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를 기록하다, 홍승은의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in #kr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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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글쓰기와 페미니즘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홍승은 작가의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문제가 결코 사소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몇 지식인만의 전유물이었던 글을 일상 속에서 의미를 길러내는 모든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그녀의 책엔 불확실하지만 더 조심스럽게, 그렇게 나만의 글쓰기를 찾아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1부에선 쓰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다룬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홍승은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조우하며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가 글로 탄생하기까지 아끼지 않는 격려와 조언을 건네왔다. 사소하지 않은, 간결하지만 힘 있는 문장을 쏙쏙 골라낼 줄 아는 그녀 또한 타고난 작가로 별세계에 산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며, 글쓰기의 재능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나에게 이 책을 쓰는 마음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와 같은 말이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차곡차곡 쌓아 온 바람을 담아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집필하게 되었다.



 나 또한, 집필 공동체가 간절히 필요했던 시간을 거쳤고 지금도 물론 찾는 중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소중 규모의 책, 글쓰기 모임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가장 눈여겨봤던 플랫폼은 트래바리였다. 최근엔 프로젝트 퍼스널 때문에 작업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선뜻 읽고 나누고 싶은 주제의 책이 보이질 않아 매번 둘러보고 아쉬운 심정으로 나오곤 했는데, 언젠간 참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중. 페페연구소와 같이 독립서점 또는 출판사들의 SNS을 팔로잉 하다 보면 특정한 주제의 책을 두고 열리는 독서모임이나 쓰기 모임을 찾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 오프라인이라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리곤 했으니까.

'읽다'는 '경험하다'와 같은 말이었다



 이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긴 호흡을 따라 한 줄 문장을 곱씹는 일. 나 또한 이러한 읽기의 기쁨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데 의미를 가지는 편이기에, 기본적인 글쓰기 원칙에 벗어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스스로 다듬고 드러내며 모두와공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타인과 연결될 때 문장은 단단해진다고 했다. 책 모임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나 자신에 대한, 나의 경험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동안 나 자신도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고, 실제로 지속적으로 읽고 쓰는 습관이 형성되기도 했다.


 몇 년 전, 아는 지인이 자신의 일을 쓰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최소 전문 정보글이나 비판, 시사 등에 대하여 쓴 글 만이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라며 주변의 에세이, 수필 등을 쓰는 이 특정 다수를 굉장히 등등한 기세로 비난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런 그의 글을 사실 주변 누구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모두 그냥 웃고 지나갔지만,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아닌가. 자기 경험을 해석해서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은 공연하다. 게다가 누군가를 또는 특정 대상을 비난할 때는 그 비난이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글이 공개적으로 공유할만한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자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경쟁심에, 또는 자격을 확인받으려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작가라는 기준에 갇혀 글쓰기가 내 삶을 질식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자잘하고 사소한 파편 같은 나의 기록 모음집을 떠올렸다.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서 당시의 고찰을 따로 메모장에 적기도 하고, 밥을 먹다 떠오른 질문이나 생각은 수저를 내려놓고 적어두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적지 않은 메모광이 된 지 2년 남짓 한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꽤나 흥미로운 기록들이 쌓였다. 물론 1차로 품을 들여 사유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를 수정하고 다시 소리 내 읽는 품을 들이는 일을 통해 글은 비로소 빛나게 된다. 쓰고 있는 책 원고 목차에 들어갈 만한 글인지 아닌지를 심사숙고하는 과정에도 수백 번을 고치고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이는 모두 작은 알갱이 같은 기록 모음집에서 싣고 싶은 글의 탄생까지 여러 번을 거친 결과다.


