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 달 남은 시점의 겨울

in #kr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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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중교통에선 대개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불안정한 소음이나 자극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엔 아직 무리다. 일시성을 가진 대중교통에서의 경험은 대부분 쓰이지 않고 사라지지만, 지난 주 지하철 옆에 앉은 남자가 고양이 동영상을 보고 있던 모습은 기억하고 있다.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면 속 고양이는 실뭉치를 가지고 위아래로 바쁘게 뛰어놀고 있었다.

  2. 행정처리와 자잘구레한 또는 사람을 만나는 일들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그 남자의 손이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내 핸드폰 속 내가 가장 자주 꺼내보게 되는 것은 사진앱이다. 생각보다 자주, 앱 속의 저장되어 있는 시간별 년도, 월, 장소, 사람 별 사진들을 열어본다. 하지만 그 날은 핸드폰을 켜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그 안에 없었기 때문에.

  3. 올해 한 해동안 힘들었던 이들과 위로를 나누고 연대하며 내년을 기약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기에 동료들과 멈추지 않고 모색해왔다. 다행이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때에 독터와 사장님을 내알하여 예술가의 꿈을 공유하는 공간 Portraitbooth 을 만났고, 준비해온 공연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준비한 곡들을 겨울이 가기전에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견고한 복합예술공간을 만나(격상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지만) 장소, 연주 셋, 주류, 시간 등이 맞춰지고 새로운 인연들이 교차되고 있다. 주변 지인 몇에게 미리 티켓팅을 부탁받으며 이번 공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전달받았다. 나 또한 철저한 방역 하에 잘 준비하여 정말 오랜만에 관객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4. 몇 가지 걸리는 사소한 일들을 제외하곤 바쁘게 지내고 있고 최근 좋지 않았던 혈증증세도 다행이 호전된 상태다. (공연 중에 호흡이 딸리는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 한국에 와서 여러 일들을 순차적으로 해내고 있고, 이제야 비로소 3달 후를 구체적으로나마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선적으로 들여다 봤어야 하는 일-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언어들을 배우고, 그러면서 이전에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를 비로소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나의 삶과 연결된 모든 영역을 ‘보는 방식’ mode of seeing 이 확장되고 복합화 되는 일은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시간과 마음을 들여 실천하고 행해야 한다. 이러한 지각의 일들을 머리속으로만 생각하고 당장 급한 일, 처리할 감정들, 일련의 작고 큰 사건들 뒤로 미뤄온 결과는 나의 패배다. 도저히 이 단순한 머리속을 정리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5. 지식의 형성 과정, 권력의 작동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 일의 중요성이란 쉽게 말해서, 지식 형성 과정을 상호 교환하면 논쟁은 그 자체(논리의 전제)를 파악하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배 담론 내부에서 지식을 획득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6. '공부하고 나서 하는 대화'의 필요성이란 학위를 따고 시험에 응시하는 방식의 공부가 아니라, '너랑 나랑 만났을 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너랑 나랑 책이든 영화든 뉴스 기사든 같은 자료를 하나라도 보고 나서 그에 기반해서 이야기하자'는 식의 공부, 그런 공부가 없는 대화는 정말 소모적이라는 데에 동감한다.

  7. 사람들은 특정한 일에 대한 준비도가 다르고 각자의 배경이 다른 상태에서 대화에 임하기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한 지점과 서로 부딪치는 지점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일단 각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꺼내 놓고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사유를 촉발하는 게 중요하다. 대화 상황에서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이후 각자의 성찰로 이어질 수도 있다.

  8. 그래서 결국 나는 무엇을 질문하는가, 왜 질문하는가를 돌아본다. 작년 한해 내내 씨름해왔던 문제다. 내면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갈망에 정작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진 않을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고, 동시에 현실과 괴리된 학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공연에 이런 고민들을 모두 녹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정작 노래를 하며 가장 위로받는 사람은 나일 것임을 알기에.

그러나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성차별 문제는 물론이고 빈부 격차, 환경 파괴, 폭력, 인종 증오, 근본주의 같은 인류가 직면한 고통은 남성주의적 시각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 그 세계를 ‘나’는 어떠한 곳으로 경험하는가. 한 사람이 지닌 다양한 구성요소들, 다시 말해 개별인의 성격, 가치관, 지향성, 배경 등에 의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동일한 시대와 사회에서 산다고 해도 그 사회의 제도들, 사회문화적 가치관, 직업 환경, 사회정치적 정황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 한국은 ‘헬조선’같이 끔찍한 세계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다양한 특권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헤븐조선’ 이기도 하다.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와 푸른 하늘을 날아가며 사는 새의 세계는 동일한 세계에 산다고 해도, 그 경험은 매우 다르다. 동일한 한국인이라도, 그 사람의 젠더/계층/장애 여부 등에 따라서 개인들이 느끼는 차별과 배제 또는 자유와 평등의 경험은 천차만별이다. 분명한 것은 개별인으로서의 ‘나’는 한 사회의 가치관이나 제도로부터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개별인들이 지닌 특성이나 성격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여자’로 태어난 사람들은 ‘사회문화적 여성’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생물학적 남자’로 태어난 사람들 역시 ‘사회문화적 남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고정된 틀 속에 자신을 넣어야 주류속에 들어가 ‘편한’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고정된 틀이 주는 부자유와 억압의 경험은 단지 개인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관계하는 모든 것들에 연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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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스팀잇에서 왜 찾아오지 않으면 레일라님 글이 피드에 뜨지 않는가요. 이런 고퀼의 글을 놓칠 뻔했네요.

공연 꼭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무조건 갑니다. 꼭 알려주세요 :D

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볼 부분이 많아 한참 읽다가요. 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글로 정리된 부분을 읽는 것 또한 대체할 수 없이 좋아요.

찾아오시라고, 부러 안보여주나봐요. 그럴 분들을 알기에 더욱 정성들여 글을 쓰라는 스팀잇의 고도전략?

공연은 프라이빗하게 철저한 방역을 끼로 진행될 예정이에요. 쉽지 않은 걸음 하시는 분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있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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