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8월의 기록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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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라고 부를 만한 나의 작은 기준은 대화하는 동안 서로가 편한가, 나와의 대화에 융화될 만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 정도가 되겠다. 딱히 어려운 기준이 아니고 나 또한 반대로 상대방의 기준에 부합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종종 대화를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 후로 꽤나 많은 조각이 모였다. 최근 친구와 몇시간동안 나눈 좋은 대화를 떠올려본다. 서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마음상태와 그것에 대한 극복 방법이였는데, 서로의 고통에 대해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더는데 큰 위안이 되었다.


 그의 질문은 현재 내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한 것이였는데, 새로 처방받은 약을 시작했다는 말에 서로의 아픔에 대하여 이야기장이 열렸다. 시원한 밤바람과 맛있는 와인이 분위기를 더했다. 가장 중심에 위치한 주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였다. 그는 공황장애가 찾아 온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밤 잠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하여 병원에 찾아가 보았다고. 계속 이야기를 듣다가 서로의 다른 증상에 대하여 알게 되었는데, 나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심장 박동수가 느려지는 반면 그는 반대로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잠을 자지 못했다고, 그래서 너무나 괴로웠다고 한다. 증상은 다양하고, 고통은 정말 다양한 방향으로 수반된다는 사실.


 그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선택했던 방법은 놀랍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복 장소로 채택된 곳은 또한 도서관. '행복'에 관한 책들을 무려 1년동안이나 팠다. 남이 쓴 행복에 관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내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어째서 오랜 기간동안 책 속으로 도망쳐 다녔는지 본인에게 질문을 가지게 될 당시 일어난 몇 상황이 후의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꾸게 한 계기였다고 했다. 공감했던 부분은 ‘행복’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그 순간만큼은 간접적으로나마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나 또한 그와 비슷하다. 늘 영화와 책 속으로 도망쳐 다닌다. 그 순간 만큼은 나의 문제를 잊을 수 있거나, 문제 또는 해결의 실마리를 얻거나 성찰의 시간을 겪곤 한다. 이러한 배움을 주는 것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중하지만 활자와 영상물에서 얻는 것은 그 성질이 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치열하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기록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늘 어려운 부분이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공황장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지옥과 천국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내 선택에 달렸다는 마음가짐이 들고 나서부터 였다고.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달라지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며 자유이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나로,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성장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물론 고통스러운 소용돌이 안에 갇혀있는 동안은 이러한 이성적인 생각들을 유지하는것이 쉽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이 세상 어디든지 감옥일 수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프랑스에 나의 작은 감옥을 만든것일까. 그의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나의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몇 시간이고 이어진 대화에서 좋은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흘러나왔지만 차마 전부 기록하지 못해서 너무나 아쉽다. 가을과 함께 좋은 인연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모인 멤버들과의 합주는 여전히 즐겁고 속전속결로 이루어진다. 단톡방에서 초콜렛 준비해. 한마디에 편의점에서 공수해온 허쉬 초콜렛 파이. 도착 하자마자 허겁지겁 당을 채우는 형들의 뒷모습이 짠했고 웃기다. 아직도 단 것을 좋아하고 농담에 목숨거는 철없는 순수한 모습들. 급속충전된 당으로 합주를 한바탕 끝내면 모두 나가 담배를 태운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선 가장 먼저 찾는 것은 핸드폰.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넌 전화 안해? 어, 난 이것(담배)만 피고 할거야. 당연한듯 일과를 보고하는 모습에 새삼 세월을 느낀다. 마치 자동적으로 일과 일이 연장되는, 자연스럽고도 편한 일상에 동화된 기분.

 다른 친구와의 대화에서 모은 조각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뜬금없이 그녀가 물었다. 지겹지 않아요? 그럴싸한 말로 미끼를 걸어 낚시하듯 당신에게 툭 던지는 사람들이. 귀찮지 않냐. 마치 자기 시간인냥 내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본인 감정대로만 행동하는 책임감 없는. 상대방에 대한 예우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들. 기가차지 않은지, 아직도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성적으로만 소비함을 멈추지 않는 남자들이.


 그래서 대답했다. 이젠요, 더이상 가벼운 마음에 곁을 주지 않으려고요. 진심인 사람들과 내 부족한 진심을 전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살고 싶어요. 안그래도 빙빙 도는 지구에서 감정을 뱅 돌리고 간보는 관계엔 지쳤거든요. 최선을 다해서 잡아도 서로가 닿기 어려운 세상인데 뭐하러 시간낭비를 해요. 내 자신에게도 솔직하기 힘드니 사람에게 만큼은 비겁하지 않으려고요. 그녀는 내 대답이 충분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썅년의 미학' 작가 민서영 님의 글에서도 공감한 부분을 발췌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소위 말하는 '빻은 말' 하는 사람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었어요. 게다가 인권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나, 말끝마다 말끝마다 '남자가~' '여자가~' 를 일삼는 이와는 애초에 상종하고 싶지 않죠. 더욱이 연애 상대라면 얼굴도 조형미가 갖춰졌으면 하고, 그 와중에 불법촬영물을 찍지는 않는지, 친구들과 그걸 돌려보지는 않는지도 신경써야 하죠. 요새 왜 사람 안만나,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에 정말 격하게 공감되는 문장이랄까. 대답하자면요... 네, 지겨워요. 우스워요. 귀찮아요.


 눈만 뜨면 온 천지가 혐오로 가득하다. 더욱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대부분이 그 혐오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 한참 부족한 나 자신 또한 이 정도인데, 저 tv 속, 라디오 속 지식인이라는 명칭을 단 사람들,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 부모님, 친구들, 선배, 동료들 등에게서 전해지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무지는 나를 더욱 절망에 빠트린다. 더군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간극을 온몸으로 느낄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이다.


