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충전

in #kr2 years ago




  앞 공원은 근처 월드컵 경기장 그리고 강변북로로 빠지는 제2자유로 도로와 이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편이라 사색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다. 아침에서 점심으로 넘어가는 해의 냄새를 맡고 싶어지면, 종종 나가 벤치에 앉아있곤 한다. 그나마 푸른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있는 자연과 가까운 공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빽뺵한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에서 유일하게 하늘이 트인 곳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늘 가던 페린 공원만큼은 아닐지라도, 도심 한가운데서 이게 어디냐 싶다.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오후가 되면 점심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온 직장인들이 길가와 공원에 가득찬다. 삼삼오오 모여있거나 혼자 공원 벤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햇빛을 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모습과 얼굴을 한 사람들을 스쳐지나간다.

 햇볕이 따듯해서, 날씨가 맑아서 나왔지만 실상 바람이 너무 불어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나오기를 잘했다 싶다. 역시 조금 불편해도 추위에 대비했던 10분전의 나 칭찬해. 추우면 앉아 있을 수 없다.

 공원에서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은 후 이것저것 가방에 챙기다가 문득 어제 선물받은 와인이 생각났다. 하지만 와인잔을 들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텀블러에 와인을 부었다. 꼴꼴꼴. 어디에 담기든 맛있게 마시면 되었지 싶으니까. 텀블러를 홀짝거리며 마시는 와인이 기분좋은 햇살과 합해 나의 머리속을 간지럽힌다. 어느샌가부터 술을 마시면 머릿속이 간지럽다. 누군가 옆에서 가닞럼을 태우는 기분이 든다.

 올해 초부터, 정확히는 겨울부터 술을 조금씩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원래 술이 잘 받지 않는 몸이라고 생각했으나 술자리는 좋아하는 편이었다. 맥주 한캔, 소맥 한잔, 두잔, 와인 반병.. 이렇게 시작을 하다가 점점 취향이라는게 생겨나고, 어느 음식엔 어떻게 마리아주를 하면 좋고 하는 그런 나만의 기준점이 확고해지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술의 역사와 종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즐거워졌다. 물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공부를 해야한다.

 두 시간 정도 공원에 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글을 썼다. 공원은 한산하지만, 어디에선가 잠시 나온 듯한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 대부분 어깨에 코트를 걸치고 있다-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공원을 서너 바퀴 걷는다. 자신의 몸 만한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바람이 다 빠진 통통한 패딩을 입고 팔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아저씨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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