 목에 걸린 상처, 두고 곱씹는 일화 등 적고 싶지 않은 일 또한 시간을 들이더라도 메모장에 발자국을 남기려 노력한다. 쓰고 나서야 선명해지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쓰기 전에는 성질을 확실히 알 수 없는 데다 사유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한다. 이를 각성하는 데 있어서 나의 위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로부터 남는 100전 100승 글쓰기를 나는 무한 신뢰하게 되었다.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은, 전에는 구체적으로 쓰는 법을 몰랐다. 홍승은 작가의 말처럼, 나를 돌보는 수단인 글쓰기는 한 번의 번개처럼 나를 일깨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쓰는 것이 시작인 구체적인 글쓰기는 아직도 나를 각성시키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고, 실천해야 할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구체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쓰면서부터 내가 나를 부정하는 인식을 하고 있진 않은지, 나만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진 않은지 직면하고 점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는 글, 그러나 감정에 치우쳐 형태가 애매한 찰흙 같은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내가 주로 쓰는 동사, 습관처럼 붙이는 부사, 형용사 또는 표현들을 점검했다. 나 자신의 변화를 도모하며 타인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글이 되길 바라면서 나를 하나하나 뜯어고치고 덧대는 시간을 오랫동안 거쳤다.

다른 언어나 악기, 드로잉을 배울 때처럼 쓰기에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용기,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좀 더 솔직해지려는 노력, 머리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손으로 옮겨 적어보는 실천. 이 세 가지는 꾸준한 쓰기를 통해서 단련할 수 있다.


글쓰기로 나를 마주하기



 글쓰기 하면 계속 답하기를 미뤄왔던 한 인연의 끈질긴 연락을 떠올린다. 때로는 감정적이고 소모적이기까지 했던 그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일 정도로, 득이 되는 관계는 아니였다. 대략 일 년 정도, 그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 것은 그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로 아끼던 악보 집과 겨울옷 몇 벌을 달랑 들고 넘어와서 어렵게 자리를 잡던 그때, 세웠던 계획은 안타깝게도 세 달을 넘기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튀는 일은 늘 이리저리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내게 미안함을 지고 있다던 그는 (사실 미안해하지 않길 바랐건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지치지 않고 내게 연락을 해댔다.


 어쩌면 나의 안일함이 그가 내게 연락을 하는데 동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일관성 있게 대하려면 나의 감정부터 파악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과거와 훌훌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지난 일들에 더 이상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나 또한 감정에 치우치는 한낱 사람이기에 그와의 대면하기 전에는 인연을 글로 풀어내는 수밖엔 없었다. 어렵게 나의 일기장에 빼곡히 두 장을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답답함이 마법같이 사라졌다. 나의 미지근했던 반응은 그 당시 나의 상태가 미지근했기 때문이리라.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해야 하는 부분에선 단칼에 정리를 하는 것이 좋다. 막연히 생각만 해왔던 감정들을 글로서 정리하고 나니 깔끔히 정리가 되었고,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인연 카테고리에 고히 접어 정리했다. 때로는 글을 씀으로써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홍승은 작가는 글쓰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무엇을 쓰고 왜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은지 등, 다양한 동기부여를 책 군데군데 심어놓았다. 글을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글이 막힐 때의 그 답답함을,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쓰려고 앉았다가도 내가 얼마나 이를 두루뭉술하게 생각해왔는지 깨달을 때의 부끄러움을, 예전에 쓴 글에서 낡은 고정관념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을.


 나 또한 글을 마무리할 때를 얘기하자면, 늘 교훈적인 엔딩으로 몰아가려는 뻔한 자의식과 늘 싸운다. 그냥 이렇게 마무리해도 될까? 아니면, 탈고를 조금 미룰까?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주지 않을까 등등. 하지만 나의 서사를 드러내는 일인 만큼, 가끔은 열린 결말 또는 담담한 서술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홍승은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경험에 이름표를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나의 이야기를 길어내는 일, 글쓰기



 그 어떠한 행위보다 진한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며 나를 아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일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따듯한 조언을 건네주는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글쓰기를 시작하는 나의 학생 모두에게 애정을 담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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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스팀잇에서 글쓰기는 떼어놀수 없는 일이니, 큰 자산이 될 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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