 이러한 주제들로 생각이 깊어지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해서 슬럼프 또는 기분이 좋지 않을때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의외로 굉장히 쉬운 방법들이여서 나는 긍정왕 반열에 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되는데...? 첫째로는 노래를 듣고 크게 따라부른다. 주로 신나는 스윙 곡이나 디즈니 테마송이들이다. 또는 춤을 웃기게 춘다.책을 읽는다. 카페를 가거나 조용한 공간을 찾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는데 도심에선 그런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조그마한 녹지 공원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힐링이 절실한 시점.


 요샌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만남을 갖는 과정에서 좋은 생각과 성찰을 얻게 되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 늘 생각해 왔던 그저 유행을 쫓는것은 아닌가 하는 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그 바닥이 너무 얕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참 외로웠는데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더라. 그 들은 고귀한 각자의 모습 그대로 빛나주고 있었고 그것들을 노래하고 싶었다. 진실되게 그리고 단호하게 전해졌으면 한다.


  내 노래가 소외된, 늘 비주류 였고 아직도 심연 어딘가를 헤메고 있을 그들 모두의 시선 바깥에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들을 위해 퍼졌으면 하는 소망. 그 소망을 향한 걸음이 비록 느릴지라도 이러한 고민이 충분히 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 시간들.


 저번달에 가장 들었던 큰 욕망으로 꼽자면 바로 살 갸보 Salle Gaveau 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여는 것이였다. 노래는 연주를 종종하니 큰 무대에 서고 성공하는 상상은 물리도록 했기에 최근 피아노로 전환했었다. 물론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나 연주에 대한 꽤나 큰 희열을 느껴왔기에... 멋드러지게 옷을 차려 입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연주와 노래를 선사하고, 관객으로부터 큰 박수 갈채를 받는 상상은 그 자체로 참 즐겁다. 꾸준히 한 10년 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이루어질 수 도 있을테니 망상은 아닌가. 그렇기에 음악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든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충분치 않을 수 있지만) 부끄럽다는 것은 성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날의 내 행실과 말을 되돌아 본다는 것이 될수 있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 남성들은 철저히 ‘남성’중심적이고 ‘권력’의 위치에서 여성을 ‘평가’하고 ‘후려치기’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분노의 감정, 안타까움 등이 쌓이다 보니 그것이 내 음악에도 안타깝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낀다.


 여성도 분노할 권리가 있고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내, 또는 내가 호감이 가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남성인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그리고 지금도 어느 부분에선 행해지고 있을 많은 부분이 여성혐오적 행동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설 수 없다. 쉽게 ‘여성의 차별’ 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현실에 얼마나 더욱 무너져야 할까.



  많은 남성들은 사람들 앞에선 스스로 젠더 문제에 예민한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여도 라는 말을 꼭 붙인다-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기에) 순수하고 정의로운 남성이라는 태도와 행동과 말거지를 일삼는다. 뒤에선 남성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모임에선 너무나 익숙하게도 흘러가는 ‘남성’만의 권력에 몸을 맡긴다. 자연스럽게 여성을 향한 얼평, 몸평을 일삼고 가부장적 중심의 발언을 유머코드로 삼아 뱉는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여태까지 그래왔고. 설령 그게 뭐가 문제인지 알더라도, 그들만의 리그에선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잘 아는 대부분은 지극히 박쥐같은 이중모션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은 난 주류이며 기득권인 남성 편에도 서고싶고 (어느정도는 서있고-예를들어 생물학적이라던지) 예민하게 다루어지는 여성, 인종, 차별등의 문제에도 발벗고 나서는 정의로운 척하는 ‘좋은사람’ 의 모습도 어느정도 취하고 싶다는, 결국 어느 쪽에서든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어떤 것이 진정 약자의 아픔을 이해하는 길에 서는 것인지, 어떤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하는 것인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오직 중요한건 억울하고 사랑받고 싶고 착한 나. 불쌍한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게다가 이러한 행동들은 그의 입맛과 취향대로 걸러진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부족한, 겉핥기식 관종짓이라는 행동임을 보여준다. 내 주위의 모든 여성을 동등하게 그리고 그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사회에서 마주하는 갖가지 아픔을 제대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 된’ 또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협하고 좁은 시선 안에 든 몇몇 ‘여성’들만을 향해 존경한다, 멋있다란 식의 단일한 리스펙을 선사한다. 물론 존경을 표하는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울어진 사회의 이면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은채 자신의 입맛대로만 여성을 바라보는 기부니즘 식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참 괴로웠다. 내 안의 가부장과도 싸워야 하고, 공적인 혐오와 차별과도 소리없이 늘 마주쳐야 하는 현실을 (오랜만에) 사정없이 겪고 나니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낀다. 지금도 내 책장에는 서울, 남성, 중산층, 이성애자, 학벌 좋은 저자들의 책이 가득하다. 그들의 정의한 사회문제, 그들이 정의한 운동 방법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던 나를 직면한다는 민서영 작가님의 글이 어쩜 나와 이리도 같은지,..이러한 고찰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이니 돈이니 실상 득없는 소리보다야 이런 외로움 타령이 낫지 않나. 줄줄이 늘어놓고 싶은 밤도 이따금 찾아 온다. 모두가 힘든 밤, 나보단 너가 낫지 건네는 위로의 말이 오가는 밤. 영혼을 쓰다듬어 주고, 내 옆자리로 훅 끌어당겨 꼭 안아주고 싶은 밤.


Originally posted on 레일라의 쓰는여행. Steem blog powered by EN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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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기록 9월에 잘 봤습니다 ~^^ 꼭 자신만의 기록을 만들기를 ~~ 바래요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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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하나씩 쌓여가네요. ^^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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