행히도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었다. 이번 연주는 재즈클럽 오프닝에 러브콜을 받아 준비한 무대였다. 도착해서 대화를 나눠보니 엔지니어, 주방 분들, 대표님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셨고, 연주 중간중간에도 세심히 연주자들을 배려해주신 덕분에 내내 즐겁게 두세트를 노래할 수 있었다. 관객분들이 큰 카메라를 가져오셔서 앞에서 동영상, 사진도 고퀄로 찍어서 보내주셨..(늘 연주하느라 바빠 기록을 못하는데 너무나 감사하다.) 무엇보다 초대받을 수 있음에 감사한 자리였다.

 집에 박혀 며칠 기어다닐 정도로 힘들었던 이번 달 찾아온 월경의 고통에 대해 얘기하자면, 정말이지 너무나 두렵고 싫어서 몸서리를 부들부들 쳤었다. 15년 넘에 해온거니 의연하자고 몇 번이고 되뇌어도, 척추를 중심으로 온 몸에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사라지고, 극한 두통에 아무것도 할수 없는 고통. 아랫배가 수축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고통은 도무지 의연하게 견딜 수가 없는 류의 아픔이다. 물론, 여러 일들로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은 한달이었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번달은 오지게 아플거라는걸. 그리고 예상이 맞았다.

 다행히 일이 없는 주말동안 몸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비가 내리면 29도까지 올라갔던 무더위가 조금은 사그러들까. 너무나 갈망하는 것들에 대해 내려놓자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토록 원하는 것은 꼭 내게 오지 않았을까 억울하기도 한 복잡한 심정이다. 카드 지갑 잃어버려 온갖 출입키 다시 발급 받고, 민증 재발급 받고, 카드사에 전화하는 번거로운 일들을 거쳐야 했던 지난 주. 나를 포함해 불안정하고 부딫히는 일들을 겪은 주변들에게 참 수고스러웠던 지난 주. 사실 하루 하루가 모두에게 참 애쓰는 시간들임은 틀림 없다. 그렇기에, 어깨의 짐을 토닥거려주고 싶다. 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만큼,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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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반응에 힘을 얻으셨길 바랍니다. 엉킬 때는 한없이 엉키다가 또 스르륵 풀리지요. ㅎㅎ

올해는 유독 힘을 빼야함을 모르지 않는데 계속해서 사람이, 환경이 말해주네요. ㅎㅎ 천천히 하라고요. 덕담 감사합니다 도잠님. 편안한 주말 되셨기를 바라요!

눅눅해 힘들다가도, 내려간 기온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있거나 그런 곳을 알고 잘 기대는 것도 필요하고, 잠시 찾지 못할 때 홀로 버틸 수 있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전에는 홀로 오롯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자립이 기댈 곳을 고를 수 있는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지..' 하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앗, 가끔 오셔서 이리 좋은 말씀 전해주고 가시다니. ㅎㅎ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다가도 나조차도 이렇게 힘든데 누굴 지탱하려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 입맛떨어지듯이 갈망도 뚝 떨어져요. 그러다 외로워하고 반복이죠. 손에 쥐고 있는 거에 감사하자 싶다가도 다시 막막해지는.. 날씨탓이려나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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